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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이런 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싸늘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을 “역대 최악의 총선”이라고 평가했다. 사상 유례없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의 출현,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정당과 무자격 후보들의 난립, 그리고 이들에 의해 급조된 엉터리 공약들까지. 21대 총선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들이 넘쳐났다. 코로나19 비상사태까지 겹치면서 유권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 때문에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20대 국회가 더 심각할 수도 있는 ‘21대 국회’를 잉태하고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번 총선은 각 당이 코로나19 핑계 대고 새로운 정치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선거 전 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는 ‘최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유권자에게 주어진 ‘선택의 권리’를 결코 쉽게 포기하지 말란 뜻이다. 이 말이 이토록 강조되는 만큼 우리 선거는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고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다양한 후보군 속 혼란 없이 ‘차악이라도’ 가려낼 환경을 마련해 줬다고 우리 정치권은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해 4·15 총선에 참가한 정당은 무려 51개다. 국회의원 후보는 1110명, 비례대표 후보는 307명에 이른다. 정당명부 투표로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이 도입된 2004년 이래 가장 많은 35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다. 역대 가장 많은 정당과 후보자가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유권자의 실질적인 선택 폭은 결코 넓어지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각각의 공약과 메시지를 뜯어봤을 때, 도전자가 늘어난 만큼 ‘허수’도 많아지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큰 혼란을 안기고 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각각 유례없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선거판을 오히려 양자택일 구도로 만들어 놓았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정당 수만큼이나 많아진 엉터리 공약과 자격 미달의 후보자 난립, 그리고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 행태는 이번 총선의 승패와 무관하게 국회 전반의 시정과 반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거대 양당이 비례정당이라는 일종의 ‘절름발이 정당’을 만들어 유권자를 우롱했다. 이런 선거는 반드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출현과 무자격 후보 난립, 급조된  공약까지 21대 총선은 초유의 사태가 넘쳐났다. 사진은 왼쪽부터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열린민주당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출현과 무자격 후보 난립, 급조된 공약까지 21대 총선은 초유의 사태가 넘쳐났다. 사진은 왼쪽부터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열린민주당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이슈에 편승한 얕은 공약 우후죽순 쏟아져

여느 선거나 다 그랬다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각 정당은 표심을 얻기 위해 현실성이 낮은 공약들을 우후죽순 쏟아냈다. 급하게 떠오른 이슈에 편승해 부랴부랴 내놓은 공약부터, 다양한 원외 군소정당이 발표하는 ‘황당한’ 공약까지 마구잡이로 등장했다. 유권자들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자신의 지역에 대규모 시설이나 인프라를 유치하겠다는 ‘공수표’식 공약은 가장 전형적인 경우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을 우리 지역으로 끌어오겠다는 약속이나 구도심 재생을 위한 도시재생뉴딜사업과 같은 거대한 계획은 이미 새로 추진하는 것이 불투명하거나 국토교통부에서 수년 전부터 조금씩 실행해 온 것이 대부분이다. 일부 지역 후보자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친환경 교통수단 ‘트램’ 설치와 같이, 선거때마다 나오지만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계속 반복 등장만 하는 ‘재탕 공약’도 상당하다. ‘포퓰리즘’ 논쟁에 휩싸이는 현금 지급형 공약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더욱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늘 진보진영의 선심성 공약을 ‘악성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온 미래통합당 역시 이번엔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50만원 지급’이라는 공약을 내놓아 보수진영 내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배달의민족’ 수수료 이슈에 편승한 ‘배달 무료 공공앱’ 개발 공약과 ‘n번방’ 관련 처벌 강화 약속 등 각 당이 오랜 고민을 거치지 않고 당장의 이슈 선점 경쟁에만 불을 붙이며 공약을 내놓는 모습 또한 나타나고 있다.

국민 눈높이 미달한 후보자도 다수

‘국민 화합을 위해 살인죄를 제외한 국민 모두의 전과 기록을 말소하자.’ 이번 총선에 도전한 국민참여신당이 실제 내건 공약 내용이다. 대부분 그저 웃고 넘길 이 ‘황당 공약’의 내용처럼, 이번 총선에선 유독 지우고 싶은 전과 기록을 보유한 후보자가 많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등을 위반한 시국사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주운전·성범죄에 심지어 살인까지 전과 내용도 다양하다. 이번 선거 후보자 중 선거공보물에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벌금 100만원 이상’ 전과가 있는 후보는 509명이다. 전체 후보자의 35.7%에 달하는 수치로, 공보물에 적지 않은 그 이하 전과를 보유한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가장 전과가 많은 후보는 한국경제당 사무총장이자 비례대표 4번 최종호 후보다. 사기·사문서 위조·재물손괴·음주운전·무면허운전 등 무려 전과 18범이다. 최 후보는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대표이사로서 문제가 생겨 벌금 전과가 늘어났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절대 변명할 생각이 없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최 후보 다음으로 전과가 많은 후보는 민중당 김동우 후보(안산 단원갑)다. 집시법·업무방해 등 전과 10건이다. 최 후보는 “전과 10범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등 흉악범죄로 분류되는 성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은 후보도 총 6명(국가혁명배당금당 5명, 한나라당 1명)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51개 정당을 살펴보면 전과의 성격과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수적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가혁명배당금당이 각각 100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미래통합당 62명, 정의당 47명, 민중당 45명, 민생당 30명 순이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다양성’과 ‘다수’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정당은 다수로 보이지만 결코 다양하지는 못하다”며 “진정한 다양성을 보장하는 다당제라는 것은 기성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검증받은 (소수)정당이 잘 자리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거제 개편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이 많은데 이는 결국 (다양성 보장이 아닌) 정치를 ‘희화화’하는 꼴밖에 안 됐다”며 “속셈과 명분이 따로 노는 결과물로 정치는 더욱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후보들의 자격 미달 문제는 비단 전과 여부만이 아니다. 각 당마다 당선권에 근접한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이 뒤늦게 공개돼 자격 미달 논란이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정의당의 경우, 비례대표 1번이라는 상징성 큰 자리에 류호정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을 배정했지만, 과거 대리게임부터 퇴직위로금 수령까지 의혹들이 계속 제기됐다. 특히 거대 양당의 의석수 경쟁 속에 탄생한 두 위성정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문제점이 선거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비례대표 15번으로 배정한 양정숙 후보는 인권변호사 타이틀을 걸고 당에 들어왔지만, 다수의 부동산을 사고팔며 재산을 증식해 온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불거졌다.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9번인 위성정보 국내 1호 박사 조명희 경북대 교수 역시 아들을 자신의 논문 여러 개의 공저자로 올린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원내 제1, 2당이 위성정당을 급조하는 과정에서 각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 못한 탓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검증이 덜 된 후보들이 원내에 진입한 후 각종 의혹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정쟁 등 여러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권자들을 양자택일로 몰아붙인 ‘위성정당’ 창당

지난해 봄 국회는 의회의 다양성을 제도로 담보하고자 주요 의사 일정마저 멈춘 채 지난하고도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4+1 합의’로 겨우 패스트트랙에 태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총선 막판에 벌어진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제도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유권자들의 다양하고 폭넓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선거 공약이라는 건 각 당이 국민에게 내미는 ‘고용계약서’와 같다. 그런데 거대 양당이 만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은 일단 공약이 없다. 이건 기본도 안 갖춘 강탈 행위와 같다”고 비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선거에서 이 고질적인 양당제 구도를 깼던 적은 평화민주당이 등장한 1988년과 국민의당 돌풍이 일었던 지난 2016년 총선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양당 구도가 견고해졌다”면서 이러한 구도를 만든 거대 양당에 대해 “필히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이 인터뷰한 여러 정치 전문가는 총선이 끝난 뒤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제도 개선 의지가 사라질까 걱정하면서 “선거 후 여야 승패와 무관하게 휴지 조각이 된 이 제도를 다시 제대로 고쳐놓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총선 이후에는 아마도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제 상황이 또다시 모든 이슈를 다 덮을 것이다. 그 이슈에 지금의 선거제 논란들이 다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역시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이번 총선이 꼼수와 변칙으로 전개된 게 묻힐 수도 있다”면서 “만약 승리에 취해 변칙들을 바로잡는 기회를 놓친다면 오히려 다음 대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이번 위성정당의 창당이 더욱 걱정스러운 건 향후 개원할 21대 국회를 20대 국회 못지않은 치열한 제로섬 게임 형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거대 양당 구도가 굳어진 상황에서 2년 후 대선도 있으니 두 정당 간 정쟁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합당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 100석 이상을 얻어 또다시 거대 야당이 될 것이고, 이젠 마땅한 제3당도 다 소멸한 상황이다. 21대 국회는 최악이었던 20대 국회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얻은 국민적 비판을 동력으로 정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 후 선거제를 손보는 과정에서 권력구조도 개편하는 등 정치개혁 의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의제는 등장하겠지만 역시나 이를 두고 정쟁을 벌일 게 뻔하니, 개혁을 정치인들이 아닌 시민사회에서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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