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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서석재 계 ‘이수성 카드’ 눈독…김덕룡계 독자 행보 모색…YS 직계 중립
풍경2: 5월26일 일본 도쿄. 세계한인상공인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김덕룡 의원은 비슷한 기간에 일본에 체류하는 김윤환 고문과 만나 깊숙한 밀담을 나누었다. 4월 말부터 비밀리에 자주 만났던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대권 구도와 관련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같은 날(5월27일) 귀국했다.
풍경3: 6월5일 충남 공주 계룡산. 전국 15개 시·도 지부에서 모여든 민주산악회(민산) 회원 2만명이 사실상 대선 출정식을 갖는다. 최형우 고문이 이끌어온 민산은 이 날 전진대회를 통해 ‘최형우는 건재하다’고 널리 과시할 참이다. 전진대회에는 최고문 부인 원영일 여사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풍경은 정발협 분위기와 복잡한 내부 사정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이수성 지지’는 민주계의 절박한 생존 전략
현재 정발협을 형성하고 있는 중심 세력은 크게 최형우계·서석재계·김덕룡계와 YS 직계 등 네 세력으로 나뉘고, 지역적으로는 부산·경남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수도권 출신 초·재선 의원이 많다. 이렇듯 복잡한 정발협은 5월 중순 들어 최형우·서석재 계가 이수성 고문 쪽으로 기울고, 강삼재·김무성 의원 등 YS 직계는 여전히 중립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김덕룡 의원이 독자 행보를 모색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우선 최형우·서석재 고문 진영은 모든 역량을 정발협에 집중해 6월 초부터 본격적인 세력 과시에 들어갈 계획이다. 특히 최고문 진영의 경우, 곧 서교동에 있는 대선 사조직 21세기전략문제연구소와 동교동에 있는 민주산악회 중앙본부를 폐쇄하고 여의도 사무실로 모두 이전하기로 했다. 한보 사태 이후 국민 여론을 감안해 미루어 오던 민산의 대규모 산행을 서둘러 강행하고, 민산 출신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백여 명이 산행에 앞서 6월3일께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최고문을 집단 문병하기로 한 것도 세 과시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최근 최고문 진영의 움직임을 보면, 이수성 고문 쪽으로 거의 결론을 내린 분위기이다. 그 결정적인 고비는 5월27일 이수성 고문을 지원하기로 합의를 보았던 온산계 대책회의. 이 날 모임을 주재한 김정수 의원은 29일 오전 서석재·서청원·김운환 의원과 만나 이런 뜻을 전하고 동의를 구하려다 실패했지만, 김의원이 주축이 된 ‘이수성 추대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사실상 최고문의 사조직이나 다름 없는 정동 포럼이 5월29일 이고문을 초청해 환대한 일만 해도 그렇다. 이 날 참석자들은‘자비로운 달마 대사를 닮은 분’‘위기에 닥친 나라를 끄집어낼 수 있는 분’이라며 온갖 찬사를 동원해 이고문을 추켜세워 마치 이수성 추대 모임을 방불케 했다. 온산계가 이처럼 빠르게 이수성 고문 지지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 것은 물론 내부 사정 때문이다. 일종의‘방어를 위한 공세’인 셈인데, 온산계 처지에서는 절박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최형우 없는’민주계를 이끌어오고 있는 서석재 의원도 최고문 진영의 이런 흐름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고문측이‘확실한 온산계’라고 주장하는 지구당위원장은 총 65명(원내 27, 원외 38명). 그러나 최고문 진영은 최근 이탈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고문의 대리인 격인 김정수 의원은“학연·지연 때문에 이대표 쪽과 가깝게 지내는 온산계 사람들이 있는데, 그 쪽으로 줄을 선 것은 아니다. 언론이 너무 오보를 많이 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탈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최고문 진영은 일부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수성 고문을 지지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아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박찬종 고문과 그를 지지하는 민주계 위원장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정발협은 최고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의사를 물으면 너무 늦다는 판단에 따라, 빠른 방법을 택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정발협이 특정 주자를 추대하기로 결정한 뒤 입원 중인 최고문에게 찾아가 동의를 구하는 방식과, 여러 주자 사진을 보여주면 최고문이 손가락을 짚어 결정하는 방식이다. 최고문은 말을 못할 뿐 판단 능력은 충분히 있다고 한다. 다만 최종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 같은 의사 결정 기구에 위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관건은 김덕룡 의원의 행보. 정발협에서 축출되는 수모를 겪은 김의원은 갈수록 정발협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5월30일 당무회의가 열리던 오전 10시30분께 김의원은 회의에 불참하고 여의도 63빌딩에서 계보원 43명(원내 17명, 원외 26명)을 불러모아 자신의 대권 사조직이나 다름 없는‘21세기 국가경영연구원’ 창립 총회를 개최했다. 그가 최근 들어 부쩍 이회창 대표 지지자인 허주를 자주 만나는 것도 독자 행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최형우 고문측의 생각이다.
최고문 진영, 김의원 계보 평가 절하
김의원측이 21세기 국가경영연구원 이사로 서명을 받아놓았다며 계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지구당위원장은 원내 46명 원외 37명 모두 83명이다. 이들 가운데는 정발협에 서명한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직까지 서명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여권 핵심부나 최고문 진영은 김의원 계보가 거품에 불과하고 머지 않아 상당수가 이탈하리라고 본다.
김의원 진영은 1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할 자신이 있으며, 그때 합종연횡을 통해 2차 경선에서 대권 티켓을 따내면 된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그러나 만약 1차 경선에서 2위 밖으로 밀려날 경우 2차 경선 때 이회창 대표를 지지하리라는 다소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허주와 일본에서 만났던 것도 그런 연장선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6월 초 사무실 정식 개소, 6월 중순 독자 후보 추대라는 숨가쁜 일정을 잠정적으로 잡아놓고 있는 정발협이 그동안 고수해온 중립의 벽을 허물고 점차‘반이회창’흐름을 드러내고 있다. 며칠 전 서청원 간사장이 사석에서 이대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 다른 민주계 의원으로부터 ‘간사장이 속내를 함부로 내비쳐서는 안된다’는 항의를 받았다거나, 일찌감치 이수성 고문 진영에 가담했던 강용식·강성재 의원이 5월28일 극비리에 정발협에 가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권 정국에서 최대 변수로 떠오른 정발협. 김대통령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정발협이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