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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생명 사태 4라운드 돌입… 최순영씨에게 ‘7일 안에 경영 정상화 방안 내놔라’ 최후 통첩

대한생명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와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간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구조 조정의 당사자인 대한생명 임직원들이 정부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9월3일 대한생명 임직원들은 이런 요지의 성명서를 냈다.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정부의 신속한 구조 조정을 지지한다. 최순영 회장은 더 이상 소모적인 법적 다툼을 중단하고 회사 정상화에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왜 정부를 편드는 성명서를 낸 것일까. 우선 가파른 대치 상황이 조성되면서 대한생명의 영업 기반 붕괴 조짐이 날로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자극한 것은 최회장의 저항이 계속될 경우, 정부가 계약 이전(P&A) 방식을 통해 대한생명 사태를 끝내겠다고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다.

계약 이전 방식이란 대한생명의 자산과 부채를 다른 생명보험사에 넘기는 것으로, 대한생명의 간판을 내리는 퇴출을 뜻한다. 이렇게 될 경우 지난해 5개 퇴출 은행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생명 직원들은 극심한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5개 퇴출 은행 직원들은 평균 20% 남짓 구제되었다.

물론 이 방식은 금감위로서도 가장 취하고 싶지 않은 구조 조정 해법이다. 공적 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금감위가 이런 극약 처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힌 것에는 대한생명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 인상이 짙다.


최순영 회장측 “법적 투쟁 계속할 것”

이 탓인지는 몰라도 금감위는 대한생명 직원이라는 원군을 얻었다. 이로써 승리의 여신은 정부에 미소를 짓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생명 임직원들과 최순영 회장은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르다. 최회장은 6월29일 대한생명 주주총회에서 해임되어 21년 만에 최고 경영자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여전히 27.6% 지분을 가진 대한생명의 최대 주주로 ‘살아 있다.’

정부는 9월3일 최회장에게 최후 통첩을 보냈다. 대한생명에 대한 부실 금융기관 지정을 취소하고, 최회장에게 9월10일까지 의견 제출 기회를 준다고 통보한 것이다. 물론 이 조처는 행정법원이 8월31일 지적한 ‘절차상 하자’를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최회장은 이때까지 독자적인 경영 정상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금감위는 이 방안을 검토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9월 중에 다시 부실 금융기관 지정 → 감자(자본금을 줄이는 것) 명령 → 공적 자금 투입으로 이어지는 기존 방침을 밀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회장측은 즉각, 도대체 7일 만에 의견 제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발했다. 최회장의 법률 대리인인 우방종합법무법인 윤희웅 변호사는 “국제 상거래에서 7일은 너무나 짧다. 이런 이의 제기를 금감위가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최회장이 다시 법적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회장측은 정부가 겨우 7일 시간을 준 것은 자구 기회를 주었다기보다, 법원이 요구한 형식 요건만을 갖추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물론 금감위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이유 없다’고 일축했다. 법률 전문가들과 상의한 결과 7일이 행정절차법상 하자 치유 기간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구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사와의 협상을 포함해 1년 이상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는 입장이다. 금감위는 최회장이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미국계 펀드인 파나콤은 투자 능력이 없는 회사이며, 스스로 2조7천억원에 이르는 부실(순자산 부족분)을 해결할 힘도 없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 이종구 제1심의관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한생명의 부실이 커지고 ,이에 따라 공적 자금 투입 규모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최회장측은 정부가 ‘최회장은 안된다, 재산도 한푼 남겨줄 수 없다’고 못 박고 밀어붙여 화를 자초했다고 본다.

정부와 최회장과의 기나긴 격돌은 이제 4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미 양측은 세 차례 격돌했다. 이 가운데 두 번을 금감위가 사실상 졌다.

첫 번째 접전. 8월6일 금감위가 대한생명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이사회에 8월14일까지 감자하라고 명령하자, 최회장은 8월9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한생명은 5월8일∼6월28일 이루어진 세 차례 공개 입찰이 유찰된 뒤 공중에 붕 떠 있었던 상태. 이 사이에 최회장은 파나콤을 끌어들였고, 파나콤은 8월10일 13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8월13일 법원은 최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본안 판결이 나는 8월31일까지 금감위가 감자하지 못하게 유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최회장의 첫 번째 판정승이었다.최회장, 새로운 투자선 잡기 어려울 듯

이후 최회장은 8월24일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대한생명 이사회에 30일까지 파나콤으로부터 5백억원 증자 결의를 하도록 했다(9월4일 현재 파나콤은 13억 달러 투자는 물론이고, 5백억원 증자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다급해진 금감위는 8월26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 신주 발행을 금지하는 대한생명 유상증자 중단 가처분 신청을 냈다.

금감위가 몸이 달았던 것은 파나콤이 5백억원을 증자하게 되면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때문이었다. 대한생명의 수권자본금(최대 주식 발행 가능액)은 8백억원이고 납입자본금(실제 주식 발행액)은 3백억원. 파나콤이 증자하면 수권자본금을 다 채우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는 감자를 할 수 있지만 새로 주식을 발행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통설이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대주주가 될 수 없어 대한생명을 국유화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일한 돌파구는 증자하기 전에 수권자본금 자체를 늘리는 것이지만, 이 사안은 주총이나 이사회에서 정관을 변경해야 하는데 두 기관을 최회장이 장악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부는 법원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금감위의 SOS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8월28일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두 번째 최회장의 판정승.

따라서 금감위로서는 최회장이 낸 8월31일의 행정법원 본안 소송(부실 금융기관 지정 및 감자 명령 취소 청구 소송)에 목을 매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 날 ‘천하의 금감위를 불안에 떨게 한’ 행정법원(행정 13부 재판장 이재홍 부장 판사)의 판결은 이랬다. “금감위가 행정 처분을 내리면서 사전 통지나 의견 제출 기회 부여 등 행정절차법상 규정되어 있는 절차를 지키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 행정 처분의 절차 하자를 문제 삼은 것이다. 따라서 금감위의 △이사회에 대한 감자 결의 명령 △관리인회(송준채 등 7명)에 대한 감자 명령 등을 취소하라는 원고측(최회장)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원고측이 절차의 민주성보다 더 중시한 실체적 민주성, 다시 말해 금감위 행정 처분의 부당성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것은 최회장으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다. 금감위로서는 법정 다툼 자체가 치욕스런 일이고, 그들이 표현한 대로 ‘스타일을 구겼지만’ 행정 처분 자체의 정당성이 훼손되지는 않은 것이다(부실 금융기관 지정을 취소하라는 청구는 모두 각하되었다). 물론 이 판결을 계기로 금감위는 일 처리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특히 생보사 같은 주인 있는 금융기관을 구조 조정할 때 사유 재산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게끔 신중하고 세련되게 접근해야 한다는, 뼈 아픈 질타를 받았다.

일단 금감위의 최후 통첩에 대해 최회장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윤희웅 변호사가 말한 대로 8월31일 소송과 내용이 똑같은 소송을 다시 제기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링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이헌재 금감위원장에게 강펀치를 날릴 만한 주먹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믿었던 파나콤의 도움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이며, 새로운 투자선을 잡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최회장은 2월 재산 국외 도피 혐의로 기소되어 7월 말 징역 5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으로부터 추징금 1천9백64억원과 세무 당국으로부터 세금 8백억원도 추징당한 상태다.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기도 대생도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최회장은 앞으로 어떤 승부수를 던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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