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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대 빙과 시장 놓고 ‘빅4’ 대혈전…펜슬바·웰빙 제품이 승패 좌우

무더위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파는 빙과업계 사람들이다. 지난 3년 동안 그들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축축한 여름’을 보냈다. 2001~ 2003년, 기상청은 매년 ‘올 여름이 무더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빙과 업체들은 그 예보를 믿고 청량 빙과 생산 설비를 늘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지만 예보는 예보일 뿐이었다. 7, 8월의 평균 기온이 27~28℃에 불과하고, 여러 날 동안 궂은비가 내린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빙과 업체들은 한동안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올해 그들은 3백여 제품을 가지고 3전4기를 노린다. 기상청이 10년 만에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보한 데다, 찌는 듯한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빙그레는 이미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긴 장마가 그친 지난 7월19일, 빙그레는 아이스크림을 하루 동안 무려 43만 상자나 팔아치웠다. 한 상자에 만원씩만 쳐도 하루에 45억원 매출을 올린 것이다. 6월 매출액이 47억원 정도였으니까,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이다. 이성현 팀장(홍보팀)은 “청량 빙과인 ‘더위사냥’만 9만 상자가 나갔다. 5년 만에 최고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해태제과(해태)도 찜통 더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대박 징조는 이미 지난 오뉴월에 나타났다. 기상청의 예보대로 예년보다 기온이 2~3℃ 오르자 매출이 목표보다 30% 이상 상승한 것이다. 해태는 5,6월 탄력을 이용해 지금 ‘올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날씨가 찌는 듯하게 더우면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청량 빙과가 많이 팔리고, 날씨가 덜 더우면 (우유가 많이 들어간) 콘 같은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는데, 청량 빙과가 많이 팔릴 것에 대비해 생산 시설을 크게 늘린 것이다.

가게 냉장고 ‘선점’한 롯데, 부동의 1위

반면 롯데제과(롯데)는 비교적 느긋하게 ‘여름 전쟁’에 임하고 있다. 1987년부터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데다, 콘·청량 빙과·컵·펜슬바·홈타입 등에서 거의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올해 빙과 시장 규모를 1조원으로 잡고, 그 가운데 40% 이상을 장악할 계획이다. 안성근 계장(홍보팀)은 “젊은이의 눈과 입을 사로잡기 위해 텔레비전 광고를 늘리고 있다. 올해에도 1위를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안계장의 장담대로, 올 여름에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롯데의 독주가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각 종목마다 제법 달콤한 상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빙과류에서는 ‘스크류바’ ‘죠스바’, 콘류에서는 ‘월드콘’, 컵류에서는 ‘와’, 펜슬바류에서는 ‘설레임’, 홈타입류에서는 ‘위즐’이 롯데의 대표 선수들이다.

해태는 빙과류 매출에서 ‘호두마루’ ‘체리마루’ 같은 ‘마루 시리즈’로 스크류바를 앞섰다고 주장한다. “호두마루 시리즈 매출이 한 달에 100억원을 넘는다.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먹히는 것 같다”라고 장덕현 팀장(마케팅본부)은 말했다. 롯데의 견해는 다르다. 단일 품목으로는 스크류바에 훨씬 뒤진다는 것이다. 빙그레도 생과일이 들어간 ‘생귤탱귤’로 새 전선을 구축하고 나섰다.

2004년 1월2일~2월9일, 한국능률협회가 서울 등 6개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15~60세 남녀 1만2천 명을 조사한 ‘제6차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결과에 따르면, 청량 빙과의 순위는 돼지바(롯데삼강)·메로나(빙그레)·호두마루(해태) 순이다(브랜드파워 순위는 인지도·이미지·선호도·구입 가능성 등을 점수로 매겨 가린다).

1천5백억원에 달하는 콘 시장에서도 롯데와 해태의 싸움이 치열하다. 월드콘이 몇년 동안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자, 해태는 ‘부라보콘’ 리뉴얼 제품으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소비자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부라보콘은 1970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장수 아이스크림. 해태에게는 고비 때마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 효자 상품인데, 지난해 체리베리 맛과 헤즐넛 맛을 내놓으며 본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소성수 과장(홍보팀)은 “지난해 월드콘이 4백억원어치 팔린 것으로 안다. 올해 부라보콘도 그 정도를 기대한다.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빙그레는 ‘메타콘’으로 2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브랜드파워 순서는 부라보콘·월드콘·구구콘이다).

펜슬바 싸움에서는 빙그레의 선전이 눈부시다. 대표 선수는 2003년 빙과류 브랜드파워에서 1위를 차지한 ‘더위사냥’. 더위사냥은 어린이들의 입맛을 꽉 잡고 있어 올해에도 정상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 뒤를 바짝 좇고 있는 제품은 ‘설레임’(롯데) ‘탱크보이’(해태) ‘주물러’(롯데) ‘빠삐코’(롯데삼강) 등이다. 올 여름 매출 싸움은 펜슬바의 매출액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무더우면 무더울수록 펜슬바 판매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반면 겨울에도 잘 팔리는 컵류와 홈타입류 싸움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한 업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5월에 가장 많이 팔린 컵류는 와(롯데) 빅와플(롯데) 붕어싸만코(빙그레) 국화빵(롯데삼강) 크런치킹(해태) 등이다. 홈타입류는 위즐(롯데) 구구크러스터(롯데삼강) 투게더(빙그레) 베스트원(해태)이었다. 반면 브랜드파워에서는 3년 연속 투게더클래스(빙그레)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구구크러스터와 위즐이 그 뒤를 잇는다.

빙그레 김기현 팀장(광고팀)에 따르면, 현재 빙과 시장 점유율은 롯데 37%, 빙그레 27%, 해태 21%, 롯데삼강 15% 구조로 되어 있다(물론 다른 업체는 이 비율을 인정하지 않는다). 롯데가 앞서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스크림 판매는 냉장고(쇼케이스) 선점이 중요한데, 판매처 대부분에 ‘롯데 냉장고’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냉장고를 얼마나 뿌리냐는 자금력에 달렸다. 롯데는 어느 회사보다 그 면에서 앞서 있다”라고 김팀장은 말했다.
빙과업계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1%만 올라도 그 해 장사는 성공이라고 말한다. 1%를 올리려면 매출을 약 100억원 더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빙과업계가 올 여름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무더울수록 아이스크림 매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빙과 업체들은 통상 한 해 판매 비율을 9~2월에 20%, 3~8월에 80%로 잡는다.

현재 각 업체가 전장에 내놓은 제품은 3백여 가지. 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품은 불과 30~40종이다. 그것도 대부분 이미 널리 알려진 제품들이다. 각 업체가 기존 선수들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는 이유는 신제품의 시장 안착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해태 장덕현 팀장에 따르면, 한 해에 신제품이 40~50개 나오지만 ‘성공’ 소리를 듣는 제품은 1~2개에 불과하다. 신제품을 개발·생산하는 데 3억~5억 원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빙과 업체로서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빙과 업체들은 한 해에 한 제품만 잘 팔려도 ‘대박’으로 평가한다. 그만큼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빙과 업체들의 모험은 계속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빙과 업체가 소비자의 입맛을 이끌기도 한다. 지난해의 ‘망고바’가 좋은 사례다. 한반도 기온이 아열대성에 접어들었다는 보도에 착안해 열대 과일 제품을 내놓았는데,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반짝 뜨는 제품은 그만큼 수명도 짧다. 올해 수그러든 망고바의 인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2004년 여름 이후에는 열대 과일 빙과 대신 이른바 ‘웰빙 빙과’가 뜰 가능성이 높다. 빙그레는 몇 년 전 녹차 아이스크림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제품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너무 일렀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이제는 웰빙밖에 먹힐 전략이 없다”라고 김기현 팀장은 말했다. 빙그레는 이미 녹차 아이스크림과 생과일·순수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도 같은 생각이다. 기능성을 살린 웰빙 아이스크림으로 승부하고자 한다. 검은콩·검은깨·알로에·비타민·요거트 등을 함유한 아이스크림이 그것이다. 해태도 다를 바 없다. 검은콩바·비타1000바 등을 통해 1020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여름을 즐기는 빙과업계 사람들. 그들은 이 여름이 더 뜨겁게, 더 오래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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