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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양한 입장에서 본 사실, 그 중에서 한 시대, 한 사회를 풍미하는 콘텐츠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반만년, 즉 5000년이라는 얘기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우리가 위대한 해양족이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지난 몇 백 년 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 더 들자면, 현재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탄생한 걸로 돼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주류의 담론이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도 많아서 현재 논쟁 중이다.
어떤 내용의 담론이 그 시대에서 주류 의견이 될까?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말한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20세기 최고의 천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철학자/인류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지식은 권력이다!” 즉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식이 생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 한반도?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를 살펴온 우리는 이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한반도의 해양활동 기억이 사라진 것은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는 주로 중국의 파워 때문이고, 그 이후로는 주로 일본과 더 근본적으로는 서양 열강들 때문인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해양활동이 거의 과장하려는 기세로 밝혀져 있는 것도 역시 파워 게임의 산물이다. 가야보다 활동 규모가 작으면 작았지 결코 월등히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가 나중에는 ‘제국’ 칭호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봤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좀 더 나올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기후도 온난기에서 한랭기를 거쳐 다시 온난기로 들어가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인류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근대기 동안 형성되어 오던 역사 콘텐츠를 상당 부분 새로 써야 할 일이 자꾸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몇 번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과거의 상황을 복원해낼 수 있는 과학기술적 연구 방법도 발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근대기에 형성된 콘텐츠를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아왔던 우리들로서는 적응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매번, 지금까지의 역사 담론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마다 학계는 찬반으로 들끓는다. 현대사회의 최강 교육수단인 미디어는 중심을 잡지 못해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저런 내용을 소개했다 하면서, 뭔가 파격적으로 새로운 내용이 나와 실어줄 때는 “이 콘텐츠는 (언론사의 의견이 아니라) 필자의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대중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싯적 교과서에서 배운 게 만고의 진리라고 믿는 노년층으로부터, 온라인으로 접하는, 근거가 부실한 콘텐츠에 열광하는 청소년들까지, 21세기는 정말 다양한 담론들이 평행선을 그리며 혼재하는 세상이다.
이 연재는 그 다양한 담론 가운데, 21세기 한민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고 판단되는 콘텐츠 중 일부를 정리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다룰까? 일단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견고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다음 지도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