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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다면 우스운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 사소한 환경 변화에도 크게 움직인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모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대청소했을 때, 또는 새로 도배한 집에 이사했을 때. 십중팔구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각오가 새로워지는 것을 가슴 뿌듯이 느꼈으리라. 어릴 적 새 학년에 올라가서 받아든 교과서의 종이·잉크 냄새를 맡으며 향학열을 불태운 경험도 빠뜨릴 수 없겠다. 번번이 작심 삼일로 끝났겠지만.

지난 9월1일 국세청이 새 집으로 이사하며 ‘제2의 개청’을 선언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뒷골목에 있던 옛 청사는 어쩐지 칙칙하고 권위적인 모습이었다. 그 건축물의 이미지는 국민이 세무 공무원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와 일치했다(서초동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법원과 검찰청 건물도 마찬가지다). 놀랄 일은, 국세청이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전혀 관료답지 않게 종로 대로변에 최첨단으로 지어진 종로타워에 입주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우중충한 옛 건물과 넓은 유리창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새 청사의 극단적 대비. 청사 이전이 단지 눈에 보이는 변화라고 할지라도, 그같은 발상 전환은 어쨌든 자기를 쇄신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좋은 모습이다.

안정남 국세청장은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의욕이 불끈불끈 솟는 모양이다. 국세행정서비스헌장을 선포하고 납세자보호담당관 발대식을 가졌다. 행정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부르짖었다. 잘못된 제도와 깨끗하지 못한 공무원의 행태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한마디로 조세 정의를 이루고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사람의 말은 그것이 진실되고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말일 수 있을 터인데, 지금 이 시대는 말 아닌 말이 분탕질 치는 불신의 시대이다. 그러니 모처럼 마음을 다잡은 국세청으로서야 억울한 일일지 모르지만, 아직 그들의 굳센 다짐과 약속을 그대로 믿어줄 국민은 드물다. 그러니 어쩌랴. 작심 삼일이 아니라 작심 삼년은 되어야 돌아앉은 국민의 마음에 믿음이 쌓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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