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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복합적인 요인들 잠복해 있다 폭발---위안부 문제 해결 고민 계기 삼아야
▒ 이용수 할머니는 왜 기자회견에 나섰나
이용수 할머니는 5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1992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피해 사실을 처음 신고한 후 30여 년간 활동하면서 느낀 소회와 이 과정에서 갖게 된 문제의식을 여과 없이 털어놨다. 이 할머니는 피해 할머니를 대하는 정대협의 인식에 대한 ‘섭섭함’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방식에 대한 ‘이견’을 드러냈다. 37개 여성단체의 결의로 1990년 11월 발족한 정대협은 2018년 7월 정의기억재단(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해 정의연으로 조직이 확대됐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가 통합 후 정의연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정대협과 정의연을 이끌어온 윤미향 전 이사장을 겨냥한 듯한 모습으로 비쳤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에 있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윤 전 이사장만 미리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 할머니는 10억 엔(약 100억원)이 일본에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돌려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윤미향 전 이사장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윤 전 이사장은 4·15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용수 할머니는 “나는 국회의원 윤미향은 모른다”고 말했다. 정대협 때부터 함께했던 윤 전 이사장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의 대응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언론의 관심은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의 대응에 쏠렸다. 정의연은 다음 날인 8일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대한 정의연 입장문’을 내놓았다. 후원금(기부금) 사용과 관련한 해명이 주를 이뤘다. 정의연은 후원금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계지원을 비롯해 역사적 진실과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한 국제 활동, 올해로 29년 차를 맞은 수요시위, 피해자들의 소송 지원 활동,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응 및 콘텐츠 제작·홍보 사업 등에 쓰였다고 밝혔다. 이 외에 평화비 건립,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 나비기금사업, 출판사업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의혹이 확산되자 정의연은 5월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해명에 나섰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일궈낸 세계사적 인권운동사를 이런 식으로 훼손할 수 있을까”라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때 용감한 피해자와 헌신적인 활동가·연구자들이 이 운동을 만들어 왔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이 서운한 감정을 느끼셨을 수 있다”며 “저희 운동을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겠다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윤미향 전 이사장은 8일 자신의 SNS에 입장문을 올려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윤 전 이사장은 “정의연의 활동과 회계 등은 정말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사받고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모금 목적에 맞게 사업도 집행하고 있다”며 “1992년부터 할머니들께 드린 지원금 등의 영수증을 할머니들 지장이 찍힌 채 보관 중”이라고 했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외무장관이 발표했던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10억 엔이 들어오는 걸 피해자들은 몰랐고 윤미향(전 이사장)만 알고 있었다”는 이 할머니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용수 할머니와 통화를 하며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며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윤 전 이사장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할머니께서 우리 운동에 대해서, 또 재정 운용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게 된 건 전적으로 저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부분은 할머니께 앞으로 더 긴 설명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치 영역으로 옮아가 확대 재생산된 논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미래통합당 내에서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진상 규명에 나서는 방안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연의 회계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총선 이후 여권 인사의 비위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의혹 제기를 해 온 통합당이 이번에는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15명은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려는 부당한 공세에 불과하다”며 윤미향 전 이사장을 공개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단체행동에 나섰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의 사전 공모 의혹도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전 이사장의 국회의원 당선을 시기해 ‘폭로’에 나선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로 진출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이용수 할머니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적이 있다. 이 할머니가 ‘깜짝 인사’로 상위 순번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당시 정대협 상임대표를 맡고 있던 윤미향 전 이사장은 이용수 할머니의 국회 진출 도전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이사장이 ‘국회의원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냐’ ‘할머니들이 싫어한다’는 취지로 반대 입장을 전했고, 이 할머니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좋은 일 하고 죽어야지’ ‘할머니들이 왜 기분 나빠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처한 상황과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갈등은 왜 생겼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연 간의 갈등은 꼬일 대로 꼬여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양측을 대립 구도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비판의 본질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게 주변의 조언이다. 그동안 쌓여왔던 개인적인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점검해 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와 일제 피해자 인권활동을 20여 년째 함께해 온 최봉태 변호사는 “할머니께서 기자회견을 하신 근본적인 배경은 아직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며 “수요시위를 끝내야 한다는 말씀도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해 수요시위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윤미향 전 이사장이나 정의연에 대한 섭섭함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의 말씀을 한쪽으로 몰아가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평소에도 주변에 “피해 당사자들이 살아 있을 때 해결해야 한다. 내가 죽기 전에 매듭을 짓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일을 정치적 이슈로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많다. 진영 논리에 휘말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도 아니라더라’ ‘할머니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뜬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강탈당한 문화재 환수 운동을 하면서 이 할머니와 친분을 쌓은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데는 이 할머니의 역량이 큰 몫을 했다”며 “세계적인 여성운동가를 마치 치매 할머니 대하듯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내에서 활동가와 피해자 간 입장 차이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만큼 이번 일을 그동안의 활동을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온 한 인사는 “정의연 내에서는 이용수 할머니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 할머니는 주요 활동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연과 윤미향 전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은 검증을 통해 밝혀낼 사안이지 ‘아니면 말고’ 식 의혹을 쏟아내거나 이를 갈등의 본질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이용수 할머니도 “지난 30년간 정대협, 그 이후 정의연과 더불어 많은 활동을 함께해 왔다”며 “공감과 참여와 행동을 이끌어낸 성과에 대한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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