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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 30여 명 동원…사무처 직원, 대통령 욕하다 ‘들통’
원래가 디시인사이드에 욕설 글이 많기는 하지만 위의 글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작성자의 아이피 주소(컴퓨터가 연결된 네트워크의 위치)가 한나라당 당사였던 것이다. 아이피 번호는 211.44.187.143. 그동안 정당 직원들이 신분을 감춘 채 인터넷 여론 조작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디시인사이드는 국내 네티즌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 사이트다. 그만큼 분위기를 장악하기 위한 여론 전쟁도 가장 치열한 곳이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해명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1월7일 이 문제를 둘러싼 한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꼭 한나라당 직원이 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나라 당사에는 기자들도 있고 외부인도 있다”라고 흐지부지 넘어갔다. 과연 출입 기자가 그랬을까? <시사저널>은 전산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한나라당 아이피 주소의 실체를 추적해 보았다. 추적 결과 한나라당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이 쓰는 아이피 주소는 끝자리가 144로, 문제가 된 주소(143)와는 전혀 달랐다. 한나라당 네트워크는 방화벽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기자나 외부인이 211.44.187.143으로는 전혀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였을까? 기자가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에게 이 사실을 묻자 그는 “솔직히 우리 직원이 한 게 맞다.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그 직원은 한나라당 사무처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는 돈을 받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알바)이 아니다. 한나라당에 알바는 없다. 아이피 주소를 남겼다는 것 자체가 알바가 아니라는 증거다”라고 해명했다.
‘211.44.187.143’ 이 번호가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년여 전,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에도 대선 개표조작설이 한창 나돌고 있었을 때, 한 정당 홈페이지에 이 조작설을 퍼나른(복사한) 아이피 주소가 바로 이 번호였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사이버여론조작팀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1년이 지난 지금 여러 경로를 거쳐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이 팀은 3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선 직후 해체되었다. <시사저널>은 우여곡절 끝에 그 30여 명 중 한 사람과 접촉했다. 한나라당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나도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 당시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싫다”라고 답변을 회피했으나, 기자가 제시한 사이버 여론팀의 존재와 구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사이버 여론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는 ‘상대 당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자기 당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욕설과 비방을 했다’며 신고를 의뢰한 사건이 5건이나 접수되었다.
디시인사이드 사건의 경우 흥미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문제의 한나라당 아이피 주소로 쓴 글을 더 찾아보면 ‘노무현이나 이회창이나 지긋지긋하다’라고 쓴 문장도 나온다는 점이다. 이회창과 노무현을 같이 버리려는 한나라당의 심정이 은연중 새어나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