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발생한 총기난사 주범 몰린 윤아무개 상병, 군은 ‘수류탄 자폭 사망’ 결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수사 은폐·축소 의혹 제기
1989년 발생했던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으로 몰린 유아무개 상병의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군대의 부실 수사로 유 상병의 타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총기 난사 후 자폭 사망’으로 서둘러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자칫 피해자가 총기 난사의 주범으로 몰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14일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발표한 ‘2020 조사활동보고회’ 보고서에 따르면, 1989년에 사망한 유 상병의 수사 기록에는 ‘총기 난사 후 수류탄 자폭 사망’이라고 기재돼 있다.
당시에는 유 상병이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으로 돼 있다. 수사 기록을 보면, 당시 유 상병은 동료 부대원 2명과 함께 분대장에게 항의하던 중 총을 난사해 분대장과 동료 1명을 살해했다. 유 상병은 살아남은 부대원 A씨와 총기 2정, 수류탄 3발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유 상병과 A씨는 달아나던 중 다툼이 생겨 유 상병이 A씨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자신도 자폭했다. 이때 A씨는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A씨가 유일하다.
위원회는 해당 사건에 대한 진정을 받고 재조사 한 결과, 유 상병의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군대는 유 상병이 사망했음에도 유족에게 시신을 공개하지 않은 채 매장을 했다. 총기 난사 사건에 쓰인 총은 유 상병의 총이 아닌 생존자 A씨의 총이었다. 이 점이 수사 과정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또 사건 진정인에 따르면, ‘타살’로 기록됐던 유 상병의 최초 검안서는 추후 ‘자살’로 수정됐다. 수류탄으로 자폭했다는 유 상병의 시신에 총상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위원회는 당시 헌병의 수사 축소·은폐·부실 의혹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객관적 사실을 은폐하여 망인을 동료 병사를 살해하고 자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유족에 큰 상처를 줬다”면서 “망인 사망 원인에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당시 군대 수사의 문제점을 밝히고, 망인과 그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계기로 2018년 출범했다. 이날 보고회는 출범 2년을 맞아 개최한 조사 활동 보고의 일환이다. 위원회는 1948년 11월 30일부터 2018년 9월 13일 사이 발생한 군 사망사건 가운데 유족 등이 진상규명을 요청한 총 1610건 중 450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상태다.
450건 중 사건 당시 군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233건은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구제 요청을 권고했다. 나머지 227건은 각하·취하로 결정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