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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자의 부족한 배려는 말의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상처로
말과의 교감은 책임이자 의무…‘함께’ 건강히 즐겁기를

초원, 산길, 해변 등 자연 속을 말을 타고 트래킹하는 것을 '외승'이라고 한다. ⓒ김지나
말을 타고 초원, 산길, 해변 등 자연 속을 트래킹하는 것을 '외승'이라고 한다. ⓒ김지나

승마장에서 강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초원이나 해변, 혹은 산길을 따라 말과 함께 걷고 달리는 것을 ‘외승’이라고 한다. 보통 처음 승마를 배우기 시작하면 외승을 첫 번째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SNS나 대중매체에서 한번쯤 봤을, 말을 타고 자연 속을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은 승마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봄직한 그림이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초보 승마인들이 외승을 가면 대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장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 고작 몇 걸음밖에 뛰어주지 않는데, 외승지에서는 다르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달린다. 교관의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그럼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렇게 자유롭고 신나게 달리는 것이 바로 진짜 승마라고.

그러나 SNS 게시물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건 아니듯이, 실제로 그렇게 말과 사람이 함께 기분 좋게 달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말 스스로 달리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상태여야 한다. 우리는 언제 ‘운동이 즐겁다’고 느끼는가? 적당히 운동하고 충분한 휴식이 주어졌을 때 기분 좋은 건강함을 느낀다.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운동량은 몸과 마음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남길 뿐이다. 말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기승자의 잘못된 판단, 부족한 배려로 인한 피해는 기승자 본인이 아니라 고스란히 말에게 전가된다.

경주 퇴역마 티파니는 무리한 외승을 반복하며 심각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었다. ⓒ허드앤허트 @herd_and_heart_horsemanship)
경주 퇴역마 티파니는 무리한 외승을 반복하며 심각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얻었다. ⓒ허드앤허트 @herd_and_heart_horsemanship)

‘상처투성이’ 티파니가 죽을 힘 다해 달려야 했던 이유

경주 퇴역마 ‘티파니’는 여러 승마장을 전전하다 스무 살이 돼서야 제주도의 한 작은 목장에 정착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60살 고령이다. 외승을 주로 운영하던 승마장에서 팔려와 새로운 훈련사 품으로 왔을 때, 티파니 상태는 처참했다고 한다. 양쪽 뒷다리는 온갖 흉터와 염증으로 뒤덮여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과도한 재갈 사용으로 혀가 기형이 돼 밥을 먹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모두 무리한 외승의 결과였다. 그렇게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티파니는 헐값에 시장에 나왔고, 이번에 입양되지 못했다면 아마 폐사됐을 것이었다. 많이 지쳐있었던지 새 보금자리로 온 첫날부터 티파니는 정신없이 잠만 잤다고 한다.

말은 다른 말들이 달리면 함께 달리는 습성이 있다. ⓒ김지나
말은 다른 말들이 달리면 함께 달리는 습성이 있다. ⓒ김지나

말은 무리를 이끄는 리더 말이 달리면 같이 따라 뛰는 습성이 있다. 다른 말들과 함께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승마장에서와 달리 외승을 나가면 말이 ‘알아서’ 뛰는 이유다. 이것을 향해 ‘자율주행’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마는 수분 내에 끝나고 승마장 레슨은 보통 45~50분으로 규정돼있지만 외승은 기본이 2~3시간이다. 게다가 오로지 질주만이 외승의 이유이자 재미라고 믿는 사람들이 말의 습성을 이용해 끊임없이 말에게 달리기를 종용한다. 티파니의 이전 주인도 그랬다. 그래서 티파니는 한동안 사람, 그 중에서도 성인 남자를 보면 공포에 질려 도망갔다.

우리나라에서 경주 퇴역마가 티파니처럼 스무 살이 되도록 승용마로 활동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 평가하는 이도 있다지만, 티파니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달려야 했던 것일까.

이제는 차분하게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티파니 ⓒ허드앤허트 @herd_and_heart_horsemanship)
이제는 차분하게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티파니 ⓒ허드앤허트 @herd_and_heart_horsemanship)

힘들고 아픈데 참고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보다 승마 문화가 발달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말에게 빗질을 시켜주고 안장을 올리는 일부터 모두 기승자가 직접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긴다. 이렇게 기승 준비를 처음부터 본인이 하다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말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어디가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은지,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나 있지는 않은지. 기승을 마친 후에도 마찬가지다. 다시 안장을 내려주고 땀범벅이 된 말을 보살피면서 혹시 나의 잘못된 자세나 행동으로 다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 티파니를 타기 전 혹은 후에 그 등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안장 보형물 자국을 보았다면, 온갖 상처로 얼룩진 티파니의 상태를 알았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우리나라 승마장에서는 기승준비와 마무리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다 준비된 말을 받아 신나게 탄 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승마장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끝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유럽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말 타는 건 렌터카 빌리는 것 같네요.”

아직도 티파니의 왼쪽 뒷다리와 골반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상태다. 다리가 약하고 염증이 남아 있어 체중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이제 꽤나 안정을 찾아 어린 여자아이를 태우고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다. 불안해하거나 분노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즐겁다고 해서, 반드시 말도 똑같이 즐거운 건 아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아픔을 참은 채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의 기분을 살피고 교감하며 그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기승자의 책임이자 의무다. 그랬을 때 지금 말과 함께 가고 있는 이 여정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승마인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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