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도한 애국주의에 멍드는 해외 아티스트들

미국 가수 제이슨 데룰로가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리믹스 버전이 10월17일자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2위는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다. 이전에 빌보드 핫100 1, 2위를 동시에 석권한 팀은 비틀스, 비지스, 아웃캐스트, 블랙 아이드 피스 등 모두 4팀이었다. 방탄소년단이 사상 5번째 기록을 세운 것이다. 《새비지 러브》는 사상 최초로 한국어가 들어간 빌보드 1위곡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10월10일과 11일에 진행된 온라인 콘서트도 전 세계 191개 지역 99만여 명 시청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찬사를 받고 있다. 
네티즌들이 BTS 발언에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연합뉴스
네티즌들이 BTS 발언에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연합뉴스
그런데 중국에서 논란이 터졌다. 2020 밴 플리트상(2020 Van Fleet Award) 수상 소감이 문제가 됐다. 이 상은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연례행사로 한·미 우호 증진에 공을 세운 한국인과 미국인에게 시상한다. 올해 방탄소년단이 수상하며 RM이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는데, 그중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our two nations, 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대목을 중국 일부 누리꾼이 문제 삼았다.  한국과 미국을 의미하는 ‘양국’이라는 단어가 ‘중국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존엄’이 무시당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사태를 더욱 키웠다. ‘유명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정치적 발언에 중국 네티즌이 분노하고 있다’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침략자였다’ ‘(RM의 수상 소감은) 미국 입장에만 입각한 것’ ‘한국전쟁은 다수 중국 군인이 희생된 전쟁이다’ ‘화가 나 아미를 그만두겠다’는 등의 중국 누리꾼 입장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중국 팬들은 안중에도 없나’ ‘5년을 좋아했는데 그 시간들이 모두 헛되게 느껴진다’ 등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악화된 인터넷 여론에 기업들은 몸 사리기에 나섰다.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방탄소년단 관련 한정판 제품의 판매가 중단됐다. 현대차와 휠라도 웨이보 계정에서 방탄소년단 관련 이미지와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세계적 이슈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BTS는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기렸지만, 일부 중국인은 (BTS 발언에서) 모욕을 느꼈다”며 “그것(BTS 수상 소감)은 악의 없는 말 같았다. 하지만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지체 없이 (BTS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어 “삼성과 휠라가 K팝 밴드(BTS)와 협력한 흔적을 없애며 거리를 뒀다”고 썼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논란은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서 대형 업체들 앞에 정치적 지뢰가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보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에 진출한 외국 브랜드가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에 희생된 최신 사례가 발생했다. 아직 한한령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가운데 BTS 사건까지 터져 한국 기업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썼다. 미국 일각과 아미 등이 중국 상품 불매를 주창하기도 했다.  황당한 논리의 방탄소년단 때리기로 오히려 중국이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자 당국이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의 검색 순위에서 이 이슈가 사라졌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방탄소년단 관련 사태를 논평해 달라는 질문에 “관련 보도와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을 주목하고 있다”며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고 우호를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과도한 집단 분노 표출을 진정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환구시보도 문제의 기사를 삭제했다. 
0월13일 국정감사장에서도 해당 이슈가 다뤄졌다. ⓒ연합뉴스
0월13일 국정감사장에서도 해당 이슈가 다뤄졌다. ⓒ연합뉴스

중국 ‘링링허우’와 ‘주링허우’ 세대에서 나타나는 특징 

이런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중국의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세대다. 각각 ‘링링허우(九零后)’와 ‘주링허우’(8090后)로 불리는데, 특히 1020세대가 심하다. 대국굴기로 중화제국의 영광을 재건해야 한다는 애국주의 성향이 나타난다. 시진핑 시대 과도한 애국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향유하며 중화민족의 자신감을 되찾은 세대다. 이들 중 일부가 열혈 애국주의 세력이 돼 ‘중국의 영광’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는 듯한 이슈에 대해 집단 실력행사를 벌인다. 특히 최근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반발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6·25 전쟁) 재조명이 한창이다. 우리 동족상잔의 참극이 그들에겐 애국주의·영웅주의·고난극복의 상징이 된 것이다. 중국 교육 당국은 6·25를 ‘미국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중국을 위협하자 중국이 저항한 사건’이라는 시각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젊은 중국 누리꾼이 ‘미국이 침략자’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열기가 뜨거운 싱황이다 보니 방탄소년단 수상 소식이 그들에게 좋은 구실이 됐다.  아무리 저간의 사정이 있다 해도 중국 일부 누리꾼의 입장은 어이가 없다. 중국이 항미원조를 한 나라는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다. 남한 입장에서 중공군은 침략군이요 적군일 뿐이다. 우리에게 적군에 대한 존중을 강요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북한이 6·25의 미군 희생을 기린단 말인가.  황당하지만 문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 처지에서 엄청난 시장을 무시할 도리가 없다.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그렇다. 일본과 달리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 쪽의 억지까지 참아가며 어떻게 중국 시장에서 생존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트와이스 쯔위, 이효리도 중국 누리꾼들의 과도한 공격에 피해를 당했다. 쯔위는 대만 사람인데 대만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대만 독립을 추구한다며 중국 누리꾼이 공격했다. 결국 쯔위와 박진영이 사과했다. 이효리는 《놀면 뭐하니?》에서 부캐 이름을 논의하면서 ‘마오’를 언급했다. 그러자 중국 일부 누리꾼이 마오쩌뚱을 가볍게 입에 올렸다고 공격해 해당 프로그램이 유감 표명까지 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날 때마다 중국에 대한 반발이 강해진다.  중국 일부 누리꾼이 원하는 건 중화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국은 억지논리를 부리며 힘으로 윽박지른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주위 국가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어야만 그 위상이 세워진다. 대국은 물리적 크기가 아닌 아량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강짜 부리는 형국이라면 편협한 나라라는 인상만 강해질 것이다. 한편 중국 일각에서 나오는 비이성적인 목소리를 우리가 확대해석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