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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기사 댓글창 닫히자 선수 SNS로 몰려가 욕설·비방
악플로 인해 극단적 선택한 선수의 사망 기사에도 악플 달아
악성 댓글은 인터넷 기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정치·연예계뿐만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계속 골칫거리였다. 경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들거나 선수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마다 누리꾼들은 ‘팬’이라는 이름으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댓글창에 쏟아내 왔다. 국가대표 경기나 일반 프로 경기 모두 예외는 없었다. 댓글이 건전한 의견 개진의 장이 아닌 선수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2008년 2월에는 경기 도중 쓰러져 8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임수혁을 비하하는 악플이 공개돼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악성 댓글 탓에 여자농구의 ‘기둥’ 박지수(KB스타즈)는 선수생활을 포기하려고 했으며, 홍상삼(KIA 타이거즈)은 한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7월말에는 여자배구 현대건설의 고유민이 신변을 비관하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고유민은 생전에 했던 심리상담 프로그램에서 “댓글이나 악플러들의 ‘네가 배구선수냐’ ’내가 발로 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 그런 악플들을 보면 운동도 하기 싫고, 시합에 나가기도 싫고 그만 좀 애썼으면 좋겠다”라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씁쓸한 사실은 고유민의 사망 기사 밑에도 여지없이 악플이 달렸다는 점이다. 스포츠 기사 댓글이 일부 악의적인 팬의 배설 창구로 변하자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는 댓글을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카카오는 8월7일부터, 네이버는 8월27일부터 스포츠 기사에 대한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네이버는 9월10일부터 스포츠 영상에 대한 댓글 서비스까지 종료했다. 하지만 포털 댓글창이 닫히자 일부 극성 팬은 선수 SNS로 몰려가 화풀이를 해대기 시작했다. 온갖 욕설과 함께 협박성 발언을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보내기까지 한다. 김연경과 같은 흥국생명 소속 이재영은 참다 못해 이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받은 DM 중에는 “김○○(이재영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계단에서 밀었어야 하는데” 등의 메시지가 있었다. 1주일에 6차례 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SNS 악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책성 플레이를 한 선수의 SNS로 몰려가 온갖 욕을 쏟아낸다. SK 와이번스 투수 박민호는 민병헌(롯데 자이언츠)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진 뒤의 태도가 문제가 되면서 개인 SNS가 욕설로 도배된 적도 있다. 점수차를 지키지 못한 마무리 투수에게도 가혹한 ‘손가락 저주’가 퍼부어진다. 팬들과의 건전한 소통을 위해 개설한 창구는 어느덧 팬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창구가 되어버렸다. LG 트윈스의 오지환과 그의 아내 김영은 전 광주MBC 아나운서 부부는 지난 8월초 1000명 이상의 악플러를 고소하기도 했다. 오지환은 원래 법적 대응에 반대해 왔으나, 개인 SNS를 통해 가족 등을 겨냥한 악의적인 메시지가 하루 수십, 수백 개씩 전송되고 계정을 바꿔도 악플이 끊이지 않으면서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 악플러들은 선수 개인의 SNS 계정이 없는 경우 그의 가족 SNS까지 찾아내 기어이 악플을 달거나 DM을 보낸다. 악플러가 스포츠토토 등과 연계돼 있으면 DM은 더욱 노골적인 인신공격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이들은 살해 위협까지 서슴지 않는다. 악성 댓글에 가장 많이 시달렸던 선수는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였다. KBO리그 홈런왕으로 등극할 무렵부터 ‘국거박(국민거품 박병호)’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한 한 누리꾼은 몇 년 동안 박병호를 향해 수천 건의 비난 댓글을 달았다. 박병호가 잘하건 못하건 온라인상에서 비아냥이 넘쳤다. 지속적이고 집요한 악성 댓글로 구단까지 나서 고소 의지를 밝혔으나 정작 박병호 본인은 의연했다. “한 번 만나 보고 싶다”거나 “내가 댓글을 안 보면 그만”이라고 넘어갔다.악플러 1차 고소한 김연경 “선처는 없다”
그러나 박병호처럼 악플을 마냥 견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사 댓글창을 가렸다고 해도 스포츠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개인 SNS를 통한 DM은 안 읽고 넘어갈 수도 없다. 최근에는 각 스포츠 구단마다 유튜브나 SNS 채널을 별도로 운영 중이라 게시물마다 달리는 악성 댓글을 일일이 통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인터넷이 없던 1980~90년대는 오물 투척이나 욕설 편지, 극단적으로는 선수단 버스를 불태우는 것으로 사람들은 분풀이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얼마든지 얼굴을 가리고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생긴 뒤로는 ‘손가락’의 힘을 빌려 이들은 배설 욕구를 충족해 가고 있다. “안티팬도 팬”이라거나 “악플도 관심”이라고 말하기에는 선수들이 겪는 정신적·심리적 충격파가 너무 크다. 그라운드나 코트 등에서는 강해 보이지만 결국엔 선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그릇된 손가락 유희조차 감내해야만 할 의무가 선수에게는 없다. 악플러를 1차 고소한 김연경 측은 “선처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팬이어서 용서한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하다. 악플러에 대한 강력한 대응만이 선수도 살리고, 리그도 살릴 수 있다. 악플러는 팬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