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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와 합영해 2002년 승용차 생산…신남포 지역에 공장 부지 조성 한창
북한에서는 이미 트럭이 생산되고 있다. 평북 덕천에 승리자동차 공장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승용차는 아직 외국에서 수입해 쓴다. 이 때문에 벤츠 등 고급 외제차가 북한 거리를 질주한다. 그런데 이를 대체할 차를 생산하기 위한 작업이 조용하게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이 일을 추진하는 업체는 평화자동차(대표이사 사장 박상권)이다. 지난 4월8일 서울 프레스센터 11층에 사무실을 마련한 이 회사는, 금강산국제그룹과 함께 통일교의 대북 사업을 추진하는 양대 축이다. 박상권 사장은 통일교가 베트남에서 운영하는 메콩자동차 회장을 겸하고 있다.
연산 만대 규모 조립·개조 공장 건설
평화자동차는 지난 8월30일 통일부로부터 대북 사업을 펼치기 위한 ‘협력 사업자 승인’을 받았다. 협력사업자 승인은 통일부가 북한과 교류 협력을 추진하려는 업체의 △전체적인 사업 계획 △북측의 사업 의향서 △사업 주체의 적격성 △사업 실행 가능성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 검토해 내리는 결정이다. 평화자동차측은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은 것을 계기로 북한과의 협상을 한층 빨리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북한과 구체적인 사업 내용 계약을 맺고,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고,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준비하는 것이다. 평화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상태이므로 최대한 빨리 사업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통일부 관계자의 대답은 ‘제반 사항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 이렇게 해서 사업 승인까지 받으면 본격 투자가 이루어지게 된다.
현재 평화자동차가 공장 부지로 물색해 둔 곳은 신남포 지역이다. 평양 남서쪽에 있는 남포항에서 1.24㎞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평양시로부터 32㎞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공장 옆으로는 건설 중인 46m 너비의 12차선 고속도로(평양-남포)가 지나고 있다. 이 도로는 지난해 11월 말에 착공해 당 창건 50주년(10월10일)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평양-신의주 산업 철도가 달리고, 신남포 역사가 인접해 있다. 항만·철도·도로가 공장 주위를 감싸는 최상의 교통 요지에 공장이 자리잡는 것이다.
공장 부지는 100만㎡(33만평). 이 가운데 올해 말에 1단계 공사가 끝나는 면적은 14만㎡(4만6천여 평)이다. 여기에는 우선 자동차 수리 공장이 들어선다. 평화자동차가 일본인 기술진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평화자동차의 공장 터는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전자·화학·공업 단지로 잡아 놓은 곳이다. 토질이 마사토(磨砂土)라는 보드라운 석회질 백토여서, 사업 승인만 떨어지면 단시일에 공장을 건립할 수 있을 정도로 여건이 좋다. 지금 이곳에서는 터닦이 공사가 한창이다.
본격 투자는 2단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000년 1월∼2001년 12월에 연산 만대 규모의 자동차 조립·개조 공장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까지 총 투자비는 4천만 달러. 투자 규모가 비교적 적은 것은, 생산 규모가 연산 만대밖에 안되고, 생산 방식도 조립·개조에 그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지는 않겠다는 것이 양측의 뜻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본격 생산하는 시기는 2002년 1월 이후가 될 수밖에 없다. 그해 2월16일이 김정일 총비서의 회갑인 점을 감안하면, 양측 모두 허비할 시간이 거의 없다.
통일교는 언제부터 북한에서 자동차를 만들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8년 전 12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북한을 방문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에게 민족 유산인 금강산을 개발하고 자동차를 생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김주석이 사망하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조문 파동이 벌어졌고, 대북 사업은 입도 뻥긋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초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통일교측은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실습’을 충분히 했다. 91년 통일교재단이 홍콩에 오리엔탈 인터내셔널(OIC)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를 통해 베트남 호치민 시에 메콩자동차사를 설립했던 것이다.
91년만 해도 베트남은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하기 이전 단계였다. 그 덕에 메콩자동차는 외국인이 투자한 최초의 합영회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지분율은 70 대 30. 베트남 정부가 30% 지분을 갖고, 오리엔탈 인터내셔널 사가 70%를 갖기로 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종은 네 가지. 피아트의 1,300∼1,500cc급 승용차인 템프라와 시에나, 피아트 사 트럭인 이바코와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지프가 여기서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연간 생산 대수 1천1백대 가량인 ‘미니 기업’이지만, 베트남 합영 회사 1호라는 점 덕분에 갖가지 혜택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트남 정부가 개방 정책을 추진하자 외국 업체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노리는 것은 베트남 노동자의 근면성과 발전 가능성. 인구가 9천만명이나 되어, 장기적으로 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리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 때문에 자동차 생산 허가를 받은 업체가 14개로 급증했다. 현재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는 11개. 벤츠가 생산되고 있고, 도요타의 코로나, 대우의 마티즈도 여기서 생산된다. 각사가 출혈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메콩자동차의 경영 실적도 전과 같지 않다.
김정일 등 북한 최고위층 깊은 관심
통일교측은 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동차 생산 노하우를 익혔고, 동시에 홍콩에 PMC(Peace Motors Corp.)를 설립해 북한측과 협상을 벌여왔다. 홍콩 PMC의 북한측 협상 파트너는 련봉총회사(사장 리정철). 리사장은 북한의 기계 공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양측이 오래 협상한 결과 ‘평화자동차 총회사’라는 합영 회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평화자동차 총회사 자본금은 2백13만 달러. 지분율은 홍콩PMC가 70%, 련봉총회사가 30%씩 갖기로 했다. 홍콩PMC는 비용을 대고, 련봉총회사는 공장 부지와 도로 건설 등을 맡기로 했다. 공장 부지는 임차하기로 했고, 임차료는 평당 20달러로 책정했다. 이곳에서 일할 노동자는 3백50명 정도로 예상된다. 이것은 베트남에 있는 메콩자동차와 같은 규모이다. 노동자 월급에 관해 양측이 명확히 합의한 바는 없지만, 나진·선봉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 되리라는 것이 평화자동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 뒤 통일교측은 서울 프레스센터 11층에 평화자동차를 설립하고, 홍콩PMC 지분 55%를 인수했다. 이로써 홍콩PMC와 련봉총회사가 맺은 계약의 주체가 사실상 평화자동차로 바뀌게 되었다. 지난 5월17일 북한 무역성도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홍콩PMC와 체결한 계약상의 모든 권리·의무를 평화자동차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협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실무 작업은 양측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있다. 평화자동차측 실무진으로는 메콩자동차 초대 사장을 지낸 뒤 현재 평화자동차 부사장을 맡고 있는 고야나기 사다오 씨, 64년 도쿄올림픽 때 메인 스타디움을 시공한 가와니시 씨, 설계 전문가 아키모토 씨 같은 일본인들이 꼽힌다. 이들은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북한측 실무자들과 협상한다. 이들은 지난 9월4일 다시 평양으로 날아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북한측 파트너로는 백두산건축연구회 림홍순 건축실장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북한의 주요 건축물을 도맡아 설계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설계 전문가이다.
이들 실무진의 배후에는 거물급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남북 자동차 합영 사업은 김일성 주석에 이어 김정일 총비서가 깊은 관심을 기울인 사안이어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이 대표적인 후원자로 꼽히고, 송호경·전금철·이종혁 부위원장이 수시로 실무자들을 격려한다. 평화자동차 쪽의 협상 총괄 책임자는 박상권 사장이다. 재미 동포인 그는 지금까지 서른 번이나 북한을 방문했고, 평화자동차 사업과 관련해서만 열다섯 번 방북했다.
피아트 자동차 조립 생산 가능성 높아
앞으로 양측이 합의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생산 차종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평화자동차 박보희 회장은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소형차로는 이탈리아의 피아트 모델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최종적인 결론은 북한측과 협의해 결정해야겠지만, 평화자동차가 베트남에서 조립 생산하는 모델이 피아트 승용차인 점을 감안하면 그것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게다가 베트남에 진출한 자동차 업체들이 출혈 경쟁까지 일삼는 점으로 미루어 베트남의 피아트 생산 설비를 북한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국내에 있는 통일중공업의 기계 설비와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가 동시에 북한으로 이전될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는 앞·뒤·옆 패널 6장만 바꾸면 차 모양이 완전히 달라진다. 베트남에서 쓰던 설비를 이전하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형태의 피아트 승용차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자동차 생산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겠지만, 북한이 자동차 사업에 거는 기대와 중요도에 비추어 보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를 고려한 때문인지, 평화자동차측도 유휴 설비를 이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선뜻 명쾌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최고급 시설과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원칙만 거듭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차급도 쟁점 사항이다. 북한에는 자동차 내수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수요처는 대부분 관공서·기업체·외국 기관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지금 벤츠·도요타 등 외국 고급 차를 수입해 쓴다. 따라서 이것들을 대체하려면 최소한 중형차 정도는 생산해야 한다. 1,300∼1,500cc급 피아트 소형차 모델이 북한 사정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화자동차측은 중형차를 생산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볼보·벤츠 등과도 접촉해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어떤 모델이 선정될까. 이 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양측은 의욕을 불태우고 있지만, 실제로 준비된 것은 별로 없다. 우선 공장 건물을 짓고, 자동차를 조립해 가면서 북한을 교육·설득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금씩 신뢰를 쌓고 남북 간에 문호를 넓히겠다는 것이 평화자동차측 의사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처음으로 승용차를 생산한 것은 65년이다. 새나라자동차 공장을 인수한 신진이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기술 제휴를 맺고 코로나 모델을 생산했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북한이 통일교와 손잡고 똑같은 길을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