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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동트기 전 부여의 한 인력사무소에 모인 근로자 50~60여 명…”대부분 불법체류자”
외국인 인건비 올랐는데 인력사무소 수수료율은 안 줄어…”우리 농민은 ‘을 중 을’”
“'불법체류자'라는 마약과 ‘브로커’라는 마약상에 중독된 농민들”
41만 명. 법무부가 올해 집계한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수다. 한국에 살고 있는 전체 외국인 수인 219만 명의 약 19%에 해당한다. 5명 중 1명꼴이다. 단속의 일선에 서있는 경찰 조직과 비교하면 그 숫자는 경찰공무원 정원인 14만 명의 약 3배에 달한다. 가히 공권력을 압도하는 규모다. 그 규모 못지않게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상당하다.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대다수 농가는 이들의 노동력에 매달리고 있다. 농가의 절박함. 이는 또 다른 누군가의 먹잇감이 된다. 바로 불법체류자 알선 브로커들이다. 농촌에서는 자조 섞인 말이 돈다. “농민들이 ‘불법체류자’라는 마약과 ‘브로커’라는 마약상에 중독돼 버렸다.” 시사저널은 부여군의 A 인력사무소에서 그 현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곳은 부여군 일대 인력사무소 중 알선 인력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사무소 직원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모자를 눌러쓴 채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성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장부에 끄적이고 있었다. 그 뒤에 투명하게 비치는 사무소 안에서는 약 10명의 근로자가 무언가를 기다리듯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무소 안에는 이런 글귀가 한글과 베트남어로 쓰여 있었다.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찾아온다. 즉 돈, 일은 당신들 몫이다.’ 이윽고 사무소 맞은편 차도에 트럭과 승합차들이 줄지어 섰다. 농가에서 근로자들을 데리러 온 차량이다. 가방을 들쳐멘 근로자들은 적게는 3명, 많게는 6명씩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공터의 사람들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오전 6시40분쯤 되자 대부분이 자취를 감췄다. 헤드라이트도 꺼졌다. 이윽고 해가 떴고, 사무소와 공터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이뤄진 근로자 파견업무는 동트기 직전에 모두 끝났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단순노무를 포함해 취업을 하려는 외국인은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광이나 연수 등 목적으로 입국한 합법 체류자도 허가 없이는 취업할 수 없다. 취업비자(E-9)를 받아 입국한 후 사설 인력사무소의 도움을 받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한다. 취업비자 취득자는 입국 전에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정해진 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띔했다. A 인력사무소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파견 인력 중 일부 불법체류자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불법체류자를 안 쓰면 농가가 일을 할 수 없다”며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 돈 안 되는 농사일을 하려는 근로자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부여군의 또 다른 B 인력사무소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B 사무소 대표는 “농가의 필요에 의해 불법체류자를 파견하는데 인력사무소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알선이 ‘필요악’이라고 해도 그 문제점까지 상쇄되는 건 아니다. 금융거래가 힘든 일용직 불법체류자는 농장주로부터 현금으로 일당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인력사무소에 중개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현금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탈세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 불법체류자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법망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 이는 곧 인력사무소의 ‘갑질’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공급 부족한 계절근로자…“불법체류자가 갑”
불법체류자와 인력사무소를 둘러싼 문제는 전국 농가의 고질적 병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작물 재배업 농가 중 91%는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을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가 아닌 이유는 합법 근로자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가의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외국인을 합법 고용할 수 있는 계절근로자 제도를 2017년부터 전국 단위로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정부로부터 매년 일정 규모의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받아 농가에 연결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왜 절대 다수의 농가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걸까. 주된 이유는 계절근로자 제도로 공급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계절근로자로 파견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제도가 시행된 2017년 1085명에서 2022년 1만2027명으로 1만여 명 늘어났다. 반면 국내 농가 인구는 같은 기간 242만2000명에서 216만6000명으로 25만6000명 줄어들었다. 인구 감소분이 계절근로자 증가분을 훌쩍 넘어버렸다. 계절근로자에 대한 복지도 부담이다. 계절근로자를 고용한 농가는 냉·난방 설비와 온수 샤워시설, 잠금장치, 소화기 등이 갖춰진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 산재보험 가입과 식사 제공도 의무 사항이다. 결국 농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체류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농번기에 일손이 절실해지면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리는 빈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현행법상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불법체류자를 많이 고용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꼭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불법체류자 고용 경험이 있는 농민 박아무개씨는 “한국말을 할 줄 알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하거나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도망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어 “대다수 외국인 근로자는 페이스북으로 ‘농장주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며 쉽고 돈 많이 주는 일만 골라 다닌다”며 “이젠 걔들이 갑”이라고 주장했다.인건비 오르는데..."인력사무소 수수료 30~40%"
설상가상으로 인건비도 올랐다. 원래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20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 일당은 10만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농번기에는 일당이 15만원까지 올라가고, 예초기 돌리는 사람은 20만원 이하로는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지난 4월 전남 나주시의회는 외국인 근로자의 일당을 11만원으로 제한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가 뭇매를 맞았다. 외국인 근로자가 대거 빠져나간 것이다. 농가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 상승에 따라 인력사무소가 가져가는 수입은 늘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A 인력사무소 대표는 반박했다. “수수료는 근로자 일당의 10%도 안 되는 데다 근로자가 일을 못해 일당을 적게 받아오면 우리가 메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농민 박씨는 “불법체류자에게 들은 바로는 인력사무소에 주는 수수료가 일당의 최소 20%”라고 전했다. 하종성 한국농촌지도자부여군연합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수수료가 30~40%”라고 주장했다. 발언이 갈리지만, 수수료율이 그대로라면 인건비가 오른 만큼 수입은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부 지역의 인력사무소는 외국인 근로자의 초과근무 수당에서 50%의 수수료를 떼어간다고 한다. 직업안정법상 인력사무소가 일용직 근로자를 알선하고 받을 수 있는 수수료의 상한선은 30%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구인자’인 농장주에게 받아야 한다. ‘구직자’인 근로자에 대한 수수료 상한선은 1%다. 윤종산 주민자치회장(부여 외산면)은 “지금 우리 농민은 용역 브로커의 횡포에 밀려난 ‘을 중 을’ 신세”라고 토로했다. 이어 “외국인 근로자의 일당 상승 배경에 브로커들의 담합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상황은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계절근로자로 입국한 외국인마저 점점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자체별 계절근로자 이탈자 규모를 비교한 결과, 2022년 이탈자 수는 1151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계절근로자 1만2027명의 9.5%다. 2017년에는 계절근로자 1085명 중 이탈자가 18명이었다. 비율로 치면 1.6%다. 5년 사이에 이탈자 수와 비중 모두 늘어난 것이다.20년 만에 다시 제기된 ‘불체자 합법화’
시민단체는 불법체류자 양성화를 촉구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는 지난해 8월 성명을 통해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사면과 합법화 조치는 현 정부가 인구절벽 해결책의 한 방편으로 내세운 이민자 유치 확대와도 결이 맞는다”고 발표했다. 불법체류자 합법화 조치는 2003년 말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 18만4000명이 합법 체류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체류기간이 끝나도 출국하지 않았고, 결국 불법체류자는 다시 늘어났다. 엄진영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등록 외국인의 집단별 특성에 따라 단속과 자진 출국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의 업무 조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유희연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이주노동자 관련 업무는 체류 자격별로 법무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외교부 등 지나치게 많은 부처가 분절화돼 관리·운영 중”이라며 “분절화된 중앙정부의 이주민 관련 업무를 조정하고 지자체의 의견 전달 체계를 갖춘 전담조직 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이민정책 컨트롤타워를 맡을 ‘이민청’(가칭) 신설을 검토 중이다. 그 밖에 사설 인력사무소를 대체할 공공 인력중개센터 확대 방안도 언급된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공공 인력중개센터를 작년보다 16개소 확대한 170개소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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