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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단순 모방 아닌 창조 시작점, 깊이 있는 독서와 글쓰기 과정

 최근 출판계 트렌드를 들여다보면, ‘필사(筆寫)’ 관련 책들에 대한 관심이 해를 넘겨가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책인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도 필사책이다.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 저자가 권하는, 따라 쓰기 좋은 시들을 엄선해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김소월·이육사·윤동주 등 말만 들어도 우리에게 친근한 국내 작가뿐만 아니라 외국 작가의 시도 다양하게 수록해 놓았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필사 모방 통해 극복

 그런데 저자는 왜 그냥 시집이 아니라 필사책으로 내놓았을까. 저자는 총 111편의 시가 전달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독자가 단순히 시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편 한 편을 음미하고 느끼며 그것의 가치를 더욱 알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렇듯 필사는 단순히 베껴 쓰는 행위가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의 글 방식과 그의 생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문장마다 작가가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곱씹어보면서 작가의 글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김용택 지음 예담 펴냄 280쪽 1만2800원 © 시사저널 박정훈

《소로우가 되는 시간》은 《월든》 중에서도 소로우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글과 주옥같은 명문장만을 골라 담은 필사책이다. 평소에 소로우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그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필사하면서 그가 숲속에 살면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와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더 깊이 있게 터득하게 된다. 재빨리 기록해야 하는 스마트폰의 메모장과 달리, 얼마든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며 옮겨 적으면 되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바쁠 이유가 없다. 내가 원하는 펜으로 직접 페이지를 꾸미고 내가 쓴 글씨를 통해 작가의 문장을 음미한다. 그렇게 한 줄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편안해지고 즐거워진다. 이렇듯 필사를 통해 읽고 쓰고 새기는 과정을 겪으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작가와 작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게 바로 필사가 주는 매력이다. 필사의 또 다른 매력은 필사라는 모방 행위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막상 펜을 들고 무언가를 써보려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렇듯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훌륭한 글을 따라 쓰는 일일 것이다. 필사는 글쓰기의 훌륭한 선생님 역할을 해 줄 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고,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조금씩 터득하도록 돕는다. 물론 필사를 그저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필사는 그저 베껴 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월드클래식 라이팅북 시리즈》는 헤밍웨이·생텍쥐페리·헤르만 헤세·칼릴 지브란·톨스토이·까뮈 등 세계적인 문호 10인의 소설을 10권의 필사책으로 모았다. 자신만의 필체로 써내려간 필사를 통해 작가 각자가 가진 개성 넘치는 문체와 독특한 문학세계관을 이해하게 된다. 그저 눈으로 읽기만 했을 때보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면서 서서히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찾게 된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의 저자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는 무엇보다 모방을 통해 배우게 되며, 바흐도 피카소도 처음부터 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작품을 모방했기 때문에 대가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작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모방을 통해 배운다. 글을 모방하면 자신의 개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훌륭한 본보기를 통해 자신만의 글쓰기 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독서 습관 길러주기도

 필사는 배움의 기회도 제공한다. 필사는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심층 있게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한다. 《엄마공부》는 여성학자인 저자가 엄마들을 향해 격려와 위로를 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조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라는 조언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기길 바라는 마음에 필사책으로 출간했다. 《오늘, 행복을 쓰다》 역시 심리학자 아들러를 이해하고 싶지만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내용들을 필사를 통해 아들러의 글과 지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렇듯 필사는 책을 읽고 내용을 직접 써보게 함으로써 능동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독서 습관을 유도한다. 필사는 글쓰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정독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색의 시간을 갖도록 돕는다. 나아가 읽고 지나치기 쉬운 내용들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 준다. 한 번도 필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필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올바른 필사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다. 필사를 갓 시작한 사람들에게 좋은 문장을 베껴 쓰는 법을 알려주는 《필사의 기초》, 필사의 중요성과 다양한 필사의 방법을 소개한 《필사, 쓰는 대로 인생이 된다》 등의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자, 필사의 매력을 믿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직접 나만의 필사책을 만들어보자. 아니면 서점에 다양하게 진열된 필사책 중 하나를 골라 지금 당장 필사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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