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국방부, 약해진 ‘동북아 전략’ 사수 위해 계속 유포

황장엽 비서가 작성했다는 `‘조선 문제’라는 논문이 내외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지난 4월 말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 정부로부터 비밀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바로 `‘조선 문제’의 신빙성을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선 문제’는 황비서가 망명을 준비하던 지난해 8월 비밀리에 작성했다는 것으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화학무기·로켓무기를 동원해 남한을 초토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 본토는 몰라도 일본까지는 초토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은 미국과 일본의 안보 당국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자문에 응해온 그 전문가는 곧 한국의 학계·언론계와 정부 당국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결론적으로 `‘신뢰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황비서는 북한 수뇌부의 극비 전쟁 계획을 파악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황비서 발언 이후 미국 정부에 두 가지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극히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쪽과, 신뢰성은 의심하지만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쪽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와 NSC는 ‘북한 도발 가능성’ 부인

우선 국무부의 입장을 보자. 미국 국무부는 황비서에게서 전쟁 관련 발언이 나올 때마다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를 즉각 부인하고 나서 마치 황비서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이같은 자신 있는 태도는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을 조사해온 백악관 직속 국가안보위원회(NSC)의 결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믿을 만한 서방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해 1년 동안 국가안보위원회는 `‘북한 지도부와 군부의 심리 상태, 그리고 전쟁 도발 가능성’에 대해 극비 조사를 해왔다. 금년 1월 초에 1차 결론이 나왔는데, `‘북한은 국지전을 도발할 능력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전쟁을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군부 지도자들 중 전쟁을 바라는 자의 수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위원회와 국무부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인 데 비해 국방부는 정반대 태도를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올해 국방부 고위 책임자들의 한반도 위기 관련 발언은 국방 관련 예산안이 심의되는 매년 4월 의례적으로 있어온 관행을 벗어나고 있어 `‘특이 동향’으로 분류할 만하다.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이 몸소 `‘위기설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지난 4월 한국·일본 동시 방문에서도 한반도 위기설을 강도 높게 피력한 코언 장관은 5월28일 미국 공군사관학교에서 있은 기자회견, 5월30일의 로스앤젤레스 소재 한 대학에서의 강연 등에서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므로 미국은 이에 대비해야한다”라고 강행군했다. 미국 국방부 수뇌부의 한반도 전쟁 관련 발언은 현재 시중에 유포되어 있는 `‘6,7월 전쟁설’과 맞물려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기도 하다. 6,7월 위기설이란 ‘식량 사정이 바닥에 처하게 될 6,7월을 기해 북한 지도부가 남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동안 일부 귀순자들의 기자회견에서 폭로된 바 있다. 그러나 식량난과 결부된 전쟁설에 대해서는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들뿐 아니라 주변국들조차 회의적이다.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6,7월 위기설은 두 가지 면을 안고 있다. 하나는 정보 측면이고 또 하나는 분석 측면이다. 정보 측면이란, 귀순자들의 얘기처럼 북한 전역에 그같은 소문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소문에 대해서는 국내 정보기관 관계자들 역시 그동안 예의 주시해 왔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지난 4월 “북한 내부에 식량이 바닥나는 6,7월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정부가 민간 단체의 식량 지원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조처를 취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이같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정보기관의 또 다른 관계자는 “1~2년 전부터 귀순자들에게서 계속 나온 얘기이다. 특이 동향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 통제의 어려움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통치술의 하나로 퍼뜨리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본 방위청의 고위 당국자 역시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국제적인 식량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퍼뜨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북한과 중국을 동시 방문한 보커스 미국 상원의원에 따르면, 중국 지도자들 역시 북한이 대남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주변국들이 전쟁설을 부정하는 배경에는 북한 식량난 실태에 대한 나름의 평가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식량난 실태에 대해서는 유엔 기구 및 민간 단체 관계자들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미묘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세계식량계획 관계자들이 ‘북한 전역에서 식량 배급이 이미 절반 정도 중단되었고 6월20일 께에는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보고서를 낸 데 대해, 우리 정부 당국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주변 국가들과 국제 기구의 식량 지원 양을 합산하면 적어도 8월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중국 “식량 때문에 전쟁 일어날 가능성 적다”

미국·일본·중국 정부 당국의 시각도 비슷하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심국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6월3일 일본 TV 인터뷰에서 “북한의 정치적 상황은 대단히 안정돼 있고 식량난도 차츰 해결돼 가고 있다”라고 발언해 일본의 여론 주도층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일본 방위청 고위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대북 식량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첫째 이유는 식량난이 과장돼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라며 식량난 자체를 평가 절하했다. 미국 정부 역시 최근 북한 식량난을 재평가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민간 기구와 미묘한 인식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식량난 자체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거나 전쟁을 도발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황장엽 발언으로 불거진 전쟁 위기설과, 식량난을 근거로 한 6,7월 전쟁설의 내면적 구조가 사실상 이러함에도 최근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이 집요하게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외 안보 관련 전문가들이 이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은 지난 5월15일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4개년 방위계획수정안(QDR)’과 6월8일 중간 발표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일명 가이드라인) 수정안이다.

우선 4개년 방위계획수정안의 개략적 내용부터 살펴보자. 이 안은 지난해 말 미국 의회가 국방 관련 수권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새 정부 출범 초기에 임기 동안의 방위 계획 내용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국방연구원 실무책임자에 따르면, 금년의 국방부 4개년 방위계획수정안 작성은 대단한 논란 속에 이루어졌다. 논란의 핵심은, 앞으로 4년간 매년 2천5백억달러로 한정된 국방 예산 내에서 과연 미국이 한반도와 중동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었다. 이른바 `‘윈윈전략’으로 불리는 동시 전쟁 수행론에 대한 회의론자들의 공세에 맞서 미국 국방부 당국자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진땀을 흘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윈윈전략과 한반도 위기설은 어떻게 관련되는가. 이번에 제출된 윈윈전략 내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 2개의 `‘주요 지역 분쟁(Mager Regional Conflict)’에 대응한다는 전략 개념이 `‘두개의 주요 전역 전쟁(2Mager Theater War)’에 대응한다는 것으로 더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전자가 중동과 동북아라는 `‘지역 차원’을 상정한 것이라면, 후자는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라크, 동북아에서는 북한이라는 `‘특정 국가’를 전쟁을 수행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미국 국방부 당국자들이 윈윈전략을 방어하려면 어떻게 하든 북한의 전쟁 도발 의지를 입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지난 6월8일 중간 발표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수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방위협력지침 수정은 일본의 참여 폭을 확대해 윈윈전략의 재정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 동북아 전략의 주축을 이루어왔던 미·일 동맹체제는 소련이 붕괴하자 존립 근거를 상실해 일본 내에서도 해체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냉전 이후 중국이라는 새로운 지역 강국 대두와 일본의 주권국화 움직임을 우려한 미국의 안보 당국자들은 지난해 4월 클린턴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미·일 안보동맹 재정의’라는 형태로 안보동맹을 부활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런데 윈윈전략과 마찬가지로 안보 재정의의 표면적 명분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 역시 한반도 분쟁 가능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은 미·일 간에 진통을 거듭하던 미·일 안보조약 개정 논란이 지난해 4월 북한 인민군의 판문점 무력 시위 사건으로 인해 탄력을 받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번 방위협력지침 수정안과 관련해 일본 헌법과의 충돌이나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안보 당국자들이 유난히 `‘한반도 유사시’ 상황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윈윈전략이나 미·일 방위협력지침 수정의 가장 큰 목적이 중국과 일본의 주권국화를 견제하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외교 마찰을 우려한 미국 안보 당국자들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인 셈이다.

‘한반도 위기 캠페인’ 12월까지 계속될 수도

윈윈전략과 미·일 방위협력지침으로 상징되는 탈냉전기 미국 동북아 전략은 올해 9월 방위협력지침 확정 및 12월의 윈윈전략에 대한 미국 국방위원회(NDP) 최종 심사라는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특히 12월의 국방위원회 심사에서는 미국이 과연 현재의 예산 규모에서 윈윈전략을 고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정밀 심사될 예정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 수정도 예견된다. 이런 정황을 가정하면 존립 명분이 약해져 가고 있는 탈냉전기 미국 동북아전략을 사수하기 위한 미국 국방 당국자들의 `‘한반도 위기 캠페인’은 올 12월까지 계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가 북한 내부 문제뿐 아니라 미국의 신동북아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긴박한 상황에 와 있다고 지적하면서 “윈윈전략과 미·일 안보동맹에서 한국의 안보를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수용하되,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활동 반경 확대 등 주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