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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대학 이창주 교수 특별 기고/“망명 전 역할 극히 미미, 정보와 거리 멀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는 남북 분단 이후 망명한 인물 중 최고 거물이다. 그는 북한에서 김일성 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외교위원장, 조평통 부위원장, 노동당 비서 등 학자 및 정치가로서 비중 있는 자리에 있던 인물이다.
그의 망명은 세 가지 이유에서 상당한 그리고 기대와 관심을 끌었다. 첫째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의 정치·사회·경제 실상과 군부 동향 및 대남 관계 등 핵심 정보 파악, 그리고 그의 망명이 북한의 권력·체제 붕괴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이다. 둘째는 그의 진정한 망명 배경과 동기가 무엇이며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망명이 한국의 대북 정책과 국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작년 7월 내가 북한 조평통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나의 일정을 관장하던 조평통 고위 관계자에게 황장엽 비서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후 이 관계자는 꼭 만나겠다면 주선해 주겠으나 현재 황비서는 국제 담당 비서이지만 실제로는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 국제 문제 일을 보지 않고 있으며, 전문 일꾼들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와의 만남을 반대했다. 그리고 김정일 체제 출범 후 황장엽이 당비서 직을 유지했지만, 예우 차원의 자리에 불과했지 실질적 권력이나 영향력은 행사하지 못하고 소외와 견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입장에 처해 있음을 귀띔해 주었다.
황장엽 비서는 북한이 만들어 놓은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관리와 유지 및 연대 사업에 역할이 국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대남 전략이나 정책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김정일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대남 정책 및 통일 문제는 조평통이 관장하고 있으며, 보고 체계도 김정일로 직선화되어 있다.
조평통은 친북 인사 포섭·관리 및 지원, 남한 정세 분석, 해외 동포 관리 및 지원, 국제 관계 연계, 공작, 포섭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모든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김정일의 직할 조직이다. 주요 조직과 기구는 철저하게 비밀 세포화해 있고, 얼굴 마담 격인 대외 공식 조직과 비밀 조직이 공존해 가동되고 있다.
황장엽씨가 거쳤던 조평통 부위원장이나 한시해 전 유엔 대사가 맡고 있는 서기국장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 아직까지 한국에 조평통 위원장이나 핵심 정보 및 공작 관련 부위원장, 정치국장 등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한국 주요 인사의 북한 방문, 기업 및 해외 동포의 대북 투자 진출은 최종적으로 조평통의 허가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며, 또한 북한 기관 및 기업 들의 대남 관계도 조평통이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최고 핵심 몇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극비 사항인 남한 내외 친북 인사 리스트의 규모를 황장엽씨가 파악했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북한 총리조차 핵 보유 사실 몰라
핵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총리 직을 대행하고 있는 홍성남 총리조차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을 그의 측근을 통해서 들은 바 있다.
황비서가 망명 전 가지고 있던 국제담당 비서 사업은 전임 김용순 비서 시대와 판이하다. 김용순은 국제담당 비서로 재임하면서 비동맹 외교, 유럽 및 아프리카와 활발한 국제 관계 사업을 추진했고, 휘하에 전문 고급 인력들을 거느리며 김영남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 외교팀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당 국제담당 비서의 사업과 역할이 황장엽으로 대체되면서 중단되었다. 전문 인력들은 거의 조평통으로 차출되고 모든 외교·국제 업무는 정무원 외교부로 이양되어 버린 것이다. 당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공식 외교 사업은 김영남의 관장 아래, 강석주 및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 아직 확인되지는 않지만 전 유엔 대사 박길연이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황장엽의 대일 관계 사업도 이종혁의 역할과 마찰을 겪으면서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망명에 결정적 역할을 한 김덕홍 여광무역 총사장을 창구로 한 남북 기업 합작 사업이나, 남한 및 해외 동포 기업 북한 진출 추진 사업들도 북한 정부 및 권력의 협조를 얻지 못해 특별히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 변화의 흐름은 황장엽으로 하여금 상당한 심리적 갈등과 인생 역정에 대한 회한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황장엽씨가 유지하던 위치나 자리는 노동당 비서 직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북한 권력의 외곽에서 보조적 기능과 상징적 역할이 주였다. 유일한 권력의 핵심 자리가 망명 전의 노동당 비서 직이었지만, 이 역시 권력과 영향력을 소유하지 못했다. 확실하게 그가 북한 사회에 족적으로 남긴 것은, 주체사상 형성에 참여하면서 그것의 체계화를 이루고 현실적 접근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에 선전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