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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빠진 경찰 음주측정장비 현황 자료 입수
경기남부, 음주측정기 셋 중 둘 이상 ‘노후’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법안이다. 고인은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양형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국회는 2018년 11월29일 본회의를 열고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국회는 2018년 12월7일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바로 이 개정안이 ‘제2 윤창호법’이다. 제2 윤창호법은 지난 6월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강화한 게 골자다. 면허취소 기준도 0.1% 이상에서 0.08%로 바꿨다.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도 면허정지를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면허취소 기준을 종전 ‘음주운전 3회 적발’에서 ‘음주운전 2회 적발’로 변경했다. 음주운전 단속기준이 대폭 강화됐지만, 정작 음주운전을 걸러내는 장비 관리는 국민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2019년 경찰 각 지방청별 전체 음주측정장비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경찰이 운용 중인 음주측정기 6892대 중 3682대가 노후 장비로, 국내 음주측정기 노후율이 53.4%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달청 고시(제2011-18호)는 음주측정기의 사용연한을 7년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음주측정기 중 절반 이상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2012년 이전에 생산된 장비로 확인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음주측정기 노후화 수준이 가장 심각한 곳은 경기남부다. 과천·성남·안산 등을 관할하는 경기남부경찰청이 운용하는 음주측정기는 총 793대다. 이 중 사용연한을 초과하지 않은 정상 장비는 254대에 그친다. 나머지 539대는 노후 장비로 노후율이 68%에 이른다. 경기남부 지역 경찰이 손에 쥔 음주측정기 3대 중 2대가 노후 장비인 셈이다. 이어 △경북(61.9%) △강원(60.7%) △경남(60.2%) △경기북부(59.8%) △전남(58.8%) △부산(56.3%) 순으로 음주측정기 노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음주측정기 노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충북이었다. 전체 장비 258대 중 노후 장비 79대, 정상 장비가 179대로 노후율은 30.6%로 조사됐다. 이 외에 가장 많은 음주측정기를 운용 중인 서울의 경우 전체 장비 1015대 중 노후 장비는 459대로 조사돼 노후율 45.2%를 기록했다. 가장 적은 음주측정기를 운용 중인 제주의 경우 전체 123대 중 노후 장비는 61대로, 노후율 49.6%를 보였다.경찰 “사용연한 지나도 점검했으니 괜찮아”
경찰은 과연 음주측정기 노후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취재 결과 경찰 내부에서도 윤창호법 시행 이전부터 음주측정기 교체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경찰이 관련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 등을 통해 새 음주측정기 구매 요구를 해 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음주측정기 구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2015년부터 예산 증액을 요구했으나 올해도 반영되지 않아 노후 장비 교체가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이 공개한 ‘최근 5년간 음주측정기 구매 예산 편성 현황’에 따르면 관련 예산은 △2013년 4억6325만원 △2014년 4억35만원 △2015년 1억5980만원 △2016년 1억8870만원 △2017년 1억8870만원 △2018년 1억8870만원 △2019년 1억8870만원으로 수년째 늘지 않고 있다. 다만 경찰은 음주측정기 노후화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용연한이 경과한 노후 장비라도 사용에 지장이 없는 경우 계속 사용할 수 있다”며 “음주측정기는 주기적으로 검사를 실시해 측정의 정확도 및 신뢰도를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즉, 음주측정기가 노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점검 과정을 거쳤기에 작동 상태는 양호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조달청의 음주측정기 불용처분 관련 지침에 따르면 사용연한인 7년이 도래하더라도 교체 비용이 경제적으로 유익할 경우에만 처분하도록 지시한다. 사용연한이 지난 장비를 반드시 일괄 폐기처분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현재 경찰이 운용 중인 음주측정기는 국가기술표준원(KOLAS)으로부터 국제공인교정기관으로 인정받은 도로교통공단이 2007년부터 점검하고 있다. 4개월 주기로 검사를 실시해 고장 난 기기는 교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 음주측정기 고장 검사 1단계에서 ‘측정 오차’를 일으키는 기기의 비율은 대략 4% 내외로 알려졌다. 1000대의 음주측정기 중 40대 가까이는 비(非)정상 기기로 판명되는 셈이다. 이 기기들은 다시 2번째 교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중 0.5% 내외는 또다시 측정 오차를 일으킨다. 도로교통공단은 수차례에 걸친 교정 작업을 통해 모든 음주측정기의 오차를 바로잡은 뒤, 경찰에 기기를 다시 돌려보낸다. 경찰은 이 과정을 근거로 음주측정기의 노후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1%의 오차가 불신 초래…장비 교체 필수”
그러나 경찰의 이 같은 인식이 윤창호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음주운전 단속기준을 높인 이후 혈중알코올농도의 미세한 차이가 죄의 유무, 처벌의 수위를 크게 좌우하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장비는 구식(舊式)으로 둔 채, 법과 제도만 신식(创新)으로 바꾼다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교통단속에 나서고 있는 경찰들 중 음주측정기 노후화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계 소속 A씨는 “비단 음주측정기뿐만 아니라 모든 전자기기가 똑같지 않나. 오래될수록 고장 날 확률은 더 높고, 한 번 고장 나서 (도로교통)공단에서 교정을 거친 기기들은 또다시 고장 날 확률이 더 높기 마련”이라며 “현장에서도 윤창호법 시행 이후 새 음주측정기로 싹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직은 변화가 없어 기존 걸(음주측정기) 계속 쓰고 있다. 기기가 아예 켜지지 않으면 모를까, 0.001% 오차 발생까지 경찰이 알아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화된 법을 집행 장비와 시민의식이 같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법의 효과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출근길 음주단속 등을 일부 시민들이 ‘과잉 단속’이라며 불만의 목소리까지 내는 상황에서 장비 노후화 문제까지 더해질 경우, 음주단속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확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음주운전 처벌이 세지고 단속을 강화할수록, 단속 방법은 더 정교해져야만 한다. 단 하나의 오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경찰은 음주단속의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정작업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과는 별개로 노후 장비는 당연히 교체하는 게, 법을 강화한 취지에도 부합하는 과정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교수는 “오래된 장비를 자꾸 고쳐 쓰면서 ‘괜찮다’는 주장만 반복한다면 어느 시민들이 경찰 단속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