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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의원, ‘미스터 바른말’로 거듭나…“이명박 후임 노린 행보” 비판도
요즘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의원을 ‘변신 로봇’이라고 부른다. 이의원 스스로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통일과 문화 두 가지를 17대 의정의 양대 화두로 삼겠다”라고 공언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집요하게 공격하던 저격수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이제는 통일·문화 전도사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방북에 적극 앞장선 것을 필두로 갖가지 파격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동료 의원 22명과 함께 극단 ‘여의도’를 만든 것은 소소한 예다. 17대 새 상임위로 문화관광위원회를 택한 그는 내친 김에 영화도 제작해 보겠다며 영화계에 포진한 중앙대 동문들을 두루 접촉하고 있다.
그는 요즘 당론에 어긋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고 김선일씨 문제로 국회가 현안 질의를 벌이기로 한 지난 6월24일, 한나라당은 잔뜩 격앙된 분위기였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한나라당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고 의장 직권으로 민주노동당 의원을 질의자 명단에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이 날 한나라당은 의장 사과를 요구하며 본회의 예정 시각에서 30분이 지나도록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그 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의원이 나섰다. “지금 전국민의 관심사는 김선일씨 사망 사건이다. 국무위원들도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는 만큼 의장이 잘못한 문제는 나중에 원내 대표단이 따지고, 일단은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말에 몇몇 의원이 박수로 동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며칠 뒤 김씨 피살 사건 국정조사 특위를 구성하면서 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특위 구성이 지연되었을 때도 그는 또 이렇게 입 바른 말을 했다. “정부가 잘못한 일을 조사하겠다는데 굳이 야당이 위원장을 고집할 필요가 뭐가 있나. 여당에 위원장을 맡겨놓고 조사가 잘못됐을 때 이를 호되게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야당이 할일 아닌가.”
시대 정신의 구현인가, 치졸한 꼼수인가
이쯤이면 한나라당판 ‘미스터 바른말’이 탄생했다고 할 만하다. 그는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할말은 한다’는 태세이다. 이미 그는 지난 6월17일 자신의 홈페이지(www.leejo.net)에 당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재오 의원의 변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 갈래이다. 일단 그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가 뒤늦게나마 시대 정신을 바르게 읽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의원 자신 또한 변신하려는 이유를 시대적 요구에서 찾고 있다. “16대까지는 정권의 부패를 견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저격수 노릇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권력형 부정 비리가 어려울 만큼 사회가 성숙했다고 본다. ”
그러나 반대로 그가 ‘꼼수’를 쓴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솔직히 총선 직전 최병렬 전 대표 체제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의원이야말로 한나라당을 망친 주범 중 한 사람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박근혜 대표 지지는 지조를 파는 일”
그런가 하면 이의원이 개인적 야심 때문에 지도부를 흔들어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의원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안되는 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수구, 냉전, 5·6공, 영남 이미지가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려면 이를 시급히 떨어내야 할 텐데, 5·6공은커녕 3공을 상징하는 인물을 수장에 앉힘으로써 한나라당이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박근혜 대표에 대해 그가 이처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자 의구심은 더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7월19일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이다. 전당대회 이후 박근혜 독주 체제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들러리 노릇이나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유신 치하에서 10여 년이나 옥살이를 한 내가 박대표를 떠받치는 것은 지조를 파는 일이나 다름없다”라고까지 선을 그었다. 이쯤 되자 일각에서는 그가 평소 가까운 이명박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박대표와 대권을 놓고 다투는 이시장을 측면 지원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도 이시장의 후임 자리를 노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