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처드 할로란 특별 기고/현실적 아시아 정책 기대하기 힘들어

워싱턴에서 서울, 뉴델리, 그리고 캔버라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정치 분석가들은 1월20일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2기 외교 정책, 특히 아시아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재선한 클린턴 대통령은 헌법상 3선에 도전할 수 없다. 따라서 국내 문제에 치중했던 집권 1기 때와 달리 집권 2기에는 더 적극적으로 대외 문제에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은 앞으로 대외 정책에서 아시아가 주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직후부터 지난 22일 취임에 이르기까지 클린턴 대통령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여전히 대외 정책(특히 아시아)에 큰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국무장관에 임명된 여성인 올브라이트가 이끄는 새 외교팀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어떠한 비전도 제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나 그의 외교팀은 오늘날 아시아가 겪고 있는 엄청난 변화, 즉 날로 성숙해 가고 있는 정치력과 문화적 부흥, 군사력 팽창과 민족적 자긍심을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는 앞으로도 미국에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아시아 정책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클린턴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그때그때 위기에 대처하는 성격을 띨 것이다.

외교 스타일에서도 집권 2기 외교팀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 누구도 아시아 나라들과 협상한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게다가 전후 매끄럽게 진행되어온 미국의 유럽 외교와 달리 아시아를 상대로 한 외교가 그다지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하다.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지명자는 최근 자신의 외교팀을 최강 팀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두고 볼 일이다.

올브라이트의 친구들에 따르면, 이 신임 국무장관 지명자는 때로는 매우 거칠다고 한다. 과거 유엔 주재 미국대사로서 그는 외교관답지 않게 매우 직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아시아처럼 미묘한 외교력이 강조되는 지역에 그같은 외교 스타일이 먹힐지 의문이다.

물론 외교 정책 수립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즉 외교 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위 실무자들의 자라난 환경, 교육, 다양한 경험 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아칸소라는 남부의 조그만 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훗날 조지타운 대학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문제에 관한 한 별로 관심이 없다. 정치 평론가 게리 윌스가 말한 대로 클린턴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티의 군부 독재 문제에서 보스니아 문제, 중국 문제에 이르기까지 웬만하면 최소 한도의 범위 안에서 개입하자는 최소개입주의자이다.올브라이트 국무장관 관심 지역은 유럽

신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전임자들과 달리 유럽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유럽 지향파이다. 체코 출신인 그는 소녀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와 대학에서 러시아 문제와 동유럽 문제를 공부했다. 그 때문에 그는 과거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 정책에 적의를 품어 왔으며, 이런 생각이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는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유럽 문제에 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를 위해 진력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아시아 정책과 관련해 많은 힘을 쏟겠다고도 증언했지만, 이같은 발언은 앤서니 레이크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늘상 사용하던 외교적 수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화당 출신으로 국방장관 지명자인 윌리엄 코헨은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해 초당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드럽고 조용한 태도로 두루 호감을 사고 있으며, 상원 정보위에서 활동하면서 아시아 문제에 접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아시아 경험은 전무하다.

코헨은 탈냉전 후 국방 예산이 줄어들면서 국방부 산하 육군·공군·해군·해병대 간의 예산 다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길 것 같다. 일이 잘못 처리될 경우 그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변절자라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중앙정보국장으로 내정된 앤서니 레이크 역시 거대한 관료 조직을 장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 같다. 탈냉전 후 중앙정보국은 스파이 사건이 잇달아 터져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 게다가 일부 상원의원들은 그의 업무 수행 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는 실정이다.

자기와 비슷한 연령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레이크의 아시아관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부정적인 인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법하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대규모로 병력을 파견하던 63~65년에 사이공에서 영사로 근무했다. 나중에 그는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에 항의해 사표를 낸 뒤 닉슨 행정부 때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일했다.

클린턴 취임사에 아시아 언급 없어

최근까지도 레이크 밑에서 일하다 승진한 새뮤얼 버거 신임 백악관 안보보좌관 역시 아시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베트남전 세대이다. 특히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1기 시절 중국 정책에 혼선을 빚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단과의 회견에서 클린턴 집권 2기 아시아 전략의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자들이 구체적으로 묻자 더 언급하지 못했다.

총체적으로 볼 때 클린턴의 신외교팀은 새 시대에 걸맞는 아시아 정책을 수립하리라는 믿음은 주지 못한다. 물론 이들을 보좌할 실무진으로 아시아통들을 임명할 수는 있겠지만, 집권 1기 때처럼 윗사람들이 적극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실제 정책 수립 과정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된 클린턴 대통령은 마침 그 달 하순 마닐라에서 열린 에이펙 회의에 참석해 아시아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 또 시드니와 방콕을 방문해 이런 저런 연설도 했지만, 어느 하나 알맹이 있는 것은 없었다. 올브라이트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일본과 한국을 찾겠다거나 중국 방문을 기대한다거나 하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22분 간의 짧은 취임사에서 외교 정책, 특히 아시아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는 61년 1월20일,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사 서두에‘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유의 생존과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 어떤 부담, 어떤 고통을 무릅쓰더라도 우리의 친구들을 도울 것임을 만방에 알리고자 한다’라고 천명한 것과 너무 대조를 이룬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