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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병원장에 ‘구상권 청구’ 검토 요청…“현재로선 법리적으로 구상권 적용 어려워” 지적도
“준법 투쟁” vs “불법 행위” 법조계 해석 분분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가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가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로선 교수들이 휴진하지 않도록 최대한 설득하는 것 외엔 별다른 대책이 없죠. (병원장들이) 물리력이나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 교수들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병원들도 진퇴양난이다. 4개월째 이어진 의료공백으로 수천억 원의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들은 병원장의 만류에도 휴진에 들어간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어려운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교수들 집단휴진을 두고 이론상 병원의 소송 제기가 가능해도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병원장들에게 ‘구상권 청구’라는 새로운 칼을 건넸지만 현재로선 법리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부터 집단 휴진에 들어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에 이어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 교수들도 줄줄이 휴진을 결의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 서울아산병원은 다음달 4일부터 최소 1주일 휴진에 뜻을 모았다.

전공의 이탈 사태로 이미 진료·수술을 대폭 줄인 병원들은 교수 휴진으로 추가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병원은 하루 평균 적자 폭이 10억원 안팎까지 불어난 가운데 유보금조차 상당수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인 하은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지난달 28일 “(병원들이) 길게 버텨도 6~8월까지”라며 “이미 유보금은 상당히 많이 바닥을 드러냈고, 직원들 월급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교수들의 집단 휴진에 곧바로 ‘구상권’ 카드를 꺼내들며 압박했다. 각 대학병원장에게 병원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만약 병원이 교수들의 집단 진료거부 상황을 방치한다면 건강보험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 선지급을 못 받을 경우 병원으로선 급한 불을 끌 재정 여력을 잃게 된다.

다만, 현재로서는 병원이 구상권을 청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병협) 부회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구상권은 (의료진에 의한) 손해를 (병원이) 대신 갚아준 뒤 나중에 실제 원인을 제공한 사람한테 다시 돌려받는 건데 지금 상황에서 이를 검토하라는 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누가 손해를 발생시켰느냐 등 책임의 문제로 넘어간다면 (병원과 의료진 간)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구상권은 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하여 채무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병원이 의료진 집단행동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손해액을 대신 지불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의료법 전문인 이동찬 변호사(법률사무소 더프렌즈)는 “가령, 교수들 휴진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환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병원이 의료진을 대신해 돈을 지급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병원이 (교수를 대신해) 돈을 지급한 사실이 없고 환자 감소 등 손해만 발생한 상황에서는 구상권 법리가 아니라 일반 손해배상 법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는) 환자에 대한 병원 측 손해가 발생할 경우 병원이 이를 감수하지 말고 개별 의사에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으라는 지침”이라고 해석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사태 해결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 17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한산하다. ⓒ연합뉴스

병원장 허가 없는 집단휴진…불법행위 vs 준법 투쟁

병원이 실제로 교수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론상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더라도 병원 내 경영진과 의료진 간 소송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두고는 법조계 전망이 엇갈린다. 병원의 핵심 인력을 상대로 싸움을 걸면 추후 진료 축소 문제를 풀기 어렵기에 실제 소송이 이뤄지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병원이 교수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 위해서는 병원 측 손해와 교수들의 집단휴진 사이 인과관계가 증명돼야 한다. 교수들의 행동이 불법행위이자 채무불이행이라는 사실도 입증돼야 한다. 다만, 단순 진료 거부가 아닌 연차 휴가 방식으로 진료 축소나 휴진에 동참할 경우 병원 손실의 직접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 

우선 병원장 만류에도 교수들이 집단휴진에 동참한 것은 불법행위라는 관측이 있다. 의사 출신인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교수들의 휴진을 허용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기한으로 휴직해버리면 (병원에)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행동한 것이기에 불법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이어 “(병원이) 법적 손해를 끼친 의사 개개인에 손해배상을 충분히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사직서를 내지 않아 계약상 진료 의무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행동에 나선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동찬 변호사는 “현재 근로 계약이 있는데 이를 위반한 휴진일 경우 발생한 병원 손해는 의료인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준법 투쟁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변호사는 “가령 (전공의 이탈 이후) 교수들이 법에 정해진 업무량의 100%가 아닌 200~300%를 해왔다면서 원래만큼만 하겠다고 주장하면 다양한 법리적 논점이 생긴다”며 “첫째, 준법 투쟁을 한 사람에 대한 처벌 가능성과 둘째, 환자와의 관계에서 불법이 형성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교수들의 행동이 근로기준법상 합법이더라도 환자와 진료시스템, 병원 운영 관계에서 불법의 소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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