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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이 존재함’을 실감케 하는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박근혜 전(前)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는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법치주의의 쾌거라는 시각과,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음모론의 결과라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고, 세월호 인양을 둘러싸고도 ‘너무 늦어 미안하다.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와 ‘왜 하필이면 대선(大選)을 앞둔 지금이냐’는 목소리 또한 충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 탄핵 당일 화제에 올랐던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헤어 롤 2개를 두고도 ‘자신의 역할에 얼마나 몰두했으면 그랬겠느냐’ ‘헌신적으로 일하는 여성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단순한 실수를 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 분열과 집단 갈등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넓고 깊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며, 일사불란하게 행동에 옮기는 사회를 그 누군들 바람직하다고 하겠는가. 그보다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실천 방식 또한 다채로운 사회가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회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회통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integration’은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협상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강함을 기억할 일이다. 이 대목에서 피터 버거가 남긴 또 다른 명언을 상기해 봄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사회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단 우리는 교도소를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 감옥을 탈출할 열쇠라는 은유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과 왜곡된 편견의 굴레에 갇힌 채,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진실이라 믿는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의미 아닐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