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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신구범 지사 ‘고수익 위한 생산 감축’ 정책 두고 시끌… 오렌지 수입 둘러싼 마찰도

동백과 야자수와 감귤나무가 어우러진 제주도에는 겨울철에도 푸르름이 가득하다. 구릉지 위로 솟은 ‘오름’(분화구)들과 흰눈을 이고 선 한라산이 어우러져 풍광도 이국적이다.

자연 조건이 이런 만큼 제주 경제는 공해 없는 청정(淸淨) 산업을 주력으로 한다. 제주도의 지역 총생산(GRP)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30%대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고, 두 번째가 20%대인 감귤 농사이다. 그런데 관광 시설에 대한 투자는 상당 부분 외지 자본에 의해 이루어졌다. 식음료를 비롯한 관광 부자재 역시 육지에서 들여온 것이라 수입의 상당 부분이 빠져나간다. 때문에 외형만 클 뿐 실제 제주도에 떨어지는 것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인건비 정도라고 한다.

반면 감귤 농사는 비료와 농약값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입이 제주도에 떨어진다. 60,70년대에 감귤은 껍질까지도 차로 다려 마실 만큼 귀했다. 이 시절 감귤은 ‘한 그루만 있어도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과장되게 알려졌다. 이후 감귤 소비가 보편화하면서 소득률은 떨어졌으나, 지금도 고율인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감귤은 제주도에서만 생산되므로 제주도 작황의 풍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따라서 생산량 조정을 잘 한다면 고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가 있다.

59쪽의 표는 지난 7년 간의 제주 감귤 생산량과 감귤 농가 조수익(생산비를 포함한 총수익)을 그린 것이다. 이 표에서 눈여겨볼 것은, 72만t을 생산해 대풍을 이루었던 92년에는 농가 조수익이 2천6백23억원으로 적었으나(도표의 A지점), 55만t으로 흉작을 기록한 94년의 농가 조수익은 5천5백21억원으로 매우 높았다(B지점)는 점이다. 96년(추정치) 역시 전년 대비 생산량이 줄어들자 조수익은 늘어났음(C지점)을 보여준다.

제주도 농촌진흥원이 분석한 결과, 58만t을 생산할 때 감귤 농가의 조수익이 가장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제주도청은 60만t 정도만 생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60만t을 생산하되 감귤을 고급화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서울 등 육지의 소비자들은 제주도의 소량 생산·고가 전략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농업도 공업과 마찬가지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 행위이므로 이를 탓할 수는 없다.

현재 제주도의 감귤 생산 능력은 60만t을 초과한다.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농원부터 폐원(廢園)해 적정 면적을 만들 필요가 있다. 품질 향상은 곧 당도를 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조량이 충분하도록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간벌(間伐)’작업을 해야 한다. 또 품질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되는 과일을 조기에 따내는 ‘적과(摘果)’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자랄 과일 쪽으로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어 품질 좋은 과일이 생산된다.신지사, 수출 업무 대행회사 설립도 주도

이에 대해 제주도청 송상순 감귤과장은 “조례 제정은 제주도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조처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는 7월1일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때의 약정에 따라 최소시장접근(MMA) 원칙이 없어지므로 우리나라도 오렌지 수입을 전면 자유화한다. 오렌지 수입이 자유화되면 감귤 소비가 줄어 신지사의 소량 생산·고가화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감귤 농정을 총괄하는 청와대 농림수석실과 농림부의 핵심 관계자는 “오렌지는 칼로 까먹어야 하는 불편이 있어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백화점 과일 판매를 살펴보면, 고품질의 고가품부터 매진된다. 따라서 오렌지 수입상이 저가 전략을 펼친다 해도 고급 감귤 판매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신구범 지사는 93년 관선 지사로 취임했다가 6·27 지방 선거 직전 사퇴한 후, 지방 선거에서 당선되어 다시 지사가 되었다. 관선 지사 시절인 94년 12월 그는 제주도산 농·축·수산물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주)제주교역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제주교역 설립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도청·시청·군청 등 행정기관과 제주감귤조합·농협 제주본부·제주 수협·제주 임협, 개인 사업자 등을 주주로 참여시켰다. 도민 회사 성격이 강한 만큼 제주교역은 수수료를 받지 않고 수출 업무를 대행한다. 때문에 제주교역은 신지사가 실시한 개혁 행정의 상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료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주에서는 제주교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 세력 중 하나가 과거부터 제주도산 수산물을 일본에 수출해온 무역업자들이다. 제주교역 관계자는 무역업자들이 담합해 어민들로부터 저가로 납품받아 수출해 왔다고 말했다. 제주교역의 등장은 이런 담합을 깨뜨리는 신호탄이었다. 더구나 수수료도 받지 않으니 어민단체는 제주교역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경영 첫해인 95년 제주교역은 11억원어치를 수출했고, 지난해에는 2배 늘어난 22억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장이 무역업자들을 불안케 했다. 무역업자들은 제주교역의 주요 주주가 농협·수협 등 주요 생산자 단체인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생산자 단체가 제주교역으로 일감을 몰아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교역은 결코 주요 주주와 밀월 관계가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감귤 농가들로 구성된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제주감협·조합장 강대준)과 제주교역 간의 불편한 관계이다. 불화는 오렌지 수입에서 발생하는 ‘감귤진흥 자조금’(자조금) 다툼에서 비롯되었다. 이 자조금은 94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생겨났다. 한국은 오렌지 수입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대신 최소시장접근 물량은 반드시 수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정이 나기 직전 제주감협은 ‘제주도의 감귤은 육지의 쌀농사보다 소중하다. 오렌지가 수입되면 감귤 농사는 망한다’라고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이 항의 결과 정부는 오렌지 수입으로 인해 감귤 농가가 피해가 예상되므로 수입권을 감협에 주겠다고 밝혔다(그러나 현재까지 감귤 농가의 피해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주도는, 수입권은 제주감협이 갖되 수입 업무는 제주교역이 대행하도록 정리했다. 그러나 수입된 오렌지의 국내 판매는 제주감협 무역사무소(소장 고순영)에 맡겨 2원 구조를 만들었다. 수입 오렌지 판매에서 적잖은 수익이 생겼다. 이 이익금을 적립한 것이 바로 자조금이다. 제주교역은 수출 업무에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오렌지 수입에서만은 수수료를 받는데, 이것이 제주교역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오렌지 수입의 2원화와 제주교역이 오렌지 수입 수수료로 경영한다는 사실이 제주교역과 제주감협을 서로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제주산 감귤은 90년부터 농협을 통해 한국 교포가 대표로 있는 캐나다의 패시픽 림사(사장 이범신)로 수출되었다. 패시픽 림사는 유일하게 제주 감귤을 수입하는 회사여서, 여러 생산자 단체를 경쟁시키는 우월한 지위에 있었다. 95년 제주교역이 영업을 시작하자 도청은 제주교역을 통해 수출하라고 지시했다. 감귤 수출 창구가 제주교역으로 1원화한 것은 독점 수입권을 행사해온 패시픽 림사의 우월한 지위가 무너짐을 의미했다. 제주교역 ‘무역 미숙’에도 비난 화살

95년 8월 제주교역은 미국 교포가 대표인 미국의 H&JJ사(사장 오충렬)와 3년간 대미 감귤 독점 수출 계약을 했다. 또 한국이 수입하는 오렌지의 약 40%를 H&JJ사를 통해 수입한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95년 말 제주산 감귤 2백40여t을 미국으로 처녀 수출했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검사에서 맹독성 농약이 검출되어 통관되지 못했다. 감귤의 대미 수출은 대대적으로 홍보된 것인데 반송하거나 폐기 처분하라니 제주도 당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패시픽 림사가 나서서 ‘캐나다의 잔류 농약 검사는 미국만큼 엄격하지 않다’며 1백80여t을 캐나다로 들여가 위기를 모면했다. 이에 대해 패시픽 림사는 제주도와 제주교역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교역 관계자는 “당시 패시픽 림사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 헐값으로 사갔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의 H&JJ사는 감귤 통관이 금지됨으로써 감귤 수송과 판매를 위해 미국의 유통·광고 업체와 계약한 계약금을 날렸다며 클레임을 제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클레임 금액은 20만 달러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H&JJ의 오충렬 사장은 “97년 1월 말 현재 9만9천 달러만 받았다”고 주장한다. 클레임 소동과는 별도로 H&JJ사는 96년 제주 감귤 2백20t을 다시 수입했다. 오사장의 노력으로 잔류 농약 검사는 통과했으나, 감귤 상자가 약해 아래쪽 감귤이 눌리는 일이 발생했다. 오사장은 “이것 때문에 8만 달러를 손해봤다. 또 클레임을 걸겠다”라고 밝혔다.

H&JJ사에 대한 나머지 배상금이 지불되지 않은 데 대해 제주교역은 “자조금에서 지불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조금 운영위원회는 제주교역의 무역 행위가 매끄럽지 못하다고 여긴 듯, 자조금 운영 내규에 수출 업무를 지원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지불하기를 거절했다. 농림부 역시 자조금 사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패시픽 림사마저 제주교역을 공격하고 나섰다. 발단은 96년 11월 제주교역이 실시한 일본산 감귤 수입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패시픽 림사는 일본산 감귤 2백t을 국내에 들여왔는데 저질품이 많았다. 제주교역과 패시픽 림사는 전문 검정회사를 통해 검사한 후 백t은 통관시키고 백t은 반송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내로 들여온 백t도 품질이 나빠 겨우 70t만 판매되어 손해가 발생했다.

두 달 후인 올 1월 실시된 오렌지 수입 입찰에서 제주교역은 이 일을 이유로 패시픽 림사를 대상 회사에서 제외했다. 그러자 패시픽 림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행위로 제소했다. 제주교역 역시 H&JJ사 때와 달리 패시픽 림사의 부정 행위를 적은 진정서를 청와대와 검찰 등에 보내며 맞섰다. 이러한 대립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제주교역이 동의해 백t이 통관된 만큼 제주교역에도 책임이 있다. 감정적인 대결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올 7월부터 오렌지 수입이 자유화되는데 입찰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제주교역은 2년이라는 짧은 경영 기간 에 농협 제주본부·제주감협·H&JJ·패시픽 림사 등과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주교역의 강천종 사장은 “도민회사인 제주교역을 생각도 없이 비판만 하는 제주 언론이 한심하다”라며 사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한 제주도 인사는 제주교역에 무역 전문가가 많았다면 시행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제주교역의 미숙함은 서서히 신구범 지사의 개혁을 비난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개발 독재 시대도 아닌데 신지사가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한 것이 무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제주감협의 한 관계자는 섬 사람 특유의 배타성이 신지사의 개혁을 심정적으로 거부한 면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3년 임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신지사의 개혁 농정이 실패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오렌지 수입이 자유화되는 만큼 감귤 농정 개혁은 꼭 필요한 조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민의 이기심, 기관간 이익 다툼, 전문가 부족 등으로 그가 실현코자 하는 개혁은 난관에 봉착했다. 또 신지사 주변에는 개혁에 동참하는 세력이 적었다. 개혁의 돛을 단 신지사의 ‘탐라호’가 선장만 있는 배라면 순조로운 항해를 기대하기 힘들다. 제주도민들은 우수한 선원을 보충해 완벽한 항해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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