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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당당하게 재판 임하라”

지난 7월22일, 법무부가 바쁘게 돌아갔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짧은 보고를 받고 나서다. ‘내일(7월23일) 최종길 교수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강장관은 부랴부랴 유가족의 변호인단에 전화를 걸었다. 강장관이 기자회견의 의미를 간파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 7월6일 국가와 고 최종길 교수의 유가족에게 화해를 권고했다. ‘최종길 교수의 죽음에 국가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10억원을 지급하라.’ 화해 권고는 소송 당사자가 결정문을 받은 날로부터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양쪽 모두 동의하면 판결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소송 당사자는 유가족과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니 만큼 법무부가 소송을 지휘한다.

“국정원, 여전히 발뺌하고 있다”

유가족이 법원의 결정문을 받은 날은 7월12일. 7월24일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그 하루 전날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은 화해 권고를 거부한다는 의미였다. 법무부와 국정원은 법원 권고에 동의할 예정이었다.

7월26일은 정부측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유가족보다 이틀이나 여유가 있었다. 그런 느긋함 때문이었을까, 정부는 유가족이 동의할 줄 알고 침묵했다.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한다는 보고를 접하고서야 강금실 장관이 움직였다. 강장관은 이의 제기 마지막 날인 7월26일 정부를 대표해 사과하겠다는 뜻을 유가족에게 전했다. 화해 권고를 수용하라는 우회적인 의사였다.

강장관의 뜻을 전해들은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교수(40)는 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오전 10시 그는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해 권고를 거부했다. 기자 회견 뒤 최광준 교수를 따로 만났다.
화해 권고를 거부한 이유는?

유가족도 화해를 하고 싶다. 그런데 누구와 화해하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사과를 해야 화해를 할 것이 아니냐. 그저 돈만 받고 화해하라고? 그건 아니다. 간첩 가족으로 받아온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다.

법무부장관이 사과하겠다고 했다는데?

고마웠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되었다.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한다고 하니 뒤늦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30년 동안 유가족이 받았을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유가족의 이의 제기와 무관하게 정부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정부가 이제는 말해야 한다. 국정원은 여전히 발뺌하고 있다. 사과하는 태도가 아니다.

사과와 함께, 최종길 교수에 대한 특별한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1972년 중앙정보부는 유럽거점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자백한 후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씌운 것이다. 30년 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아버지가 타살되었다고 밝혔다. 조서가 조작되었고, 간첩이라고 자백한 사실도 없다고 조목조목 밝혀냈다. 죽음과 은폐에 가담한 중앙정보부 요원 실명까지 공개했다. 그게 2년 전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국정원은 여전히 아버지 사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는 근대법학기념관 기념홀을 ‘최종길 홀’로 명명했다. 국가도 외면한 명예 회복을 서울대가 처음으로 한 것이다)

공판이 재개되면, 이미 시효가 소멸해 패소할 것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정부가 비겁하다. 이번 소송은 민사 소송이다. 민사 소송에서는 피고인 정부가 시효의 이익을 포기할 선택권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부가 소멸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법원이 자살·타살 여부를 판단해 손해배상 판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겁하게도 소멸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박정희 정권이나, 소멸 시효라는방패 뒤에 숨은 참여정부나 도덕성에서는 차이점이 없다. 소멸 시효 문제는 아버지 사건뿐 아니라 다른 의문사 사건과도 관련된 문제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더라도 지금처럼 소멸 시효를 근거로 들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 유가족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명예를 법적으로 회복하고 싶어한다.

최종길 교수 아들이 아닌 법학자로서 할말이 있을 것 같다.

한국 법원은 법적 안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법적 안전성만큼 중요한 것이 구체적 타당성이다. 개별 사건마다 정의가 묻어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게 바로 구체적 타당성이다. 수지 김 사건 때처럼 시효라는 안전성에 연연하지 않고 구체적인 정의를 법원이 세워 주어야 한다. 국회도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나 소멸 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법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권 존중이다.

최광준 교수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생김새도 그렇고, 살아온 길도 똑같다. 아홉 살 때 그는 아버지를 잃었다. 간첩 아들이라는 오명에 사춘기 때 방황도 했다. 그런 그를 바로잡아 준 것은 역시 아버지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왔고, 고등학교 1학년인 그는 설레였다. 아버지의 억울함도 봄볕처럼 풀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긴 겨울. 좌절은 깊었다. 가족은 한때 독일 망명을 계획했다. 여의치 않자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를 독일로 보냈다. 아버지 스승인 쾰른 대학 케겔 교수가 최광준 교수를 돌보았다.

아버지와 똑같은 전공을 하고, 똑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최광준 교수(경희대 법대)는 긴장하면 얼굴이 벌개지고 땀을 많이 흘린다. 그것도 부전자전이다. 인터뷰 내내 최광준 교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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