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연구팀 설문조사
10명 중 4명 일자리·임금 영향…84%는 “한국 위기”
“국민 모두 자유 박탈…심리적 방역 필요”
광복절 대규모 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시민들의 분노와 공포심도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8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코로나19 기획연구단)에 따르면, 지난달 25~28일 연구팀이 진행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설문조사에서 '코로나19 뉴스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이 47.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분노'와 '공포'가 그 뒤를 이었다.
특이할 점은 '불안' 심리는 8월 초 대비 15.2%포인트 줄어든 반면, '분노'와 '공포' 심리는 두 배이상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달 새 '분노'는 11.5%에서 25.3%로 2.2배, '공포'는 5.4%에서 15.2%로 2.81배 높아졌다.
선택한 감정을 느낀 이유나 계기를 묻는 개방형 질문에서 '분노'를 선택한 응답자들은 "집단 이기심", "8.15 집회", "정부의 안일한 대책" 등을 꼽았다. '공포'라고 응답한 이들은 "확진자 증가", "경제적 불안" 등을 언급했다. 조사가 진행된 8월 말은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 관련 확진자들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에서 속출하면서 대유행에 대한 위기감이 치솟던 때다.
시민들의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은 생활 방역 전환 이후인 6월 초순 9% 수준으로 약간 상승했다가 8월 첫째 주 6.2%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지만, 이번 조사에서 27.9%로 수직 상승했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수도권 중심의 감염 확산 사태가 2월의 1차 대유행 때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위험인식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한국사회가 위기'라는 인식도 높아졌다. 'K-방역' 성과가 높은 평가를 받던 5월13∼15일 진행된 연구팀 조사에서 '한국 사회는 코로나19로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묻는 말에 '한국 사회가 위기'라는 응답은 39.6%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83.7%가 '위기'라고 응답했다.
현재 코로나19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것을 묻는 복수 응답 문항에서는 '감염이 건강에 미칠 영향'(59%)을 선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가 경기침체나 불황에 빠지는 것'(41.3%), '내가 타인을 감염시키는 것'(33.8%) 등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4%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일자리와 무관하다고 밝힌 사람을 제외하면 '일자리를 잃었다'는 응답은 8.6%, '무급 휴가 상태'인 사람은 8.0%, '임금이 줄었다'는 경우는 27.7%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상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늘어난 모습도 확인됐다.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9개 항목에 대한 경험을 묻는 말에는 55%가 '일이나 생활에서 자유가 제한됐다'고 응답했고 '걷기 등 신체활동 감소', '실제로 우울감을 느낌', '중요한 일정(결혼, 시험,취업)이 변경·취소'됐다는 응답 등이 뒤따랐다.
유 교수는 "코로나 사태가 7개월을 훌쩍 넘기며 국민 거의 모두가 일상의 자유로움이 제약을 받고 박탈되는 경험을 했다"며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면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심리방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이 개발한 문항을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전국의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