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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조경민 前 사장 대화 녹취록 입수 조 전 사장 “담 회장 대신 죄 뒤집어쓰고 구속”
지분 상승액 10% 약속받고 회장 대신 총대
조경민 전 사장 등은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담철곤 회장 비자금 사건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조 전 사장은 원래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맏사위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라인’이었다. 이 창업주에겐 두 딸이 있었는데, 장녀가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차녀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다. 조 전 사장은 그룹 내에서 주로 신규사업 발굴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 그가 담 회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이다.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은 당시 조 전 사장에게 에이펙스(APEX)를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에이펙스는 동양제과가 투자해 설립한 외부 신규사업 개발전담팀이다. 향후 동양그룹 계열사이던 동양제과(현 오리온)가 오리온그룹으로 분사해 나갈 것을 대비한 행보였다. 그 대가로 담 회장과 이 부회장 부부가 보유한 주가 상승분의 10%를 약속받았다는 것이 조 전 사장의 주장이다. 이후 조 전 사장은 에이펙스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베니건스를 시작으로 온미디어·투니버스·미디어플렉스·스포츠토토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그 결과, 조 전 사장은 오리온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그만큼 그룹 내 위상도 높았다. 한때 계열사 15곳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 전 사장은 담철곤·이화경 부부의 최측근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문제는 2010년 말, 검찰에서 오리온그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시작됐다고 조 전 사장은 말한다. 위장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의 혐의와 관련해서다. 당시 담 회장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담 회장이 구속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담 회장 구명을 위한 회의 끝에 총대를 메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담 회장이 비자금 조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전달받은 자금 역시 비자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비자금 조성을 주도한 실제 ‘금고지기’ 정아무개씨는 여기에서 배제됐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압박에 못 이겨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 경우 수사는 담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때 적임자로 지목된 것이 자신이었다고 조 전 사장은 주장했다. 그룹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실제로 비자금 조성에 관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조 전 사장은 당시 담 회장이 자기를 대신해 총대를 메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주장했다. 조 전 사장은 고심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자 담 회장은 원하는 바를 물어왔고, 조 전 사장은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주가 상승분의 10%를 주겠다는 이전의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과 자신의 가족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조작을 위해 조 전 사장은 담 회장으로부터 ‘과외’도 받았다고 했다. 신규사업 부문만 담당하던 조 전 사장으로서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과 경위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자신을 비롯한 오리온 임직원들은 정해진 각본에 따라 검찰수사에 임했다고 조 전 사장은 말했다. 이미 초동수사 과정에서 담 회장에게 비자금에 대해 직접 보고하고 전달했다고 검찰에 밝힌 ‘전달책’ 김아무개 사장은 진술을 번복하고 모든 책임을 조 전 사장에게 돌렸다. 조 전 사장도 김 사장의 진술 내용을 인정했다. 검찰은 3개월여 동안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1년 6월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은 수백억원대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심 재판에서 담 회장은 징역 3년을, 조 전 사장은 징역 2년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듬해인 2012년 1월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자유의 몸이 됐다.
출소하자 사직 종용하고 약속도 불이행
그러나 출소 이후 담철곤 회장이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 조경민 전 사장의 주장이다. 담 회장은 조 전 사장에게 측근을 보내 사직을 종용했고, 주가 상승분의 10%를 주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리온 측은 조 전 사장의 이 같은 주장이 오히려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위증교사도 없었고, 지분 상승분의 10%를 제공하겠다는 약속 역시 서면은 물론 구두로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 전 사장 측의 일방적이고 황당한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은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입수했다. 2012년 3월 담 회장과 조 전 사장의 대화 녹취록이다.녹취록에는 지분 상승액의 10%를 제공키로 한 약속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면, ‘담 회장 구명 시나리오’가 가동됐다는 조 전 사장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담철곤(담): 그 약속을 나는, 나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약속이기 때문에 나는….
조경민(조): 그럼 저를 원위치시켜주십시오.
담: 어떤 걸로?
조: 그 작년,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 상태로 만들어주세요.
담: 왜?
조: 제가 지금 형을 받은 것은 저하고 무관한 걸로 받았잖습니까? 그죠?
담: 아, 그거야 무슨 뭐 나하고 무슨 뭐? 당신이 들어간 거, 들어간 거 그거를….
조: 그럼 회장님께서 저한테 돈을 가방은 무슨 가방으로 전달받았다 지시를 하시고 뭐, 그런 지시를 다 하셨죠? “이렇게 받았다고 말을 해라”라고 다 지시를 하셨죠? 그죠? 그런 지시를 ‘내가 지시했다’라고만 해가지고 ‘얘는 돈 전달이라든지 돈 만드는 데는 관여 안 했다’라고만 이번에 좀 대법원에 넣을 때 그것만 한 개 넣어주십시오.
담: 싫어요.
조: 왜요?
담: 내가 왜 그걸 하죠?
조: 아니, 저 제가 그것 때문에 유죄를 받았잖아요.담: 아, 그대로 밝히세요.
조: 밝혀요, 정말로?
담: 아, 그러시면 밝히세요. 내가 그걸 왜 써줘요?
조 전 사장은 이날 대화 후, 담 회장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달인 2012년 4월 조 전 사장은 다시 한 번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스포츠토토가 골프장 사업을 위해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린 뒤 그 차액을 리베이트로 받는 식으로 수백억원대 횡령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투서가 접수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검찰수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또 다른 건으로 검찰의 수사는 계속 이어졌고, 조 전 사장은 2012년 6월 구속돼 최종적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허위로 투표용지 등을 발주해 1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였다.담: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10%를 줄까요?
조: 그건 주식을 매각하셔야죠.
(중략)담: 지금 매각을 못해요. 지금 매각하면 조 사장이 회장한테 핵심 잡았구나. 매각하는 순간, 그러니까 온 동네 모든 사람들이….
조: 회장님….
담: 그러니 그건 대외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좋은 방법을 찾아요. 다 같이 가는 길이 있어야 되지.
오리온 “위증교사와 10% 약속 사실무근”
이에 대해 조 전 사장은 허위 발주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스포츠토토에 실제 발주가 이뤄졌다는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관련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 전 사장은 일련의 과정이 자신을 구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배후에는 담 회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사장의 이런 주장은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오리온 측과의 민사소송 과정에서다. 오리온 측은 2014년 말 조 전 사장이 출소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2015년에는 스포츠토토 주주들이 조 전 사장의 허위 발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민사소송 2심에서 참가인으로 참여한 것이 시작이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토토 내부 직원들이 실제로 발주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를 조 전 사장에게 제공했다. 이로 인해 앞선 형사 재판의 결과는 뒤집어졌다. 현재 소송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조 전 사장은 재판 결과가 나오면 재심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리온 관계자는 “발주 관련 서류는 당시 찾을 수 없어서 재판부에 제출하지 못한 것일 뿐, 의도적으로 자료를 누락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최종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리온 측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조 전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오고 있다. 지난해 5월 허위 발주 건, 6월엔 골프장 부지 건과 관련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자, 조 전 사장도 지난해 7월 담 회장부부를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으로 맞섰다. 지분 상승분의 10%를 준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담 회장과 이 부회장 부부의 비리 의혹이 담긴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나 말고도 많은 전직 임직원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위증교사를 강요받은 뒤 버려졌다”며 “위증교사를 통해 담 회장의 혐의가 대폭 축소된 만큼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경우 숨겨진 여죄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