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고기 전문 체인점 등장…묵은 논쟁 재연될 듯

여배우로보다는 보신탕 반대론자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놀라 자빠질 만한 일이 요즈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로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던 보신탕집이 시내 중앙에 진출해, 6월 말까지 전국에 백 개 이상 체인점을 내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업소 이름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수호신을 상징하는‘천하대장군’. 한국을 보신탕 국가로 낙인 찍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바르도가 가히 선전 포고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다.

이 개고기 요리 체인점은 지방 중소 도시에 이어 서울에도 상륙했다. 서울 1호점인 가락점이 지난 5월24일 영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성남과 용인, 경상북도 구미 같은 지방 도시에는 이미 체인점이 성업 중이다. 이번달 안으로만 전국 각 도시에서 30여 체인점이 잇달아 문을 연다.

외식 산업 전문 업체인 차이나통상이 모집하고 있는 이 개고기 요리 체인점은 수육과 탕 위주였던 전통 개고기 식단에서 벗어난 다양한 요리법을 선보이고 있다. 개고기에 아직 거부감을 가진 젊은 세대를 겨냥해 양념 불고기·철판구이 등 요리법을 새로 개발하기도 했다. 반응이 좋으면 개고기 바비큐도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이 업체는 회사 내에 ‘한국 전통음식 살리기 운동 본부’를 만들었다. 개고기를 개발·보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차이나통상 조용섭 본부장은 “개고기를 전통 식품으로 정착시켜 백 개 이상 체인점을 낸 뒤 이를 <기네스 북>에도 올릴 계획이다”라고 의욕을 보였다.

개고기 요리 체인점이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동안 보신탕 반대 운동을 펼치던 동물 보호단체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사실상 정부의 방조와 묵인 아래 보신탕 영업이 성행하는 것도 내심 못마땅하던 참에 아예 드러내 놓고 보신탕 영업을 하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6천여 회원을 가진 한국동물보호연구회 윤신근 회장은 “개고기 체인점이 확대될 경우 회원들을 동원한 직접 행동도 불사하겠다”라고 밝혔다.

대규모 반대 운동을 벌인다면 국제 여론이 움직일 수도 있다. 월드컵을 유치한 한국에서 혐오 식품인 개고기를 놓고 벌어지는 전쟁은 외국인에게 쏠쏠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한국동물보호연구회가 내부적으로 보신탕 반대운동을 계획했을 때 국내에 있는 모든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 단체가 현재 2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보신탕집을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허가를 내주어 공개적인 체인 방식으로 영업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적인 망신이자 외교와 통상 등 국제 관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한국은 대표적인 동물 학대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체인점 영업 사실까지 알려지면 이런 국제 여론에 기름을 끼얹게 되리라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인터넷 홈페이지에‘한국인들이 길거리에서 개를 도살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관련 사진이 실린 적이 있다(이 사진은 출처 불명으로,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찍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구미인들이 얼마나 한국을 개고기와 연관지어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영국의 국제적인 애완견 박람회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참관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 대표적인 동물 학대국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수도권 주민 76%, 남자 89% “먹어 보았다”

반면 민속학자와 식품 전문가들은 보신탕에 관한 한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양인들에게 개고기는 식생활과 가장 밀접한 전통 식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43쪽 상자 기사 참조). 지금도 여전히 성인 남자들에게 개고기는 기호 식품인 동시에 강장 식품이다. 회복기의 환자나 노인 들의 기력을 돋우기 위해 개고기를 먹이는 관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김열규 교수(인제대·국문학과)는 “다람쥐고기나 말고기는 먹으면서 개고기 먹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엄청난 불균형이다. 개고기를 혐오 식품으로 분류하는 우리 정부의 논리와 시각이 오히려 혐오스럽다”라고 주장한다.

식품으로서 개고기의 가치도 마찬가지이다. 개고기는 이미 한국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식품이 된 지 오래이다. 94년 식품 전문지인 <월간 식품과 위생>이 수도권 주민 1천2백여 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보신탕을 먹어 보았다고 했을 정도이다. 남자의 경우 응답자의 89%가‘먹어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개고기의 맛도‘기름이 적고 담백해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맛있다’는 사람이 56%나 되어 ‘비슷하다’(9.4%)거나‘못하다’(3.3%)는 응답을 압도했다. 당연히 개고기 식용 찬성론자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렇듯 국민 정서는‘개고기 찬성’, 국제 여론은‘개고기 결사 반대’를 외치는 틈바구니에서 행정 당국은 법조항은 국제 여론에, 현실에서는 국민 정서에 맞추는 어정쩡한 선택을 했다. 개고기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적극 단속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개고기를 사실상 관리의 사각 지대에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혐오 식품’으로 분류돼 위생 사각지대서 유통

정부는 이미 84년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보신탕을 혐오 식품으로 분류해 조리 및 판매를 금지했다. 자연히 개는 도축에 따르는 검사 기준 등을 밝힌 축산물 위생처리법에도 제외되어 있다. 결국 현재 유통되는 개고기는 한결같이 아무런 위생 시설도 갖추지 않은 곳에서 밀도살된 것들이다. 당연히 잔류 대장균 허용치 등 유통되는 식육류에 대한 최소한의 단속 기준치마저 적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식품 전문가들은 이렇듯 미비한 법규가 비위생적인 밀도살 폐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개고기의 영양학적 연구조차 가로막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동석 교수(부경대·식품공학)는, 애완견 등과 구별하기 위해 견육(犬肉)이 아닌 구육(狗肉)이라는 명칭을 써서 식용견을 별도로 관리하고, 식품위생법에 포함해 혐오 식품에서 제외해야만 ‘눈가리고 아웅’식의 비위생적인 보신탕 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개고기를 전통 식품으로 양성화해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제주도 북제주군이 국내 처음으로 도견장 유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했으나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농림부·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마저 반대 의사를 나타내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 정부는 개고기 유통·판매에 국민 정서보다 국제 사회의 여론을 더 의식하기 때문에 ‘개고기 정책’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6월 들어 전국 각 도시에 개고기 요리 체인점이 생기고 이 체인점들이 성업하게 되면 정부도 규제든 양성화든 어느 한쪽으로 입장을 분명히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정작 눈길이 몰리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에 대해 줄기차게 보신탕 논쟁을 일으켜 온 브리지트 바르도가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예 2002년 월드컵을 보이콧하자고 유럽 전역을 뛰어다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