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세대, U리그 출전 포기…선수 28명 중 14명 ‘출전금지’

 탄핵과 조기 대선, 문재인 정부의 탄생. 그 출발선에는 ‘정유라 사태’가 있었다.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승마대회에서 정유라가 우승에 실패하자 심판들이 경찰서로 불려가고, 청와대가 나서 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했다. 정부는 “스포츠계 병폐를 없애겠다”고 선언하고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출범시켜 체육계를 비리와 부정이 판치는 무대로 규정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 체육계를 매도시키는 한편, 최순실 일가는 K스포츠재단, 동계스포츠 영재센터, 더블루K 등 정체불명의 단체를 만들어 평창동계올림픽을 노린 이권 개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눈치를 본 국내 대기업들은 미르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야 했다. 삼성 등은 최순실 일가에 일종의 상납을 하느라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유례없이 체육계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가장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체육계를 향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체육계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미 지난해 10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야권 후보’로 평가받던 이기흥 회장이 당선된 것이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 속에 체육계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정한 스포츠 생태계 조성’과 ‘체육단체 자율성 보장’을 체육 관련 공약으로 내걸었다. 체육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스스로 공정한 생태계를 유지 및 관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이 중 핵심이 ‘C제로 룰’이다. ‘제2의 정유라’를 막기 위해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가 대학생 스포츠 선수들에게 적용하기로 한 규정이다. 대학생 선수의 직전 2학기 평균 학점이 C에 미달하면 국내 대학리그 경기 출전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 학원스포츠를 둘러싼 주요 화두인 ‘공부하는 선수’를 장려하는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정유라 특혜 사태를 지켜본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올해부터 ‘C제로 룰’을 적용했다. 이로 인해 102명의 선수가 자격 미달로 출전 금지 통보를 받았다. © 시사저널 임준선·대한축구협회 제공

 

C제로 룰의 탄생, 공부하는 ‘학생 선수’ 만든다

 KUSF는 C제로 룰의 긍정적 영향에 확신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체육 특기생의 기본적인 학업 수행이 가능할 때 입학 특례 부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운동선수는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을 깰 계기라고도 설명했다. 모델은 미국 스포츠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시장을 가진 미국은 대학 스포츠도 프로 이상의 인프라와 인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이자 학업을 수행하는 사회인을 배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부상이나 기량 향상에 실패해 졸업 이후 선수로서의 삶을 중단해도 사회에서 직업을 갖는 데 문제가 없다. 일본, 유럽, 호주 등 다른 스포츠 선진국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같은 기준을 지니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려 학업의 비중을 소홀히 했다. 프로에 진출하거나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그것이 곧 학교의 명예를 빛내는 것으로 인정받아 모든 것을 해결해 줬다. KUSF 관계자는 “해외 선수의 경우 휴식 시간에 부족한 학업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우리 선수들은 학생의 신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학 무대를 프로나 국가대표 진입을 위한 준비 단계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해외처럼 하루 2시간가량으로 훈련 시간을 제한하고 일반 학생들 속에 섞여서 학업에 매진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것이 KUSF의 목표다. 이 C제로 룰이 적용되는 것은 92개 대학이다. 축구, 배구, 농구, 핸드볼이 현재 대학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KUSF는 이미 2016년 학기의 성적을 취합해 자격 미달 선수를 가려냈다. 총 102명의 선수가 출전 금지 통보를 받았다. 축구가 89명으로 가장 많다. 85개 대학팀이 참가하는 U리그라는 최대 규모의 대학리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축구의 명가인 연세대의 경우 축구부 소속 28명의 학생 중 14명이 C제로 룰에 걸리자 아예 U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2월과 8월에 열리는 토너먼트 대회인 춘계·추계 대학연맹전에만 나선다.  

“취지는 옳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현장 분위기

 대한축구협회와 대학축구연맹이 연중 리그제를 추진하면서 토너먼트 대회가 대폭 정리된 탓에 대학 축구에서 U리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FIFA U-20 월드컵 2017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20세 이하 대표팀에는 연세대 소속 선수가 23명 중 5명이나 된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만일 조기 소집이 불발됐다면 대표팀 경기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뻔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 끝난 춘계대학연맹전 이후 2개월 가까이 참가할 수 있는 경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농구 리그에서도 몇몇 대학은 주요 선수가 빠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C제로 룰이 대학 스포츠에 몰고 온 혼란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크다. 선수, 학부모, 지도자 모두 이 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제도라고 지적한다. KUSF는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적용했다며 현장의 준비 부족을 지적한다. 하지만 출전 금지를 강행한 데는 ‘정유라 사태’가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체육특기생 제도를 악용해 특혜를 준 이화여대 교수들이 줄줄이 사법 처리되는 등 대학의 명예가 흔들리는 모습 앞에서 급조된 원칙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선수’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 엘리트 선수에게 성과만을 강요했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체육계가 오랜 시간 동안 부르짖은 자성의 목소리였다. 다만 그 방법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현장의 불만이다. 정유라 사태가 보여준 체육특기생에 대한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엄정한 학사 관리에 대한 여론의 목소리가 KUSF에는 명분이 됐다. 그런 여론에 떠밀려 가장 보여주기 쉬운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최상위 수준부터 철퇴를 가한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다수의 대학 스포츠 지도자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들의 학점 관리를 엄격히 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2년간의 유예 기간 동안 규정이 형식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대학 무대에서 뛰는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운동부 생활을 해 왔다. 8년 이상 학업에 소홀했던 이들에게 입시 준비만 했던 학생들과 동등한 구조 안에서 경쟁하라는 것은 차별을 막기 위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있다. KUSF가 하루아침에 변화와 개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8년 이상 학업에 소홀했던 대학 스포츠 선수들에게 입시 준비만 했던 학생들과 동등한 구조 안에서 경쟁하라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학부모와 선수들도 조바심이 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직업 선수가 되기 위해 검증받을 기회 자체를 잃는다. 엘리트 선수와 부모들의 지향점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프로 진출이 희망이고 밥벌이인데, 그 기회가 원천 봉쇄됐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만 종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대학에 와서 어떻게 정상적인 학점 경쟁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미술, 음악, 무용 등에 특기를 보여 입학한 학생들에게 학점이 낮다고 공연이나 전시회에 나서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그 또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정유라 사태로 왜곡된 대학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맞았다. 체육특기자 입학과 학사관리 제도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최저학점제를 도입해 과감한 개혁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KUSF의 정책에는 허점도 있다. U리그의 경우 85개 학교 중 34개는 KUSF에 가입돼 있지 않다. 해당 학교들은 C제로 룰의 적용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선다. 학교별 학사 제도도 다르다. 어떤 학교는 4.5점 만점이지만 어떤 학교는 4.3점 만점이다. 이럴 경우 C학점이라는 기준이 다르게 정의된다는 것이다. 형평성과 제도의 허점이 존재하는데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개혁을 위한 제도 정착이 목표가 되면서 현재 대학 무대에서 뛰는 학생들이 일방적인 희생양이 됐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최상부가 아닌 하부부터 개혁해야” 목소리도

 현장에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학점 경쟁을 일반 학생들이 아닌 체육특기자끼리 하며 학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축구, 농구, 배구부를 동시에 운영하는 대학의 경우 대부분 상위권 대학인데 경쟁의 벽이 더 높을 수 있다. 학습에 무기력을 느끼고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교수와 일반 학생들이 학생 선수를 도와주는 멘토링 제도의 활성화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기자 정원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이러한 개혁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답이다. 최상위 단계가 아닌 하위 단계부터 변화해야 진정한 성공이 이뤄진다. 초등학교부터 숙소 생활을 하며 하루 세 탕(새벽, 점심, 저녁) 훈련을 하는 행위부터 근절하고, 막 운동을 시작하는 선수들에게 공부할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러려면 성적 지상주의도 철폐해야 한다.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요구하는 국가 분위기가 학생들을 운동하는 기계로 만들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각급 학교가 운동선수들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개발해 기본 소양을 갖추고 학습에 대한 인내심을 갖게 해 준다면 C제로 룰에 대한 대처는 어렵지 않다.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변화를 요구한다면 공부도, 운동도 실패하는 또 다른 희생양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