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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화된 식습관이 원인…장기간 설사·복통 땐 진료 필요
과일·채소도 마음대로 못 먹는 병
크론병 환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음식 섭취다. 장에 자극을 주는 음식을 피해야 하고 한 번에 소량씩 하루에 여러 차례 나눠 식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나 복통 등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론병 환자는 외식, 배달 음식, 술, 커피, 붉은색 육류, 탄산음료, 맵거나 짠 음식 등을 멀리하고 과일과 채소도 가려 먹는다. 과일과 채소에 있는 섬유소가 염증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과·체리·건과일·망고·복숭아·배·수박·자두·마늘·양파·아스파라거스·버섯·콩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도 크론병 환자에겐 독이 된다. 이동호 교수는 “과일과 채소는 섬유소 문제도 있지만 일부는 가스를 발생시킨다. 이 가스 자체로도 설사나 변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메탄가스는 장운동을 느리게 한다. 일반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의 가스로도 크론병 환자는 통증을 심하게 느낀다”며 “그러나 관해기엔 오히려 섬유소가 도움이 되므로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는 게 유리하다. 장내 미생물 중 유익균은 섬유소를 먹고 증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론병 환자는 장에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부드럽고 싱거운 음식을 주로 먹는다. 또 본래 자신이 먹던 식사량을 20~30% 줄여 하루 4~6회 섭취한다. 일각에선 꿀이 크론병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의학적인 근거는 없다. 차재명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음식을 가려 먹으면 장내 가스나 복통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너무 편식하면 오히려 영양 불균형에 빠질 수 있으므로 식습관 개선은 의사와 상의한 후 실천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서구식 식생활로 장내 미생물 환경 바뀌며 증가
크론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부 환자는 스트레스 때문에 크론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감과 같은 정신적인 요인으로 크론병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미 크론병에 걸린 후 이에 대한 스트레스로 증상이 악화할 수는 있다. 또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자주 앓으면 크론병에 걸린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의학계는 연구를 통해 유전, 가족력, 식생활, 면역계 이상, 장내 미생물 변화 등을 원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차재명 교수는 “유전적인 소인은 있지만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본인이 크론병 환자라도 자녀에게 크론병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크론병을 유전적인 질환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같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가진 가족 내에서 발병률이 다소 증가하는 가족성 질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유전이나 가족력이 없는 사람은 크론병에 걸리지 않을까. 이동호 교수는 “일반인도 크론병에서 자유롭지 않다. 10~20대 환자가 늘고 있고 10세 이하에서도 환자가 많다. 과거보다 단것(단순당)과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는데 이는 장내 미생물에 변화를 가져온다. 유해균이 증식하는 것이다. 크론병 환자에겐 일반인보다 유해균이 많다”고 말했다. 원인이 불분명하므로 뾰족한 예방법도 없다. 그러나 육류와 단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게 크론병 위험을 줄인다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성은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연구 결과 크론병 환자 대부분은 평소 설탕과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서구식 식생활로 장내 미생물 환경이 변한 것, 과거보다 위생이 너무 좋아 면역을 갖지 못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이동호 교수는 “장내 미생물 환경을 좋게 유지하려면 붉은색 고기류, 가공육(소시지, 햄 등) 섭취를 줄이고 나물, 잡곡, 해조류를 먹는 게 이롭다. 주요 예방법은 아니지만 청국장, 된장, 김치 등 발효식품도 부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크론병의 주요 증상은 설사와 복통이다. 이런 증상은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유사해 잘못 진단받기도 한다. 장염, 음식 알레르기, 궤양성 대장염, 장결핵 등과도 증상이 유사하다. 그 외에 탈수, 빈혈, 열, 식욕 감퇴,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 항문 통증이 심해 치질인 줄 알고 병원을 찾았다가 크론병으로 진단받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이 크론병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병원에서 감별 검사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증상으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문진, 내시경검사, 조직검사, 혈액검사 등의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한 번에 확진되지 않고 병이 진행되면서 확인되기도 한다. 김성은 교수는 “설사와 복통 증상이 반드시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복통만 생기기도 한다. 10대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며 병을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 3회 이상 설사나 복통이 4주 이상 지속하면 병원을 방문해 진료받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크론병은 완치가 힘들기 때문에 당뇨와 고혈압처럼 평생 증상을 조절하며 사는 질환이다. 차재명 교수는 “크론병은 현재 완치되지 않는다. 다만 위장관의 염증을 조절해 증상이 없고 점막이 치유되는 상태(관해기)로 만드는 것을 치료 목표로 한다. 전체 환자 중 40%는 관해기 상태로 별문제 없이 산다. 나머지 60%는 증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거나 치료가 잘 안된다”고 밝혔다.방치하면 합병증과 대장암 위험 커져
증상이 나타나는 상태(활동기)를 증상이 없는 관해기로 만들어 유지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비교적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염증에 효과가 있는 항염증제를 사용한다. 심할 경우엔 스테로이드제가 효과적이지만 내성 등의 부작용 우려가 있으므로 단기간만 쓴다. 증상이 관해기로 접어들면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면역조절제 등을 사용하며 관해가 유지되지 않을 때 생물학적 제제를 이용한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각종 합병증과 대장암 위험이 커진다. 장협착, 장폐쇄, 농양, 천공, 누공(장에 샛길이 생기는 증상) 등 합병증이 생기면 수술이 필요하다. 크론병에 걸렸더라도 관해기만 유지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며 운동·취미·여행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증상이 악화하는 활동기에는 잠시 병가를 내고 입원 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호전되면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김성은 교수는 “환자의 일부는 관해기 상태로 평생 별문제 없이 사는가 하면 일부는 관해기와 활동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최근 2~3년 동안 새로운 약이 많이 개발됐다. 이런 속도라면 앞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약을 먹고 증상이 사라지니까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정기적인 병원 검사를 받지 않아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임신과 출산은 문제없을까
크론병은 주로 젊은 층에서 발병하므로 가임기 여성은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크론병이 있으면 수정 능력이 떨어지므로 관해기에 임신하는 편이 안전하다. 일부 치료제는 동물실험에서 태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임신 3개월 전에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임의로 모든 약 복용을 중단하는 행동은 금물이다. 증상이 악화하면 오히려 태아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크론병 치료제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유 수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재명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대부분 크론병 환자는 정상적인 출산으로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 다만 염증이 심한 활동기 환자는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성이 다소 높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 계획이 있다면 담당 주치의와 상담한 후 임신 전후로 크론병 염증을 잘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