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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전문가들이 꼽은 대선 막판 4대 변수
5월9일 19대 대선은 어느 대통령선거보다도 낯선 상황에서 치러진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은 대선을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겼다. 대선이 있던 해에 정치권이 연초부터 대선 모드로 돌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낯선 풍경이다. 정치 지형에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보수 정당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보수층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전략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 거의 모든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전략적 선택’은 진보 유권자들의 몫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색다른 광경이다. 대선 구도 역시 과거와 같지 않다. 1992년 14대 대선 이후 사실상의 양강 구도였던 대선이 이번에는 다자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대선 구도를 정리해 보면 2강(强) 1중(中) 2약(弱)으로 압축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30%를 넘는 압도적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10% 전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한 자리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 발짝 안으로 더 들어가보면 이런 구도로 인해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일단 2강을 형성하고 있는 문 후보와 안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5~10%포인트 정도라는 점은 막판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안 후보의 지지율이 ‘반문(反文) 구도’에 의한 반사이익으로 형성된 만큼 견고함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선거 막판 몇몇 변수가 대권 향배를 결정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변수로 TV토론, 북풍(北風), 후보 간 연대, 네거티브 등 네 가지를 꼽고 있다.시청률 높은 TV토론
역대 대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TV토론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다. ‘수첩공주’로 불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간 토론이 ‘백미’였다. 이 후보는 박 후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박 후보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박 후보의 전략은 ‘동문서답’식 답변이었다. 예를 들어 이 후보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6억원 받았다고 박 후보가 시인했는데, 이거 비자금 아닙니까”라고 묻자 박 후보는 “대선 끝까지 완주할 계획 없죠? 처음부터 끝까지 나갈 생각 없으면서 27억원 받고…”라는 식의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사실 이 토론을 통해 박근혜 후보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상황 대처 능력이나 유연성은 그 실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토론이 당락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토론을 보고 박 후보에 대한 동정 여론이 조금 늘었을 뿐이었다. 이번 대선은 다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TV토론을 통해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해야겠다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은 “과거 대선에서는 연초부터 대선 모드에 돌입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어느 정도 후보를 결정해 놓고 TV토론을 시청했지만, 이번 대선은 아직까지 후보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TV토론이 이뤄지기 때문에 토론을 보고 표심을 정할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후보들의 지지율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과 박 전 대통령의 사례를 보면서 TV토론을 통해 후보를 검증해야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강한 것도 TV토론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크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의 관심은 이미 시청률로 입증되고 있다. 원고 없이 스탠딩 방식으로 진행된 4월19일 KBS 대선후보 TV토론 시청률은 26.4%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수치는 전주 같은 시간에 방송된 프로그램의 시청률 7~8%보다 3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토론의 시청 점유율이 43%였다는 점이다. 이 시간에 TV를 켠 시청자의 절반가량이 대선후보 토론을 봤다는 의미다. TV토론을 보고 후보자를 바꾸겠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YTN과 서울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해 4월17일 실시한 조사에서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70.5%인 반면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한 경우도 28.1%나 됐다. 특히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한 응답자 중에서 46.4%가 ‘TV토론 시청 후 결정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 4명 가운데 1명 정도는 현재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바꿀 수 있고, 바꾼다면 TV토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4월15일과 16일에 걸쳐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남은 선거기간 동안 가장 관심 있게 들여다볼 사안’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1.5%는 ‘TV토론회’를 지목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北風, 태풍일까 미풍일까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 ‘북풍(北風)’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불어닥치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카카오톡 메시지와 SNS를 통해 번지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의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참여정부 대북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나섰다. 2012년 대선 막판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이 도마에 올랐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당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정문헌 의원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대선이 끝나고 한참 지나서였다. 2012년 대선 때 ‘재미’를 봤던 보수층에서는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대선 쟁점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정당의 색깔론 제기→보수언론의 쟁점화→대선후보 안보관 흔들기 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그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 정당은 이미 신호탄을 쏴 올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4월18일 부산 유세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김정은”이라고 말했고, 바른정당은 4월19일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의 일로 문 후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4월19일 열린 KBS TV토론회에서는 이른바 ‘주적(主敵)론’이 도마에 올랐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색깔론은 바로 다음날 언론사 사설을 통해 집중적으로 쟁점화됐다. 4월21일 조선·중앙·동아·세계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는 ‘주적론’을 사설로 다뤘다. ‘북풍’ 내지 ‘색깔론’이 이번 선거에서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이유는 보수 세력이 분열됐기 때문이다. 보수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어려워진 현재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사실상 부동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안 후보와 홍 후보 그리고 유 후보 사이에서 얼마든지 표심을 바꿀 수 있다. 문 후보의 안보관이 논란이 되면 될수록 보수층은 세 후보 중에서 문 후보를 꺾을 만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수혜자는 안 후보가 될 수도, 홍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국민의당이 안보 문제에 있어서 다른 보수 정당과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안 후보는 선거 시작 때부터 줄곧 ‘안보는 보수’라고 자처해 왔다. 주적론이 논란이 되자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문 후보와 민주당은 주적이라는 단어가 있어야 주적인 것인가”라며 “북한의 도발과 핵실험 등으로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는 지금, 국군 통수권자와 집권여당이 북한의 정권과 북한 군부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민이 안심할 수 있겠는가”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안 후보 측이 구(舊)여권의 이념 공세에 올라탄 모양새다. 문 후보 캠프 측도 이런 색깔론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여러 사전 작업을 해 왔지만, 거세지는 ‘북풍’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북풍이 이슈가 된다고 해도 문 후보의 지지율이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반대로 보수층에서는 ‘문재인이 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투표소 앞에서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식의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분석했다. 유 평론가는 “보수 정당의 북풍 이슈화가 당분간 이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안철수-유승민’ 연대하나
대선 초반 흘러나왔던 후보 간 연대론은 시간이 갈수록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상당수의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대선이 최소 4자 구도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후보 간 연대론에 힘이 빠진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비롯됐다. 일단 반문 측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이른바 ‘자강론’을 주장하며 선을 확실하게 그은 측면이 가장 크다. 두 번째로 개헌을 매개로 한 공동정부론을 주장해 왔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이렇다 할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불출마 선언을 했다. 마지막으로 보수층 후보 간 연대의 대미는 결국 홍 후보와의 단일화인데, 이럴 경우 ‘득’보단 ‘실’이 더 클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후보 간 연대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는 볼 수 없다. 선거 막판 후보 간 연대론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것은 안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 내지 하락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한때나마 문 후보를 앞섰던 안 후보의 지지율은 4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로 인해 문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다소 벌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지층 역시 문 후보에 비해 견고하지도 못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구도는 5강에서 4강, 4강에서 다시 3강 내지 2강 구도다. 갈수록 안 후보의 지지율은 산술적으로는 높아지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안 후보의 고민이 있다. 후보 간 연대가 이뤄지면 산술적으로는 문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수치가 나오지만, 이탈 표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만약 안 후보가 보수 정당 후보와 손잡을 경우 호남 표나 젊은 층 유권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정치 전문가 가운데 그나마 실현 가능성 있는 후보 간 연대는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손잡는 것이다. 유 후보의 지지율이 5%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면 작지 않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한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홍 후보와의 연대는 불가능하지만 유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며 “‘인위적 단일화는 없다’고 주장하는 안 후보와 달리 최소 유 후보와의 연대는 필요하다고 보는 현역 의원들이 당내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도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안 후보와 유 후보 간 연대는 어느 정도 열려 있다고 본다”며 “다만 안 후보가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를 유 후보에게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한 방’에 휘청거릴 네거티브 나오나
대선후보 검증 기간이 길지 않은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네거티브’다. 네거티브 의혹에 휘말렸을 경우 제대로 대응도 못한 채 ‘한 방’에 지지율이 급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후보 캠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네거티브팀을 운영하고 있다. 네거티브에 대응하기도 하지만 네거티브 테마를 만들어 언론에 뿌리는 공세적 역할도 한다. 이미 문 후보는 아들 준용씨의 채용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고, 안 후보도 가족과 관련한 네거티브 공세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현재까지 네거티브 공격에 의해 더 깊은 상처를 입은 쪽은 안 후보다. 안 후보는 한때 지지율이 문 후보를 앞지를 정도로 기세등등했으나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이른바 ‘1+1 교수 채용’ 의혹과 보좌진 상대 갑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했다. 4월2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30%의 지지율로 문 후보보다 11%포인트 뒤졌다. 안 후보의 지지율은 전주에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보다 7%포인트 빠진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치 전문가들은 안 후보의 지지율이 빠진 이유로 네거티브 영향을 첫 번째로 꼽고 있다.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격은 선거 막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문 후보 측에선 김미경 교수나 딸 설희씨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 놓았다. 다만 설희씨 관련 의혹은 대부분 그가 유학하고 있는 미국 쪽에서 벌어진 것들이어서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 후보 측 고민이다. 안 후보 측 역시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에 대한 검증을 아직 마치지 않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문 후보가 변호사 시절 수임했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부적절한 사건을 수임했는지 ‘현미경 검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