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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역 전환은 불가피---시설별 위험도 평가 후 단계별 완화 필요
생활방역 시작하자마자 클럽 집단감염 발생
그런데 시점이 묘했다. 생활방역 시행 첫날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5월19일 기준 이태원에 있는 9개 클럽을 중심으로 187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이 가운데 클럽에서 감염된 사람은 93명이고 이들이 가족·지인·동료 등 94명을 감염시켰다. 2~4차 감염이 50% 이상인 셈이다. 클럽을 방문한 20~30대는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므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을 감염시키는 이른바 무증상 감염 위험성이 커졌다. 5월6일 2명까지 감소했던 신규 확진자는 5월11일 35명으로 증가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생활 속 사회적 거리 두기 계획 전반을 재검토해 각종 사회활동 가운데 필수적인 활동 위주의 점진적 완화를 계획하되 유흥시설 등에 대한 강력한 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현재의 감염 확산 정도에 따라서는 안정적인 상황이 될 때까지 완화 계획 일체를 유보하는 등 특단의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6%이던 감염경로 미확인 사례도 5월3~16일 5.1%로 증가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악을 대비하다가 잘 넘어가면 정말 다행이지만 요행을 바라다가 최악을 경험하면 우리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대량 발생의 불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계를 늦추면 최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경고는 지난 3월부터 나왔다.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의 닐 퍼거슨 교수는 ‘적극적인 대응을 미룰 경우 미국에서만 약 220만 명, 영국에서도 51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 코로나 19 환자가 모두 치료를 받아도 미국에서 110만~120만 명, 영국에서 2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를 독감 정도로 여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5월7일 자가격리 조치에만 의존했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고강도 대응으로 태도를 바꾼 계기가 됐다. 유진홍 대한감염학회장(가톨릭의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닐 퍼거슨 교수의 보고서는 우리가 방역을 완화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으로 학교나 프로야구 등에 대한 통제를 풀어줄 텐데 그러면 코로나19는 확산한다. 6월6일 즈음 신규 확진자는 50~6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막을 수 없는 필연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방역이 충분한가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이 활개를 치고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현실에서 생활방역 외에는 답이 없다. 서울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후 신규 확진자가 잠시 증가했다가 다시 줄어드는 모양새다. 그만큼 생활방역이 효과적이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지 2주 만인 5월19일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4명이 무더기로 감염됐고 이들과 접촉한 사람은 277명으로 집계됐다. 발생 장소가 대형 병원이라는 점과 감염 경로가 불분명하기에 불안감이 커졌다.시설별로 차별된 완화 정책 필요
이런 불안감을 없애는 의학적인 방법은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사회적 움직임을 일시 정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와 교육 등에 피해가 발생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충돌한다. 이 때문에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언젠가는 풀어야 한다면 가을보다는 지금이 적기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가을에 코로나19 2차 유행이 덮치면 통제를 더 풀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이 통제를 풀 기회이긴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가적인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다중이용시설 위험도를 재평가해 각 시설의 특성에 맞는 현실적 방역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우주 교수는 “신규 확진자 감소라는 빙산의 일각만 보지 말고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은밀한 전파를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5% 안팎으로 꾸준히 발생하지 않았나. 따라서 통제를 풀더라도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시설별 위험도를 평가해 가장 위험도가 높은 시설은 강화하거나 완화를 연기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도 경제활동을 시작했지만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제안했다. 5월 들어 봉쇄령을 일부 완화하면서 경제활동을 재개한 미국은 3단계의 완화 접근법을 채택했다. 1단계에서는 10인 미만 모임을 일부 허용하지만 학교는 휴교 상태를 유지하며 술집 영업도 허용하지 않는다. 2단계는 50인 미만 모임과 일부 술집 영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시점이다. 3단계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전제로 기업 활동과 요양원·병원 방문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앞으로는 시설별 위험도를 조금 더 세분화하고 조금 더 미세하게 지역별·시도별 조치를 강화하는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계속 보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은 생활방역위원회는 5월19일 4차 회의를 열고 코로나19 고위험 시설 방역 지침과 생활 속 거리 두기 수칙을 개정·보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논의를 거쳐 개정된 수칙은 5월 중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학교와 학원 중 우선 하나를 선택해야
정부는 5월6일 생활방역으로 전환하면서 5가지 수칙(아프면 쉬기, 두 팔 간격만큼 거리 두기, 손 씻기, 매일 2회 환기, 마음 가까이하기)을 발표했다. 그런데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라’는 제1 수칙부터 국민은 부담을 느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국민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가 실천이 가장 어려운 수칙으로 꼽혔다. 아파도 출근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오랜 문화 속에서 휴가 보장이나 불이익 차단 장치 없이는 지키기 어려운 수칙이라는 것이다. 또 ‘두 팔 간격만큼 거리 두기’ 수칙도 실천하기 어려운 환경이 많다. 식당, 버스, 지하철 등에서 1~2m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특히 ‘밀폐’와 ‘밀접’이 공존하는 주점과 클럽의 영업을 허용하면서 거리를 충분히 유지하라는 정부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정진원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상에서 생활방역을 잘 준수하면 새로운 발생이 생겨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 마스크 착용을 안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다수가 모이는 장소에서의 에티켓 홍보에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또 개학은 하되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리 유지 등 감염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20일 학교가 문을 열었다. 집단감염 우려가 높아 여러 차례 개학을 미룬 지 80일 만에 교육부가 방역 당국의 생활방역 시행에 맞춰 고3 학생 40만 명의 등교수업을 시작한 것이다. 등교수업은 생활방역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재갑 교수는 “만일 학업 재개 후에도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이 정도로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학원이다. 여러 학교 학생이 모여 있는 학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 지역에 있는 여러 학교가 동시에 피해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3학년 등교수업 첫날인 5월20일 인천에서 고3 학생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학생들이 소속된 고교 2곳과 인근 고교 1곳은 즉시 등교수업을 취소했다. 이재갑 교수는 “지금이든 9월이든 언젠가 개학하면 확진자는 늘어난다. 문제는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감염되면 큰 문제지만 한 학교에서 몇 명이 감염됐다고 모든 학교 문을 닫기보다는 해당 학교만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고 다른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통제 완화와 감염 확산 사이의 타협점 필요”
서울시가 5월14~15일 만 18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59.2%는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충분히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답했다. 서울 시민 10명 중 6명은 ‘생활 속 거리 두기’ 유지에 찬성 의견을 낸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과 경제와 학업 등에 미치는 피해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전문의들은 현재를 규제 완화와 감염병 확산의 타협점을 찾아야 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학적으로는 모든 곳을 틀어막아 움직이지 않으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학교도 문을 열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한 대가를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인가를 타협하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