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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춥지만 중력 있어…크기 두고 왜행성 분류 공방

 

주입식 과학교육에 익숙한 세대라면 기억 저편에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란 단어가 꾹 박혀있을지 모르겠다. 태양계의 행성을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순으로 외우던 방식인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그리고 명왕성을 말한다. 지난 수 세기동안 우리는 태양계에 이들 아홉 개의 행성만이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2006년 8월24일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을 행성에서 왜행성(일반 행성보다 왜소한 행성)으로 강등시켰기 때문이다. IAU의 이 같은 조치는 명왕성의 크기나 위치가 행성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명왕성보다 먼 거리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수많은 천체들이 발견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명왕성보다 약간 더 큰 천체 이리스(Eris)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카테고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IAU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왜행성은 명왕성, 이리스, 하우메아(Haumea), 마케마케(Makemake), 그리고 태양계 안의 케레스(Ceres)다. 이런 왜행성 리스트에 한 개의 행성이 더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새로운 천체 ‘디디(DeeDee)’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4년 칠레 세로톨롤로 범미주천문대 블랑코 망원경으로 발견 이 천체의 공식명칭은 ‘2014 UZ224’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별칭 ‘멀리 떨어진 왜행성(Distant Dwarf)’의 준말인 디디로 더욱 유명하다.  
가장 최근 발견된 태양계 소형 천체 디디, 어둡고 온도가 낮아 성능 좋기로 유명한 망원 카메라로도 그 모습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 ©ALMA | ESO/NAOJ/NRAO


 디디를 처음 발견한 미국 미시간대학․암흑에너지연구 합동팀은 2016년에야 이 새로운 왜행성의 존재를 세상에 공개했다. 원래 데이비드 거디즈 미시간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블랑코 망원경으로 암흑 에너지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망원경 카메라로 찍은 은하수 성분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태양계 외곽을 돌고 있는 또 다른 천체 ‘디디’를 발견한 것이다.  미시간대 연구팀은 4월12일(현지시간) ‘디디’에 대한 추가 연구 결과를 ‘천체물리학저널레터’(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 발표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건설된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어레이(ALMA)’ 망원경으로 디디에 대한 심층 분석을 진행한 결과였다.  

2014년 첫 발견된 ‘해왕성 밖 천체’ ​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디디는 지름이 635㎞로 한반도 남북길이의 절반이 조금 넘는 크기다. 명왕성의 지름이 1187㎞인 것에 비하면 명왕성 절반보다 조금 큰 정도다. 가장 작은 왜행성이었던 케레스도 지름이 945㎞. 디디의 지름은 이에 비해 300㎞나 작다. 새로 발견된 디디의 크기는 곧 천문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디디를 왜행성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 마냐의 문제였다. 논쟁의 핵심은 이 작은 천체에 중력이 있느냐다. 2006년 IAU는 왜행성의 기준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든 바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한 공전 궤도를 가지고 있으며 △천체가 원형의 형태를 이룰 만큼 자체 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질량을 가지며 △자신의 공전 궤도 주변의 다른 천체를 흡수하지 않으며 △다른 행성의 위성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디를 발견한 연구팀 관계자는 디디의 크기와 표면 사진으로 봤을 때 ‘왜행성’이란 칭호를 획득할 수 있을 만큼의 중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왜행성의 최소 규모로 왜행성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던 케레스에 비하면 매우 작은 천체란 점은 장애물이다. 게다가 표면 사진 역시 매우 어둡고 멀리 떨어져있어 디디 내부의 상황을 뚜렷하게 촬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연구를 이끈 거디즈 교수 역시 디디의 정확한 크기를 딱 집어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디디를 둘러싼 왜행성 여부 공방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디디는 고성능으로 유명한 ALMA 망원경으로도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둡다. 허블우주망원경의 10배에 달하는 고해상도 이미지 생성이 가능한 무선안테나 방식의 영상 재현 장치로도 디디의 속을 들여다보기 역부족이었다. 또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을 13% 정도 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구의 반사율이 18% 임을 감안한다면 5% 포인트 낮은 수치다. 연구팀은 빛의 세기를 정밀 분석해 디디의 온도가 섭씨 -243.15도라고 밝혔다.



태양에서 이리스 다음으로 가장 먼 천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디디는 태양으로부터 약 92AU 떨어져있다. AU란 지구와 태양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한 천문단위로, 1AU는 1억4960만㎞다.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평균거리를 1AU로 본다. 디디는 타원형을 형성하면서 태양을 공전하는데 가까울 때는 38AU(56억8480만㎞), 멀 때는 180AU(269억2800만㎞)에 달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최근 측정치는 92AU(137억6320만㎞)다. 
© Pixabay


 최근 공전궤도 측정치를 기준으로 디디는 두 번째로 멀리 떨어진 ‘해왕성 바깥 천체’로 불린다. 가장 멀리 떨어진 해왕성 바깥 천체는 이리스인데 태양으로부터 96.5AU(144억3640만㎞) 떨어져 있다. 디디에서 발산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려면 약 13시간이 걸리며, 디디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00년이다. 천문학계는 디디를 발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태양계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플래닛 나인(Planet Nine)’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가능하게 할 기술적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디에 적용된 기술을 다른 천체에 적용한다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거디즈 교수는 “우리 우주 안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있다”며 “태양계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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