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2020년 삼성전자 미주법인 정치후원 내역 분석…직원 개인은 민주당 다수
회사는 공화당, 직원은 민주당
해당 기간 아메리카팩이 직원들로부터 모은 총 금액은 26만6400달러(3억2900만원)로 109번에 걸쳐 후보자·이익단체에 500~5000달러씩 총 17만5000달러(2억1500만원)가 지급됐다. 연방선거법에 따르면 팩의 최대 후원 가능 금액은 5000달러(600만원)다. 아메리카팩의 피후원자 목록에서 이익단체만 따로 떼어 보면 공화당 성향이 짙게 드러났다. 아메리카팩은 총 10곳의 이익단체에 기부했다. 이 가운데 8곳이 ‘테드 크루즈(공화당 상원의원) 승리 위원회’ 등 공화당 지지 단체였다. 이들에게 건넨 후원금은 총 2만6500달러로, 민주당 지지 단체에 쓴 돈(4000달러)의 6.6배다. 특히 20명에 가까운 공화당 후보의 돈줄 역할을 하는 ‘E-팩’은 주요 기부처다. 아메리카팩은 후원금 한도액인 5000달러를 이곳에 투척했다. 덕분에 구글,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함께 주요 후원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팩은 기부 상한선이 후보자 캠페인보다 더 높다. 한인유권자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과 노조는 팩을 통해 조직적으로 거액의 후원금과 독립 지출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기업 친화적인 정당이 공화당이니까 기업 입장에선 그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다. 그 결과 이듬해 미국 대기업 약 400곳이 낸 법인세의 실질세율은 평균 11.3%로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미국 기업 CEO 중 공화당 지지자 수가 민주당의 3배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에 삼성전자 직원 개인의 후원 내역에선 민주당이 앞섰다. 아메리카팩을 통하지 않고 500달러 이상 후원한 미주법인 직원은 총 21명. 이 가운데 13명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 경선 후보에게 기부했다. 액수는 총 1만9900달러로 전체 개인 기부액의 63%였다. 법인과 직원의 기부처가 서로 다른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애덤 보니카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2010년 “기업 차원에서 내는 후원금과 직원이 개인 자격으로 내는 후원금의 정치적 성향은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아메리카팩의 후원금 총액을 살펴보면 양당의 차이는 크지 않다. 공화당 지지 단체와 후보자에게 들어간 후원금은 8만8500달러다. 총 지급금(17만5000달러)의 50.5%에 해당한다. 나머지 8만6500달러는 민주당 측에 돌아갔다. 차이는 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피후원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상원의원 중 민주당은 14명, 공화당은 13명이다. 하원의원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30명, 23명으로 나타났다. 양원 모두 민주당이 더 많다. 1인당 평균 후원액은 민주당이 1965달러, 공화당이 2458달러다. 비슷한 규모의 후원금을 민주당에 대해선 다수에게 조금씩, 공화당엔 소수에게 많이 줬다고 판단할 수 있다.후원금 액수는 양당 비슷…“분산투자”
뉴욕주의 한 변호사는 “당선자를 확신할 수 없으니 리스크를 줄이려고 일종의 분산투자를 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양당에 비슷한 비율로 기부한다고 알려져 있다. 구글이 운영하는 넷팩은 2018년 민주당과 공화당에 각각 49:51 비율로 기부했다. 삼성 측은 아메리카팩과 한국 본사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메리카팩은 미국인 직원들이 자체 결성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단체”라며 “회사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도, 관여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역들로 구성된 후원인들이 적어도 한국 본사와 의견 교환은 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된다. 삼성전자 미주법인은 한국 본사의 100% 자회사다. 게다가 2018년 후원인 중엔 한국 출신 조성인(Cho Sung In) 삼성전자 미주법인 상무의 이름도 발견된다. 그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적은 미국”이라고 설명했다. 아메리카팩을 거치진 않았지만,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은(David Eun) 삼성전자 CIO(최고혁신책임자)는 삼성넥스트 사장 명의로 기부한 바 있다. 데이비드 CIO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사업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선거는 ‘쩐의 전쟁’이라 불린다. 금권이 향방을 좌우하는 경향이 강해서다. 워싱턴 비영리 정치감시단체 오픈시크릿츠는 2000년 이후 하원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쓴 후보의 당선율이 매번 85% 이상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2월18일 트위터에서 민주당 경선 후보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향해 “후보 지명권을 불법 매수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는 본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15년 TV토론회에서 경선 경쟁자에게 “당신도 내 돈 많이 받지 않았느냐”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돈다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을 무시하진 못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 기업도 정치권에 돈을 대고 있다. 미국 최대 한인 유권자 단체인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김동석 대표는 시사저널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워싱턴 의회를 겨냥해 팩을 운영해 왔는데, 그에 비하면 삼성은 이제 막 시작 단계”라고 했다. 이어 “한국 대기업들이 팩을 통한 로비에 대해 이해력을 높이길 바란다”며 “한국의 팩이 늘어나면 미국 의회는 한인들과 한국 재계에 대해 긴장을 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도 로비를 막지 않는다. 대신 ‘로비활동공개법(LDA)’에 따라 당국이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연방선거위원회는 정치후원금 내역을 속속들이 공개해 투명한 로비활동을 뒷받침한다. 금전적 영향력을 떳떳하게, 합법적으로 행사하라는 취지에서다. 윤홍근 서울산업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로비에 대해 박동선이나 린다김을 떠올리며 부정적으로 보지만, 미국에서 로비는 오래전부터 기업의 주요 대관업무로 여겨져 왔다”고 설명했다.대미 로비 중요한데…삼성은 ‘F’
단 삼성은 이런 측면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2018년 ‘기업의 정치참여 수치’ 보고서에서 삼성에 ‘F’를 매겼다. 매우 나쁜(very poor) 단계로 즉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수준이다. 삼성은 정치적 기부 분야에선 좋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에 △로비활동 △상황통제 등에선 낙제점을 기록했다. 화웨이도 F를 받았고 구글은 D, 애플은 C를 받았다. 일각에선 팩의 정당별 후원보다 지역별 후원 내역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선 기업이 위치한 주(州)정부가 연방정부보다 기업활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양원 중 예산안 심의 권한을 가진 하원이 지역경제와 더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아메리카팩은 R&D센터가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하원의원 8명을 후원했다. 반도체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와 세탁기 공장을 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경우, 각각 하원의원 8명과 5명을 후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 총 의석수가 7석임을 감안하면, 전체의 71%를 밀어준 셈이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 공장에 올해까지 3억8000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직원도 1000명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