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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기간 규정한 법조항 없어 유사시 혼란 예상…“공선법 개정해 대비해야”
“현행 헌법은 사임이나 유고 등으로 대통령이 궐위(闕位)될 경우 보궐 선거를 실시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 후임 대통령의 임기에 대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후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 동안 대통령 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김대통령이 대선 자금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듯, 대통령 선거에는 수천억원이라는 자금이 들어간다. 때문에 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막대한 돈을 써가며 보궐 선거를 하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다. 보궐 선거로 대통령을 뽑고 몇 개월 후 다시 수천억 원을 써가며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은 큰 낭비이다. 국익 차원에서라도, 대통령 하야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정계 소식에 밝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다수 의견은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전임자의 잔여 임기가 아니라, 새롭게 5년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소식통은 “권력 최상층에서도 이 문제를 법률적으로 검토했는데, 보궐 선거로 당선된 후임 대통령은 5년을 통치할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선출 시기·임기 시작 시점만 명시
이처럼 보궐 선거 당선자의 임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은, 이와 관련한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사망·판결 등의 이유로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내에 후임자를 선출한다’(68조)와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70조)라는 조항만 있을 뿐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에 대한 규정이 없다. 누구나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유사시에 대비한 관련 법규가 미흡한 실정이다.
94년 제정된 통합 선거법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약칭 공선법)에도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개시된다’(14조)라고 임기 시작 시점만 규정했을 뿐, 그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언급이 없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법조계의 다수 인사는 상식적인 판단임을 전제로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5년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 취임한 지 얼마 안된 대통령이 사망 등으로 유고되어 보궐 선거를 실시할 경우, 그 당선자도 전임자의 임기를 넘겨 5년간 통치해야 하느냐 하는 상식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보궐 선거에서 패한 세력은 새 대통령이 전임자의 잔여 임기 동안만 재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가능성이 높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 상태에서 정식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러 당선자를 뽑았는데, 갑자기 현직 대통령이 궐위된다면 누가 대통령 직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역시 애매모호하다. 상식적으로는 새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직을 수행하면 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관련 법조문을 근거로, 국무총리가 전임 대통령의 임기까지 권한 대행을 맡고, 당선자는 그 이후부터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이러한 애매모호함을 정리해줄 수 있을까. 한 헌법학자는 “헌재는 헌법을 토대로 관계 법률이 위헌인지를 판단하는 곳이다. 그런데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임기처럼 헌법에 그에 관한 규정이 없다면, 판단할 근거가 없으므로 청구를 각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신 헌재는 이러한 법률상의 미비점은 ‘입법 부작위’(법률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 해당한다며, 입법부에 관련 법률을 만들라고 요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헌재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할 수 없으리라는 설명이다.
앞에서 열거한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국가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가 있다.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회가 빠른 시일 내에 회기를 열어 보궐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를 명시하는 쪽으로 공선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