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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 뒹구는 정율성 흉상…1일 밤 훼손된 듯
보수계 인사 “밧줄 걸어 화물차로 잡아당겼다”
경찰, 50대 재물손괴 혐의 입건…남구, 복원 등 논의

3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에 조성된 정율성 흉상이 훼손돼 뒤편 대나무 숲 화단에 방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에 조성된 정율성 흉상이 훼손돼 뒤편 대나무 숲 화단에 방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지자체가 기념할만해서 세운 역사적 인물의 흉상을 왜 자기 멋대로 훼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3일 오전 11시 30분쯤,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소공원. 산책 나온 인근 주민들이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정율성 동상(흉상)이 뽑혀나가 흉물스럽게 변한 단상(기단)을 보며 혀를 찼다.   손을 들고 힘차게 노래하던 모습의 흉상은 폐현수막으로 감싸져 공원 뒤편 대나무숲 화단에 쓰러진 채 나뒹굴었고, 흉상을 받치고 있던 기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붉은 통제선이 둘러 쳐진 4층 기단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고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됐다.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킨 정율성 흉상이 훼손됐다. 2일 오전 9시 4분쯤 정율성 흉상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광주 남구청에 접수됐다. 흉상은 단상에서 완전히 분리돼 바로 옆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10월 3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 소공원에 설치된 ‘정율성 흉상’이 파손돼 대나무 화단에 방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 소공원에 설치된 ‘정율성 흉상’이 파손돼 대나무 화단에 방치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주민들 “역사적 인물 멋대로 평가, 훼손 안돼” 

정율성 흉상이 설치돼 있던 소공원은 사거리 대로변에 위치한데다 산책로가 있어 주민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다. 이날 주민과 일부 관광객은 쓰러진 흉상이 안타까운 듯 발길을 쉽게 떼지 못했다.  화순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양림동 주민 윤정숙(68)씨는 “자기들이 뭔데 역사적 인물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흉상까지 부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학생 김준석(28)씨도 “평가가 엇갈리는 정율성 행적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광주를 이념적으로 트집 잡고 싶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했던 광주 출신의 작곡가 정율성 흉상은 2009년 4월 중국 광저우시 해주구 청년연합회가 남광주JC에 기증했고, 남광주JC는 이를 다시 광주 남구에 기증했다. 따라서 정율성 흉상 소유와 관리 주체는 남구청이다.
​3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주민들이 파손된 ‘정율성 흉상’을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3일 오전, 광주시 남구 양림동 주민들이 파손된 ‘정율성 흉상’을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율성 흉상이 뽑혀나간 기단 ⓒ시사저널 정성환
정율성 흉상이 뽑혀나간 기단 ⓒ시사저널 정성환

훼손 혐의자 “기념사업 철회 요구 관철 안돼 행동”

사건이 확산하자 광주지역 한 보수계 인사는 자신이 흉상을 철거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보수단체 회원으로 알려진 전도사 A씨(56)는 2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지난 1일 밤 흉상의 목에 노끈을 건 뒤 자신이 가지고 간 화물차로 끌어서 뽑아버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는 “광주시에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런 행동(철거)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광주에 의인이 많은데, (정율성 사업 등을 통해) 광주가 오히려 공산주의를 기념하는 전초기지가 됐다”고 주장하며 “동상을 다시 세우는 사람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할 자치구인 남구는 현장 안전 조치를 취하는 한편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광주시와 남구는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한 뒤 흉상 복원 등 후속 조치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남구청과 정율성 흉상 복원과 관련해 논의하는 등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수사에 착수한 광주 남부경찰서는 2일 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경찰에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은 당초 3일 오전 소환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A씨가 변호사 동행을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연기됐다. 그는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추진 입장에 반발하며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이어오다 범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 ⓒ시사저널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 ⓒ시사저널

이념 논쟁에 휩싸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광주 출신 정율성(1914?∼1974)은 조선의열단 소속으로 항일운동을 하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인물이다. 광복 이후에는 북한으로 넘어가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했다. 그러나 최근 광주시가 추진 중인 생가터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놓고 국가보훈부 장관이 반대 의사를 구체화하면서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8월 ‘정율성은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공원조성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박 장관의 공원조성 사업 철회 유구에 ‘철 지난 이념 논쟁’이라며 기존 입장대로 추진할 것을 명확히 했다.  광주시는 대규모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생가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시는 48억원을 들여 내년 초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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