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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식량 탈취’ 오보 등으로 재뿌려… 민간 단체 노력만으로는 한계

“솔직히 지금 심정 같아서는 도와주지 못할망정 재나 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아닌가.”

북한 동포 돕기 범국민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에서 일하는 한 상근자의 말이다. 틈만 나면 민간 차원 대북 식량 지원 운동의 발목을 잡는 일부 수구 언론을 비아냥거린 말이다. 실제로 대다수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드러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북녘 동포 돕기운동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이 언론의 비우호적인 태도와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북 정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 5월31일에도 민간단체들에는 언론 보도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이 날 발행된 조간 신문들이 ‘북한군, 美 원조 식량 빼돌려-포르투갈紙 5천t 규모…WFP, 항의키로’(<조선일보> 국제면 5단) 같은 제목으로 대북 지원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석간에서는 아예 인용 부호도 없이 ‘北韓 무장軍, 원조 식량 강탈-WFP 공식 항의, 남포港 하역중 5천t 빼돌려’(<문화일보> 1면 3단)라고 단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일요일자 신문에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軍, 총기 위협 탈취’(<조선일보> 1면)라는 식으로 단정하는 후속 보도와 함께 ‘北 군대로 간 쌀’(<조선일보>), ‘북한軍의 원조 식량 탈취’(<동아일보>), ‘구호 식량도 빼앗는 북한군’(<중앙일보>) 같은 제목의 규탄조 사설이 실렸다.

민간단체들은 보도 내용을 미심쩍어 하면서 국제 구호단체에 사실을 확인하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기사가 토·일요일에 터져 나와 사실 확인에 시간이 지체되는 통에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한국일보>만이 ‘정부, 북한 지원 식량 군 전용 확인 착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입을 빌려 이를 기정 사실화하면서도 말미에서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쳤다.

“정부, 언론 오보 ‘확대 재생산’ 방관”

실제로 민간단체들은 6월2일(월) 자체 조사 결과 이같은 보도가 사실 무근임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대표 서영훈)은 세계식량계획(WFP)과 협력 관계인 미국내 대북 지원 단체 연대회의를 주관하는 국제 자선단체 MCI(Mercy Corps International)에 문의한 결과, 세계식량계획 평양 주재 사무소장 버키타 칼그렌씨가 이 단체의 엘스 커버 부회장에게 “북한군이 식량을 탈취한 적이 없으며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에 항의한 적도 없다. 이런 미확인 사실을 한국 언론이 크게 보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 사실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한편 외무부도 같은 날 이 외신 보도와 관련해 구호 식량 배급 및 배급 감시 체제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이 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6월3일자 신문들은 모두 ‘WFP, 북한군 지원 식량 탈취 보도 부인’이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속보를 냈다.

문제는 정부가 사전에 오보일 가능성을 알았으면서도 국내 언론에 적극 확인(부인)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김동규 부장은 “통일원에 확인 문의한 결과, 정부는 외무부 현지 공관이 세계식량계획에 문의해 이미 5월31일에 오보일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통일원·외무부 당국은 이를 언론에 확인해 주지 않고 오히려 오보 ‘확대 재생산’을 방관했다”라고 주장했다.

회사 차원의 지원·캠페인, <한겨레>·기독교방송뿐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은 신빙성 없는 한 외신 보도를 여과 없이 인용하고 이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 재생산해 보도함으로써 5월26일 ‘남북 적십자 사이의 구호물자 전달 절차에 관한 합의서’ 서명 이후 불붙기 시작한 민간 차원의 돕기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같은 보도가 북한 동포 돕기운동에 미칠 파장을 감안할 때, 이번 파문은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생략한 한국 언론의 반북(反北) 성향과 예단에 의한 보도 경향을 드러낸 증거라고 민간 단체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군량미 전용설을 비롯해 대북 식량 지원을 둘러싼 이른바 분배의 투명성 문제는 세계식량계획과 국제적십자연맹(IFRC) 같은 유엔 산하 기관 및 공신력 있는 국제 구호기관의 현지 감시를 통해서 여러 번 걸러진 사안이다.
그동안 평양에 상주하면서 북한의 배급 체제에 개입해온 세계식량계획과 국제적십자사(국적) 관계자들은 분배 과정에 직접 참여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과 만나 분배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런데도 일부 수구 언론이 군량미 전용설과 분배의 투명성 문제를 들고 나오는 배경은 북한 문제를 보도하는 메커니즘의 특성인 ‘무한정의 자유’와 뿌리 깊은 반북 성향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 언론에게 북한은 최대의 기사 공급원이자 오보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관련 세 단체가 95년 해방·분단 50주년을 맞이해 ‘평화 통일과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과 보도 실천 요강 10개 항을 제정해 민족 동질성 회복과 민족 공동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보도에 힘써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언론사 기자들이 노조나 기자협회를 중심으로 ‘북한 동포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도 회사 차원의 지원이나 캠페인 보도를 하는 곳은 <한겨레>와 기독교방송(CBS)뿐이다.

그래서 기자협회 등 언론 세 단체와 민간 단체들은 최근 ‘남북 적십자 합의를 계기로 투명성이 확보된 만큼 이제 언론이 나서야 할 때’라며 회사 차원의 캠페인 보도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이 1차 모금 캠페인을 끝내고 6월부터 2차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정부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모금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재민 돕기 캠페인 사례에서 보듯 언론, 특히 방송이 북한 돕기 캠페인에 나선다면 이 한계는 훌쩍 뛰어넘게 되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상황은 최근 <기자협회보>가 보도한 대로 ‘언론이 2천3백만 북한 동포의 목줄을 쥐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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