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 시대의 첫 번째 시험대 된 조선업
외국인 인력 확보 위한 파격적인 지원과 대책 강구해야
조선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산업 중 하나다. 철강과 기계 등 다양한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고용을 통한 일자리 제공에서도 핵심 역할을 해왔다. 무엇보다 조선업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의 흐름 속에서도 지역경제에 큰 버팀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조건이 더 유리하면 사업장을 이전할 수 있는 다른 산업과 달리 조선업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지역에 위치해야 하며, 일단 한번 조성된 조선소는 막대한 시설투자와 관련 인프라로 인해 이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통해 부족한 인력 채웠지만…
하지만 조선업은 지난 10여 년간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역 산업을 떠받치던 조선소들은 발주 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그 여파로 군산과 통영 등 산업도시로의 성장을 꿈꾸던 지자체들은 한순간에 위기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LNG선 수요 확대와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살아남은 조선소들은 실적 회복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산업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또한 높은 게 현실이다.
과거 조선 산업이 불황일 때 많은 인력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수도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고, 취업 기회나, 결혼, 교육 등에서도 우위에 있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실제로 2014년까지만 해도 1만4000여 명의 기술인력이 조선소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2022년에는 9000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신규 인력의 유입은 제조업 및 지방 근무 기피 등으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계 등 엔지니어링 분야의 경우 조선사들은 수도권에 R&D센터를 건립해 고급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근무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계속 큰 과제로 남아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수주한 선박의 납기가 지연되고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발생하자 산업부를 비롯한 정부는 외국인 인력 수급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2022년 하반기부터 지속적인 외국인 인력 수급 대책을 수립·시행하면서 기능인력(E-7)과 저숙련 인력(E-9)을 합해 총 1만104명의 해외 인력을 조선 산업에 투입할 수 있었다. 2023년 예상된 인력 부족 규모(1만4000명)의 70%에 해당하는 인력이 확보되면서 위기 상황은 일단 넘겼다. 하지만 이런 대책으로 조선업의 장기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장기 근무와 숙련도 향상, 그리고 이들의 체류를 통한 인구 유지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지만 아직 여기까지는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인 역시 수도권과 대도시를 선호하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유입한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이다.
조선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력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만 명 이상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기능 2호’ 제도를 신설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가 있고, 관련 교육 과정을 이수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체류 기한 제한을 두지 않고 가족 동반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장기간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함으로써 숙련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역의 인구 유지 등 부대 효과를 동시에 고려한 것이다.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한 싱가포르의 경우 오래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해 왔다. 싱가포르의 경우 10년 이상의 장기 고용을 전제로 하되 인접 국가인 말레이시아, 그리고 조선업 관련 우수 인력이 많은 동북아 국가와 그 외 지역을 구분해 인력을 확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령 한국 국적자가 싱가포르 조선소에 취직한다면 최대 고용기간과 공종(工種) 제한 없이 장기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 반면 인도 또는 중국의 경우 투입 가능한 공종이 사전에 정해져 있으며, 숙련도에 따라 14~26년의 고용 상한선을 설정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의 경쟁으로 인해 자국 노동자들의 급여가 낮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 노동자에게 적정 급여를 지급하느냐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정책 눈여겨봐야
국제적으로 조선업 노동자 확보를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 지방에 위치한 한국의 조선소를 선택할 요인은 많지 않다. 급여는 서비스업이나 타 산업 분야에 비해 낮으며 산업재해 위험은 크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역시 약점이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와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급여 인상이지만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린 업계 입장에서는 당장 선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장기간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하고 숙련도 향상에 따른 자격증 취득을 통해 단계적으로 급여를 인상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업 외국인 취업자에 대해 타 분야에 비해 체류기간을 훨씬 길게 설정하거나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지역 내 교육기관과 연계한 한국어 및 자격증 교육 실시, 그리고 기숙사 등 주거 비용의 정부 지원 등을 통한 실질 생활비 감소 등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업은 대한민국 중화학 산업의 부흥을 이끈 동시에 국방과 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지역을 떠날 수 없고, 소멸해 가는 지역을 떠받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조선업을 다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볼 수는 없다.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필수적이라면 그에 합당한 파격적 지원과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기업 역시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제도는 단기 체류와 귀환을 전제로 형성돼 왔다. 우리의 이웃이 될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3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바뀐 만큼 근본적인 제도의 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이민청 설립을 비롯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격화될 인력 부족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첫 번째 시험대는 조선 산업이 되고 있다. 외국인과의 공존, 지방의 생존, 산업 역량 유지와 발전 등 많은 과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