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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 커지자 강화된 부미뿌뜨라 2.0 추진

 오늘은 이웃 말레이시아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는 정국이 어수선했습니다. 2009년 집권한 나집 라작 총리 때문이죠. 라작 총리 집안의 위세는 말레이시아에서도 대단합니다. 부친은 말레이시아 2대 총리인 압둘 라작입니다. 아들인 라작 총리는 23세의 어린 나이에 정계에 진출, 25세 때 통신·에너지·우정부 차관에 발탁돼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연소 각료가 됐습니다. 이후 국방·교육장관과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5월17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창당 71주년 기념식에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왼쪽)가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라작 총리, 국영회사 자금 횡령설 곤욕 치러

 그런데 2년 전 그는 국영회사인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의 자금 횡령설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의 금권유착설 등의 추문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집권 여당의 인기도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말레이시아의 실질적 국부 마하티르 전 총리조차 “라작을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가 됐습니다. 


궁지에 몰린 라작 총리는 외교력 강화를 통해 자신이 집권해야 할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김이 아세안(ASEAN)에서 상당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죠. 대표적인 것이 북한의 김정남 살해사건입니다. 내부적으로 궁지에 몰렸던 라작 총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습니다. 북한과의 단교까지 운운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라작 총리가 새로운 경제 정책을 궁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명 부미뿌뜨라(Bumiputra)라고 불리는 정책인데요. 말레이어로 부미(Bumi)는 땅, 뿌뜨라(Putra)는 남성, 사람 등을 뜻합니다. 결국 부미뿌뜨라는 현지 말로 ‘원주민’을 뜻합니다. 부미뿌뜨라 정책은 쉽게 말해 말레이인(부미뿌뜨라) 우대 정책입니다. 이 정책이 나온 계기부터 살펴보죠. 현재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51%가 말레이계고, 중국계는 27%, 인도계는 8% 가량 됩니다. 문제는 ‘부의 불균형’입니다. 다시 말해 말레이시아는 현재 중국, 인도계가 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말라카해협과 남중국해를 따라 이민 온 인도, 중국계는 한 세기만에 이 나라의 부(富)를 거머쥐었습니다. 1970년 통계를 보면, 말레이계가 6.5%, 중국계는 90%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특히 중국인들은 말레이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이 갈등이 터진 게 1969년입니다. 1969년 5월13일 성난 말레이인들은 중국인 거주단지를 급습하는가 하면 중국인만 다니는 영화관에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이어 방화와 약탈이 이어졌습니다.   이 폭동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대로 말레이인들의 원망을 방치하면 집권당의 정권 유지가 어렵겠다고 판단해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놨습니다. 그게 바로 부미뿌뜨라 정책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책이 나올 당시 국정 최고지도자가 바로 현 라작 총리의 부친입니다. 부미뿌뜨라 정책은 대놓고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집을 살 때는 물론,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말레이인들은 우대를 받습니다. 공무원 채용과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부미뿌뜨라와 비(非)부미뿌뜨라는 조건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부미뿌뜨라 정책에 의해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는 중국계 국민은 불만이 없었을까요? 물론 있었겠죠. 하지만 이들도 더 이상 말레이인들과 갈등을 겪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정책은 인종 차별 정책이 아닌 부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중국계 국민들은 부미뿌뜨라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재산을 조금씩 인근 싱가포르로 옮겼습니다.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李光耀)가 이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거죠. 싱가포르가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도 1970년대 부미뿌뜨라 정책에 불만을 품은 화교들이 옮겨오면서 부터입니다.   어찌됐든 부미뿌뜨라 정책은 일정 부문 말레이시아 경제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부미뿌뜨라 정책은 1991년 끝났습니다. 마하티르 총리가 1991년 ‘비전 2020’이라는 국가 장기발전계획을 세우면서 다소 완화시켰기 때문이죠. 기본골격은 유지하면서 외자유치를 적극적으로 나선 탓에 일정 부분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외자 개방 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아세안에서 싱가포르, 브루나이에 이어 세 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타워 앞에 있는 고급 빌라 내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뛰어놀고 있다. ⓒ 사진=AP연합


 

부미뿌뜨라 2.0으로 말레이계 달래기 나서 

 외자 유치로 정부 곳간을 채우는 한편, 부미뿌뜨라 정책으로 말레이인들의 생활수준을 높인 결과입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 브루나이에 이어 아세안 3위의 경제대국 반열에 오른 것은 말레이계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경기 불황이 심해지면서 말레이계 주민들의 불만은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부미뿌뜨라 정책 역시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야당은 ‘부미뿌뜨라 정책이 해외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활발한 해외 투자로 재미를 본 말레이시아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반면,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일단 정책 선점 효과 측면에서 한발 늦었습니다. 그렇기에 부미뿌뜨라 정책을 포기한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권세력은 야당과는 반대로 규제 강화를 결정했습니다. 라작 총리를 비롯해 집권세력은 늘 부미뿌뜨라 정책을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부미뿌뜨라만 다독거릴 수 있다면 선거에서 분명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작 총리 역시 2013년 총선을 앞두고 기존 부미뿌뜨라 정책을 오히려 강화한 신(新) 부미뿌뜨라 정책을 내놓아 재미를 톡톡히 봤습니다.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는 ‘부미뿌뜨라 경제 개조 로드맵 2.0(Bumiputra Economic Transformation Roadmap 2.0-BETR 2.0)’이라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부미뿌뜨라 2.0은 이웃 나라인 인도네시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6월9일 인도네시아 법원은 전(前) 자카르타 주지사인 아혹을 법정 구속시켰습니다. 죄목은 신성모독죄입니다. 그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데 종교가 개신교입니다. 주지사 재직시절 그가 이슬람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자카르타 시내는 연일 시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법정 구속으로 일단락됐지만, 당시 자카르타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개신교라는 그의 종교뿐만 아니라, 중국계 기업인이라는 이력도 무시 못했을 겁니다. 인도네시아 역시 경제력을 휘어잡은 중국계에 대한 반감이 상당합니다. 때문에 상당수 화상들이 중국식 이름을 버리고 인도네시아 이름으로 개명할 정도였죠. 부미뿌뜨라 정책은 철저한 내부용입니다. 외자 자본에 대한 차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 정책을 펴는 것은 아세안 일대에서 자본민족주의 열풍이 커지고 있어서입니다. 정권의 명운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들도 당장은 내국민 보호를 위한 부미뿌뜨라 정책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해외 투자자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보호무역주의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부미뿌뜨라 정책은 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계륵같은 존재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말레이시아 내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기존 정책보다 강화된 신(新) 부미뿌뜨라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진은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원주민 부미뿌뜨라. ​ⓒ 사진=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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