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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을 통해 본, 지금 사회에 필요한 논쟁
문제작의 탄생이다. 지난 4월말 공개된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 얘기다.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이 시리즈가 보여주는 내용은 그 어떤 청소년 서사와 견주어도 다르다. 학교에서는 조용한 모범생인 고등학생 지수(김동희)가 성매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일명 ‘조건만남’을 알선하며 돈을 번다. 여기에 같은 반 학생들이 얽혀든다.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 규리(박주현)는 동업을 제시하고, 포주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로 이 앱을 통해 성매매를 하는 민희(정다빈)는 심리적 불안을 겪는다. 민희의 남자친구이자 학교의 ‘일진’인 기태(남윤수)는 이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성매매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소재를 꺼내든 이상 이 작품은 이미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수업》의 결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도덕적 딜레마를 껴안고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며 10화를 모두 통과하고 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사회에 꼭 필요한 논쟁이 아닐까.
범죄자에게 구원은 없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언론과 사회가 성범죄 가해자를 대하는 중요한 태도다. ‘n번방 이슈’가 대한민국 사회를 공분으로 들끓게 하고, 범죄자 조주빈의 행동 동기들이 앞다투어 보도될 때 유독 경종을 울렸던 도덕적 지침이기도 하다. 《인간수업》은 정반대의 노선을 택한다. 주인공 지수가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초반에 이 시리즈에 심정적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강력한 장벽이 되기도 한다. 경제적인 면을 포함해 부모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지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졸업하고 대학 가고 취직해서 살고 싶어서” 돈을 모을 궁리를 한다. 그 결과가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브로커 노릇이다. 이 인물에게는 스스로의 행동을 납득하기 위한 자기변명이 있다. ‘포주’가 아니라 성매매 여성들을 경호하는 일로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번다는 것이다. ‘삼촌’이라 불리는 지수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성매매 여성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도움을 요청할 경우, 대신 출동해 상황을 정리해 주는 ‘이실장’ 왕철(최민수)의 존재가 있다. 요컨대 지수와 왕철은 고용주와 직원의 관계다. 《인간수업》의 초반부에 묘사되는 지수의 가정사는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다. 게다가 그는 학교에서는 존재 자체가 희미한 정도를 넘어 소심하고 찌질한,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하는 모범생으로 나온다. 《인간수업》이 지수를 옹호하고 나아가 범죄의 원인을 불우한 가정사로 지목하는 데서 끝난다면 분명 문제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태도가 그렇지 않다는 건, 같은 반 규리가 본격적으로 지수와 얽히면서부터 드러난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자란 규리는 지수처럼 나름의 절박한 이유도 없다. 다만 노력 없이도 많은 것이 주어진 삶에 무력함을 느껴 왔기에 오히려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규리를 유혹하는 건 돈이다. 우연히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 규리는 그의 범죄를 고발하는 게 아니라, 더 크게 판을 벌이는 사업모델을 제시하며 일종의 투자까지 한다. 특정 환경이 범죄자를 낳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그간 여타의 기획물들과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취한다. 주인공들의 범죄 행동이 사회문제 때문이라는 두루뭉술한 의견 대신, 개인의 선택에 따른 그릇된 결과임을 말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성취를 강요하고 성(性)과 돈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만들어준 것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다만 그런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인간수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교화되고 뉘우치는 대신 자발적으로 더 큰 수렁으로 걸어 들어간다. 범죄를 애써 정당화하는 지수의 자기 연민은 그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파멸로 이끈다. 이리저리 부딪치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던 시리즈의 서사가 도착한 곳은, 혹독한 대가가 기다리는 지옥의 풍경이다.불편한 진실의 세계는 이미 존재한다
《인간수업》에는 도덕적으로 감정을 이입하며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 누구도 영웅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의 주변에 있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사회 공권력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경찰 해경(김여진)은 민희로부터 청소년 성매매의 실타래를 잡고 아이들에게 접근하지만, 결정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섬세하지 못한 방식으로 민희를 자극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부모는 이미 없거나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고, 권위적인 어른과는 거리가 먼 담임선생님 진우(박혁권)는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문제에 깊숙이 가닿지 못한다. 또한 지수와 규리가 사회적 보호망의 완전한 바깥, 즉 조직폭력배들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문제적인 어른 캐릭터는 왕철이다. 과거를 숨긴 그는 성매매 여성들의 운전사 노릇을 하고, 위험에 처한 여성들의 호출을 받으면 폭력으로 상황을 정리해 주며 지수로부터 월급을 받고 생활한다. 그러던 그는 돌연 민희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제안을 거듭하며 과묵한 방관자에서 벗어난다. 지금껏 성매매에 일조했던 그가 보이는 이 태도는 충분히 위선적이며, 민희가 왕철에게 심정적으로 의지한다는 설정 역시 논쟁적이긴 마찬가지다. 왕철을 통해 《인간수업》이 점검하게 만드는 부분은 명확하다. 사회가, 혹은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과연 어떠한가. 아이들을 착취하면서 말로만 정의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한새 작가가 쓴 시리즈의 원제는 ‘극혐’이었다고 한다.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이는 《인간수업》이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쩌면 불편한 소재를 꺼내 든 이 문제적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애써 부정하며 살아가는 세계는 이미 존재한다. n번방 이슈와 같은 사건들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계속 모른 척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논쟁을 시작할 것인가. 《인간수업》은 그 질문의 시작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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