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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재벌가 불법 묘역 논란, 왜?
전문가들 “‘나만 좋으면 된다’는 잘못된 명당 선호 관행 멈춰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지난 2015년 12월 검찰에 약식 기소됐다. 상수원보호구역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산58번지 일대에 선친인 고(故) 정세형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선영을 불법 조성한 혐의였다. 이때가 2005년이었다. 뒤늦게 문제를 파악한 양평군청은 정 회장 측에 여러 차례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듣지 않았다. 오히려 선영 주변에 조경수를 식재하는 등 규모를 확대했다. 정 명예회장 타계 10주기인 2015년 5월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을 초대해 대형 추모 조형물을 설치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보다 못한 양평군청은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때가 두 번째였다. 검찰은 정 회장을 약식 기소했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벌금만 납부하고 묘를 이전하지 않았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왼쪽 세 번째)이 2015년 5월20일 선친인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선영이 위치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조형물 제막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왼쪽 세 번째)이 2015년 5월20일 선친인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의 선영이 위치한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조형물 제막식을 하고 있다. ⓒ뉴스1

불법 묘역 이장 명령에도 8년째 버티는 HDC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당시 시사저널 기자의 질문에 “위법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해당 군청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나서 위법 소지가 있음을 인지했다. 이후 군청으로부터 지적받은 사항을 대부분 원상복구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자진해 묘지를 이장하도록 여러 차례 독려했음에도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게 군청 측의 설명이었다. 이 일이 있고 다시 8년여가 흘렀다. 지금까지도 상황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1년에 두 번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버티고 있다. 양평군청 장사시설팀 관계자는 “2016년 시정명령을 내렸음에도 묘지를 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해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면서 “한 번에 500만원이 부과되며 1년에 최대 두 번까지 부과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의 경우 차명으로 부모 선영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담 회장은 1991년 경북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일대에 부친과 모친의 합장묘를 조성했다. 문제는 부지 매입 당시 지목(부지의 용도)이 ‘전(田)’이었다는 점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농지 매입이 엄격하게 제한됐다. 현지 주민이 아니고, 농사 목적이 아니면 농지 매입 자체가 불가능하던 때였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서울에 거주하는 담 회장은 어떻게 이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을까. 이 부지의 소유자는 윤아무개씨(1999년)와 류아무개씨(2005년)였다. 이들은 오리온 비서실에 근무하는 임직원이다. 이들을 청도군 선영 인근에 위장 전입시킨 후에 선영 인근의 농지를 대거 매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담 회장은 부모 합장묘를 조성했지만, 30년이 넘은 최근까지도 명의를 바꾸지 않았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부동산실명법과 농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오리온 측도 일부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회사 관계자는 비즈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현지 거주자만 농지를 매입할 수 있었던 때였다.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농지를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러 차명을 고집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명의 변경이나 이장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면서 “선영의 지목을 ‘전’에서 ‘묘지’로 변경하도록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명의 이전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 밖에도 OCI, hy, 현대성우그룹 등의 오너 일가 선영 등이 현재 불법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이 중에서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부부의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담리 일대에 마련됐다. 부지 소유주는 정몽용 회장인데, 선영의 위치가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불법 논란이 일고 있다. OCI그룹의 경우 고(故) 이희림 창업주와 고(故) 이수영 선대회장의 묘역이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라리 산125-6번지와 833-2번지 일대에 각각 조성돼 있다. 이 창업주의 묘역은 지목이 ‘묘지’로 바뀐 상태지만, 작고한 지 6년이나 된 선대회장의 묘역은 아직도 지목이 ‘임야’여서 불법 조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재벌가 창업주나 선대회장의 선영을 두고 제기되는 불법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논란으로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다. 물론 모든 재벌이 불법 의혹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LG가의 선영은 현재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해 있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부친인 구재서 옹의 묘역이 현재 이곳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2018년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역시 부산 선영에 안치될 것으로 그룹 안팎에서는 예상했다. 하지만 구 선대회장은 수목장을 선택했고,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화담숲에 화장 후 안치됐다.  

구본무·강금원 전 회장 사례 귀감 삼아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의 묘역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 중전리에 위치한 시그너스컨트리클럽 내에 위치해 있다. 강 전 회장에게 시그너스CC는 단순히 생전에 경영하던 골프장 이상의 이미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찾은 골프장이 바로 시그너스CC였다. 코스를 돌다 보면 노 전 대통령의 기념식수도 볼 수 있다. 2008년 9월 강 전 회장이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사돈을 맺은 곳 역시 시그너스CC다. 당시 주례는 노 전 대통령이 맡았다. 강 회장이 2012년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 후 시그너스CC에서 영면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풍수지리를 선호하는 재벌가 특유의 잘못된 관행이 반영된 결과였다고 입을 모은다. 요컨대 1961년 장사법이 시행되면서 묘역을 조성할 때는 지자체 허가를 받아 지목을 ‘묘지’로 바꿔야 했다. 2000년 1월에는 장사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규제 근거도 마련됐다. 허가 없이 불법으로 조성된 묘역은 고발하거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풍수지리나 명당을 선호한 일부 재벌가는 지자체 허가 없이 몰래 묘역을 조성했다. ‘남들은 어떻게 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이 잘못된 관행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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