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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에서도 김대중은 누구 못지 않게 자주 토론 대상에 오르는 정치인이다. 대선 후보 주자들의 텔레비전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그 빈도는 더욱 잦아졌다. 국내 최대 PC통신망인 하이텔 토론방(플라자)에는 6월 들어 하루 10∼20건씩 김대중과 관련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선거권은 없지만 김대중은 죽어도 안된다’고 역설하는 자칭 ‘애국 고딩어(고등학생을 가리키는 통신인들의 은어)’에서부터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김대중을 지지하게 됐다’는 대학생, 자그마치 A4 용지 7장에 걸쳐(통신망에서는 A4 용지 1장을 넘기는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평적 정권 교체론의 허실을 꼼꼼히 따지는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올라오는 글의 색깔·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김대중을 무덤에서 부활하게 한 문민 정부
흥미있는 현상이다. 무엇 때문에 김대중은 이토록 화제가 되는 것인가. 김대중이 ‘정치 거목’이라고는 하지만 경륜과 지도력으로 따진다면 김영삼·김종필도 그에 못지 않은 분석 대상이다. 그러나 김대중 관련 서적과 비교할 때 김영삼 관련서는 3분의 2, 김종필 관련서는 3분의 1 수준이다. 단, 분명하게 구분할 점은 있다. 92년 대선 이후, 더 엄밀히 말해 95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를 기점으로 ‘김대중은 누구인가’에서 ‘김대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로 논의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에 대한 논의는 그의 사상·전력에 시비를 거는 측(<영웅의 최후> <김대중, 이제는 당신이 대답할 차례> 류의 책이 대표적이다)과 옹호·지지하는 측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곧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돌아온 DJ’ 이후 이처럼 단순한 논의 구도는 무너져 버렸다.
정치인 김대중이 아니라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사회 현상에 눈을 돌리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이는 강준만 교수이다. ‘김대중 문제를 공론의 광장으로 이끌어 낸 최초의 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강준만 교수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편견과 음모를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김대중 문제를 끌어냈다. 그가 보기에 지식인·언론이 주도하는 ‘김대중 죽이기’는 사회 전반에서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호남 죽이기’가 겉모습만을 달리한 형태였다. 그는 92년 대선 직후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발표했을 때 평소 김대중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지역·계층·언론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데서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의 책에는 92년 대선 다음날 부산의 한 새벽 시장에서 있었던 일화가 실려 있다.
“김대중씨가 인물은 인물인디 시를 잘못 만났는기라.” “하모 그 사람맨치 똑똑한 사람이 없다 카드라. 한번은 대통령 해묵을 사람인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이다. “인자는 찍어주고 싶어도 정치 안한다 안카나”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이들의 정서를 강준만 교수는 ‘확인 사살’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문민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여전히 지속·강화된 호남 고립화 구도가 결국에는 김대중을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강교수와 대립적인 입장에서 김대중을 문제 삼은 이는 손호철 교수(서강대·정치학)이다. 손교수는 김대중이 지역 차별의 최대 피해 정치인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87년을 기점으로 김대중과 호남 문제가 ‘객관적’(‘주관적 인식’과 대립되는 의미로 손교수는 이 용어를 사용한다)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88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5·18 문제 해결 방법을 놓고 김대중이 보여준 소극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비판은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한 뒤 빠르게 증폭된다. 그가 보기에, 잇단 수구화 정책으로 김대중이 김영삼에 대해 갖고 있던 상대적 진보성과 민주성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다. ‘정치란 악마와도 손을 잡는 것’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하는 유신 및 5·6공 세력과의 연합은 3당 통합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 달라져 돌아온 DJ’는 김영삼·김종필과 함께 과거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청산할 과거는 ‘3김 私黨 정치’와 ‘지역 할거주의’로 요약된다. 곧 손호철 교수는 정치적 민주주의 확립을 가로막는 구시대적 정치 행태의 상징으로 김대중 문제를 보고 있다.
김대중 문제를 읽는 방식이 판이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결론으로 달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이 구체화하고 ‘수평적 정권 교체론’이 그 이론적 방패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손호철 교수는 연초에 펴낸 책 <3김을 넘어서>를 통해 수평적 정권 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DJP에 의한 교체는 큰 의미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야권이 정권 교체를 이루어 여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손교수는 4·19, 5공 청문회, 전·노 재판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과거 정권이 수평적 정권 교체보다 더 ‘혁명적’인 방식으로 권력 남용에 대한 심판을 받아 온 전례가 있음을 특유의 독설로 상기시킨다.
“DJ는 지역주의 생산자이자 최대 수혜자”
그가 이처럼 독설을 퍼붓는 이유는 간단하다.여야간 정권 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집권할 정당의 성격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정권보다 야당이 더 민주적이거나 비슷할 정도로 민주적일 때만이 정권 교체에 따른 모든 효과는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유신 잔당 및 5·6공 세력과의 결합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DJP 연합은 수구적 부르주아가 주도권을 쥔 정파 연합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리더십 스타일이나 색깔론으로 시달린 과거 경력으로 보아 김대중은 현정권이 그나마 이루어놓은 ‘자유주의적’ 개혁마저 ‘반동적’ 정책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손교수의 진단이다.
여야간(수평적) 정권 교체를 넘어 지역간 정권 교체론에 이르면 손교수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이는 6·27 지자체 선거 이후 김대중 4수 실험의 도덕적 명분과 승리 가능성을 지역 구도를 통해 부각함으로써 위기를 해소하려는 ‘수세적 공세’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김대중은 이미 지역주의의 피해자를 넘어 ‘지역주의의 생산자이자 최대 수혜자’이다. 그 죄과로 호남 지역민은 그동안 치른 숭고한 투쟁이 ‘전라도 대통령 만들기’에 불과했던 것으로 매도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최근 나온 <인물과 사상> 제2호에서 이를 ‘자신의 감상으로 지은 성전에 김대중과 호남을 모셔 놓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행태를 보이면 신성 모독이라고 펄펄 뛰는’ 모습으로 비유했다. 정치라는 현실에 ‘도덕’과 ‘이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손교수에게서 ‘운동권 일각의 소영웅주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 정치판에서 진정한 민주화를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 지역주의 해소를 상위 개념으로 두는 것은 당연하며, 그런 의미에서 지역주의 문제를 전면으로 부각한 지역간 정권 교체론은 ‘일대 진보’라는 것이 강교수의 평가이다.
강준만·손호철 교수의 ‘김대중 살리기’ 대 ‘김대중 죽이기’가 진행되는 한켠에서 이들과는 또 다른 김대중 문제 접근법이 시도되고 있다. 최근 나온 유시민씨(38·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 대학 박사 과정·경제학)의 <97 대선, 게임의 법칙>, 전인권씨(39·서울대 박사 과정 수료·정치학)의 <김대중을 계산하자>가 대표적인 책들이다. ‘김대중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같은 문제 의식을 앞에 내세우지 않았다. 전략적·객관적 처지에서 ‘김대중 대차대조표’를 뽑아 보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해 이들의 손익 계산은 엇갈린다. 물론 이는 1차적으로 계산법의 차이에 기인한다. 유시민씨는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 행위’가 승부를 가른다는 게임 이론에 입각해 87·92년 대선을 분석했다. 전략적 투표 행위란 ‘최선의 후보’가 낙선할 것이라고 예측한 유권자가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선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행위를 의미한다. 한 예로 87년 대선 당시 좋아하는 후보 순서가 ‘김종필>노태우>김영삼>김대중’인 유권자가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여론 향배를 살펴 김종필이 낙선할 것이라고 예측한 유권자는 최악의 후보(김대중)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선의 후보(노태우)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유씨는 지난 10년 간의 통계를 토대로 게임 이론의 타당성을 설득하고 있다. 87년에 김종필, 92년에 박찬종이 평소 여론조사 지지율의 절반에 불과한 8.1%, 6.4%의 표를 얻은 것이 대표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장 많은 유권자가 ‘최악의 후보’로 김대중을 꼽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호남 유권자들의 ‘반김대중 성향’이 선택을 결정하는 최대 요인인 셈이다.
유씨는 이같은 반김대중 성향이 ‘전라도 혐오증’, 김대중에 대한 용공 조작, 검·경·언론의 편파성 등에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비와 무관하게 반김대중 성향은 ‘주어진 조건’이다. 곧 게임 참가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게임이 벌어지는 시점 이전 또는 그 시점에서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장기적인 치료를 요하는 발병 원인을 가진 현상이다.
‘반김대중 정서’의 맹목성을 드러내는 에피소드 하나.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자칭 ‘흠잡을 데 없는 토종 TK’ 유시민씨는 87년 대선 기간에 대구의 한 시장에서 들은 상인들의 대화를 이렇게 옮겨 놓았다. “전두환이가 참말로 잘하기는 다 잘했는데, 딱 한 가지는 잘못한 기 있다 아이가” “먼데?” “김대중이 안 죽이고 놔둔 거, 그기 잘못한 거 아이가 이 말이라.” 김대중을 죽여야 하는 이유를 상인은 간단하게 설명한다. “김대중이, 그거 순 빨갱이 아이가!”
따라서 유씨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범야권이 추대하는 제3후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92년 대선과 달리 △‘호남 대 비호남’에서 ‘영남 대 비영남’으로 대결 구도가 옮겨 가고 △텔레비전 토론이 활성화하는 등 정치적인 역학 구조가 끊임없이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유씨가 지나치게 ‘정태적’인 접근법을 취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유씨는 전화를 통한 인터뷰에서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밝혔다. 김대중 문제가 ‘인지도가 낮은 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며, 여권에서 비영남권 후보가 나올 경우 야권이 상정하는 ‘영남 대 비영남’ 구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전인권씨는 현재의 국내외 정치 구도에서 ‘김대중 카드’가 갖는 효용을 요모조모 계산한다. 김대중에 대한 열광적 지지 또는 극단적 혐오라는 양분법을 떠나 냉철하게 이 문제를 따져 보자는 의미에서 ‘계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신은 ‘강원도 감자바위’ 출신이며 ‘김대중 사진만 보아도 기분이 나빠지는 반김대중 지지자’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전씨가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 설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에 따르면, 김대중은 △지역 갈등을 봉합하고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국민적 통합 △지방 시대 활성화 △마지막 남은 ‘3김 정치 자산’의 사회적 환원 △수평적 정권 교체 차원에서 ‘엄청나게 이용 가치가 큰’ 카드이다. 그것은 ‘김대중이 잘나서가 아니라 현재 조성되어 있는 정치 상황’때문이다.
지역 갈등이 한국 민주주의 승부처 될 수도
전씨는 지역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역 갈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승부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갈등과 봉건적 신분 제도에서 말미암은 갈등으로 5백∼6백 년씩 진통을 겪은 뒤 민주주의를 이룩한 영국·프랑스가 이를 잘 보여준다. 에드워드 실즈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핵심적 단계는 ‘반대파 용인’이다. 여기서의 반대파란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인 세력’이다. 전씨에 따르면 현단계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 문제는 정치 엘리트를 배출한 경상도 지역이 그렇지 못한 전라도 지역을 용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좌절된 상태에서 통일을 맞는 한 ‘호남·중부권 소외 계층에 북한이 가세한 소외 블록’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의 지적에 전씨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시민씨와 전인권씨가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출발 지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전인권씨는 6·27 지자체 선거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에 대한 명백한 지지’를 발견한 뒤 지역 갈등과 김대중 간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유씨는 87·92년 대선 과정에 나타난‘뿌리 깊은 반김대중 정서’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각각의 논리 구조를 갖춘 이 두 가지 해법이 별다른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데 ‘김대중 문제’의 특성이 있다. 김대중이냐 제3후보냐, DJP 지지냐 반대냐 하는 현실적인 선택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건은 김대중 문제로 상징되는 지역 갈등·정치 개혁·통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합의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