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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늘린 빅테크 기업 실적 한파에 ‘거품’ 경고 쏟아져
美 엔비디아 실적 따라 향방 갈릴 듯 

8월5일 한국을 비롯해 세계의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사라진 시가총액만 235조원. 16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주가가 폭락한 원인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회의론이었다. 투자 대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침 AI 반도체 랠리를 주도한 엔비디아도 차세대 칩의 생산 지연 문제로 주가가 출렁거렸다.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공개된 것은 2022년 11월30일이었다. 이후 산업 전반에 AI 혁명이 가져올 혁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낙관적인 전망이 쏟아졌다.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AI가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 GDP(국내총생산)를 7%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AI가 미래를 바꿀 기술로 주목받으면서 엔비디아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구글의 모기업), 그리고 아마존과 테슬라, 메타 등은 혁신을 주도하는 7개 기업, 이른바 M7(Magnificent 7)으로 불리면서 관련 주가의 상승을 이끌었다.

ⓒD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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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당장은 AI로 세상 바꾸지 못해”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돈은 많이 드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지난 2분기 알파벳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까지 4개 기업의 AI 관련 설비투자액을 합치면 약 583억 달러에 달한다. 작년의 같은 분기와 비교할 때 약 60% 증가했다. 상반기 투자액은 모두 1060억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 막대한 투자를 정당화할 만한 근거는 없다. 뚜렷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AI 서비스가 없고 관련 매출은 투자액의 10%에도 못 미친다.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회사인 세쿼이아캐피털은 보고서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투자한 비용의 회수를 위해 필요한 매출은 연간 6000억 달러지만, 실제 매출은 100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불과 1년 전 AI가 바꿀 미래를 낙관했던 골드만삭스도 말을 바꿔 앞으로 수년간 빅테크 기업들이 1조 달러의 설비투자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얻을 게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AI는 과장 광고였으며 소프트웨어 개선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는 헤지펀드 투자회사 엘리엇의 경고까지 나왔다.

실적을 보면 경계의 목소리는 자연스럽다. 지금 돈을 벌고 있는 것은 AI에 투자하는 기업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AI 인프라’는 프로세서인 GPU와 이를 장착한 서버, 전용 통신망, 저장장치, 관련 시설 등으로 이루어진다. 당분간 AI 투자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수입은 반도체 칩과 서버, 통신망 업체들이 가져갈 것이다. 금광이라고 해서 땅을 파고 있는데 정작 금은 찾지 못하고 돈은 삽과 곡괭이를 파는 사람들만 벌고 있는 격이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의 붕괴가 AI 분야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을 경고한다.

생성형 AI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 MIT의 대런 애스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는 ‘AI에 대한 간단한 거시경제학(The Simple Macroeconomics of AI)’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생성형 AI로 인한 미국 경제의 총요소생산성 증가는 0.5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 획기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시점에 경제 전체로 보면 AI에 대해 비효율적인 자원 투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흔히 혁신 기술은 처음 기술 촉발(Innovation Trigger) 단계에서 시작해 과도한 기대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 계몽의 경사(Slope of Enlightenment) 단계를 거쳐 생산의 안정기(Plateau of Productivity) 단계로 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따르자면 인공지능은 이제 ‘환멸의 골짜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AI에 대한 유용성과 용이성이 높아져야 한다. 많은 소비자가 찾는 킬러 서비스가 등장해 이용자가 쉽게 편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하지만, AI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AI(인공지능)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사옥 ⓒAP연합·DPA연합·AFP연합
AI(인공지능) 산업을 이끌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사옥 ⓒAP연합·DPA연합·AFP연합

“혁신은 거품을 동반…위험 감수해야”

스탠퍼드대학 인공지능연구소가 AI의 능력과 연구 상황 등을 정리해 발표하는 AI Index 리포트에 따르면, AI는 아직도 경쟁 수준의 수학, 시각적 상식 추론 및 계획과 같은 복잡한 작업에서 인간보다 못하다. 그나마 2026년부터는 학습용 데이터도 소진될 전망이다. AI 학습 속도가 데이터 증가 속도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의 속도는 느린 데 비해 실행 비용은 지나치게 비싸다. 언젠가 AI가 세상을 바꿔놓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장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주주로서는 투자에 더 신중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원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투자란 없다. 거품은 현실의 가격과 실제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AI의 가치를 정확히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모든 거품이 혁신을 낳는 건 아니지만 혁신은 대개 거품과 동반한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일단 뒤처지면, 훗날 앞선 업체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수익성과 관계없이 AI 관련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수익 규모를 생각하면 AI에 대한 투자가 너무 많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의 말처럼 AI에 대한 투자는 과소 투자의 위험이 과잉 투자의 위험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세계의 GPU 시장 규모는 2029년까지 연평균 39% 성장할 전망이다. 전망이 빗나가 AI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면 그건 수익성에 대한 불안 때문보다는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는 경우일 것이다.

2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도 적절하진 않다. 사실 2000년 닷컴 신화가 무너진 데는 미국 경제의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당시 연준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초까지 정책금리를 4.75%에서 6.5%까지 빠르게 인상했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증시는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금리 인하를 앞두고 있고 무엇보다 AI 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재무 구조가 탄탄한 기업들로 빚더미 위에서 투자하고 있지 않다.

당장 시장의 관심은 8월28일 예정된 엔비디아의 2분기 실적 발표에 쏠린다.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을 넘는 2분기 실적과 3분기 전망치를 발표하면 적어도 당분간은 AI 거품론을 잠재울 수 있겠다. AI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 우리는 AI가 인류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적이 될지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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