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애도 안전하지 않고 출산·육아도 어려운 환경 실감
급진적 사회변혁 운동 아닌 생존 환경에 대한 체념의 표현

최근 한 외신으로부터 ‘한국의 4B 운동’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지난 연초부터 미국·영국·캐나다·싱가포르 등에서 새삼 SNS를 통해 관심을 끌고 있는 4B 운동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거였다.

2019년경 일련의 불법 카메라 촬영, n번방 사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등을 거치며 한국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4B 운동’은 여성들에게 ‘남성과의 관계, 로맨스를 지양하자’는 과격한 내용으로 비연애·비결혼·비출산·비섹스를 주장하며 아닐 비(非)자를 소리 나는 대로 B라 붙여 발음하도록 만들어졌다. 4B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젊은 여성들이 반기를 들고, 남성주의적 관점과 가치관에 정면 도전하고, 이에 대한 사회의 반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사적인 관계, 가족, 직장, 사법체계 안에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가 지금처럼 작동하는 이상 여성들이 안전한 이성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Pixabay
ⓒPixabay

남녀 성별 불평등이 저출산 부추겨

세계적으로 남녀 젠더 갈등은 심해지고, 젊은 남성들은 보수적·우경화되는 반면, 젊은 여성들은 진보적·좌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 사회의 남녀 간 젠더 갈등은 가장 심각하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점점 더 이성과의 연애도 안전하지 않으며,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도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뉴스 면에는 빠지지 않고 남성의 여성에 대한 ‘교제폭력과 살인’ 기사가 오른다. 교제 중이던 여성이 거절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최근에도 유명 유튜버 여성의 교제폭력과 협박 피해 내용이 밝혀졌으며, 더욱 놀랍고 끔찍한 사실은 그 피해 사실을 폭로하겠다면서 다시 돈을 요구하고 피해자를 협박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교제폭력 피의자 수는 2021년 1만538명에서 2023년 1만3939명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여성을 만만히 보고 착취 대상으로 삼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이성과의 연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섹스와 결혼, 출산, 로맨스를 포기하겠다’는 여성들의 4B 운동이 사회에서 비난과 우려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4B 운동이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남성들의 성과 로맨스, 재생산 권리도 잃게 하며 나아가 극도의 저출산으로 야기되는 국가 소멸의 문제로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4B 운동은 적지 않은 남성 커뮤니티와 정치권으로부터 우리나라 초유의 저출산 사태를 가져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로 영향력을 가지고 확장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우리나라 저출산 사태는 4B 운동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전한 남녀 불평등한 성차별 때문이며, 실제로 저출산 문제는 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중심이기는 해도 그에 동조하는 남성들 역시 책임을 벗기 어렵다. 물론 가장 중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합계출산율이 0.72대를 기록하는 저출산 국가다. 이미 2023년 서울은 합계출산율이 0.6대라고 하는데, 현재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지속된다면 출산율은 더 아래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저출산 타개를 위해 정부는 올해도 ‘일·생활균형위원회’를 새로 꾸렸지만, 결국 13명의 위원 전원을 아기를 낳아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는 남성으로 채우는 걸 보면 그 효과 역시 기대할 바 없어 보인다. 저출산으로 인한 저출생 문제는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봐야 하며(인간뿐 아니라 자연계의 동물들도 자신이 살아갈 환경과 자식을 키울 환경이 되지 못하면 생식을 하지 않는다), 태어날 인간의 권리에 앞서 적극적으로 배려되어야 할 것은 정작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그들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다.

 

회적 소수자 여성들의 외침에 다름 아냐

7월11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로 ‘저출생’을 지목하며, 그 대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출산과 육아에 드는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성별 차별에 대한 세심한 제도 개선도 요구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남녀 성별 불평등, ‘일하는 여성에게 환경이 가장 열악한 나라’로 악명이 높다. 남녀유별, 남존여비의 성리학 그림자는 21세기를 지난 오늘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입사와 업무, 승진 등의 현장에서 남성에게는 아무 문제도 안 되는 연애와 결혼, 출산이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 요소인 경제적인 자립을 성취하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회사에 지원할 때부터 이 걸림돌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입사와 승진, 연봉의 모든 조건과 협상에서 이 걸림돌들을 확인하는 여성들은 좌절하고 불공정함에 분노를 느끼며 차별을 겪는다.

더욱 이런 불공정과 차별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의 격차와 비례하며,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더 심하게 차별을 겪는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조사하고 발표한 이래 10년간 남녀 성별 간 임금 격차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나마 2015년 37.2%에서 2022년 31.2%로 근소하게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OECD 국가에서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결과 여성을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남성에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미 지난 5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결혼·출산·양육 인식’ 조사에서 결혼 의향이 없는 여성들이 이유로 꼽은 것이 △가사·출산·자녀양육·가족부양 등 역할에 대한 부담 91.2% △결혼의 필요성 못 느껴서 88.8% △경제적 부담 80.8% 등이었다. 여성들에게 연애와 결혼, 출산은 자신의 미래의 삶을 전망할 때 확연히 경제적 소실의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사회적인 성취나 출산·육아 중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할 때 결국 비혼과 비출산, 혹은 결혼과 비출산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다. 여기에는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시간적인 투자를 미래 인구 확보 차원에서 미리 보상하고 후원하기보다는 경제·시간·인력 손실로 생각하는 기업과 정부의 태도 탓이 크다. 

최근 20년 사이에 30세 여성의 비혼율은 4배 상승했다. 여성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니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살아온 인생에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진이 빠진 엄마,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 단절이 된 선배들의 좌절을 곁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4B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급진적 사회변혁 운동이 아니다. 한국 여성들이 이기적이거나 페미니즘 발전을 위해 4B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섹스도 안 하게, 아니 못 하게 된 것이다.

4B 운동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성, 로맨스 욕구와 본능을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사회적 소수자 여성들의 외침에 다름 아니다. 4B 운동의 태동 자체가  그야말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한국 사회 젊은 여성들의 처지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등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생존 환경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체념이며, 좌절의 아우성과 다르지 않다는 데서 비감함을 느낀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