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家 후계자들(9) LIG그룹] 기업어음 사기 발행 이슈 등으로 그룹 공중분해…그룹 재건 성공할지 주목
그룹은 공중분해…형제별로 소그룹 형성
사기 혐의로 구자원 명예회장과 구본상 전 부회장은 2012년 11월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 결과, 2013년 9월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과 8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구 명예회장이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무렵이다. 계열사이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는 당시 업계 4위의 대형 보험사이자 그룹의 핵심이었다. LIG그룹의 2012년 총자산규모 20조3000억원 가운데 LIG손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93%(18조9000억원)에 달했다. 또 그룹 전체 매출액 11조8000억원 중 90%(10조7000억원) 이상을 책임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룹의 모태인 LIG손보를 매각한다는 점에서 충격이 적지 않았다.구 명예회장은 LIG손보 매각에 대해 LIG건설 CP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형량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 2심 재판부는 피해 보상이 모두 이뤄진 점을 형량에 참작했다. 이로 인해 구 명예회장은 2014년 2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석방됐고, 구본상 전 부회장도 형량이 절반인 4년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구본엽 전 부사장이 범죄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3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아무튼 오너 일가의 형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LIG손보와 그 산하 금융계열사들 매각으로 인해 LIG가(家) 2세대 형제간에 얽힌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작업도 벌어졌다. 먼저 고(故) 구철회 LG 창업고문의 장남인 구자원 명예회장 일가는 LIG 지분 매입에 집중했다. 두 아들인 구본상 전 부회장과 구본엽 전 부사장은 2015년 LIG 지분을 각각 35.3%와 15.2%씩 매입해 지분율을 56.2%와 36.2%까지 끌어올렸다. LIG의 자회사이자,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던 방산업체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기 위해서였다. 이외에 LIG의 100% 자회사이던 시설관리업체 휴세코와 소프트웨어업체 LIG시스템을 비롯한 산하의 손자회사들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졌다. 그룹 내 방산 소그룹이 만들어진 것이다. 구철회 창업고문의 차남 고(故)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의 아들 구본욱 LK그룹 대표는 금융을 맡았다. 사촌인 구본상 전 부회장 등으로부터 LIG자산운용(현 LK자산운용) 주식을 매입하며 금융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LK그룹은 이후 현대증권 인수전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남인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은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인 LIG인베니아(현 인베니아) 주식을 사들이며 최대주주(20.07%)에 올랐다. 인베니아는 현재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지원 아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다만, 3남 구자훈 LIG문화재단 이사장 일가는 현재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LIG “아직까지 직접 경영에 참여한 적 없다”
이처럼 형제들이 서로의 지분을 사고팔면서, LIG그룹 내에 소그룹들이 모여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분관계는 현재 말끔히 정리된 상태고, 소그룹 간 사업연관성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재 공정거래법에 따라 LIG라는 한 기업집단으로 묶여 있다. 오너들이 ‘한집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향후 필요에 따라 소그룹들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그러나 LIG그룹은 이런 가능성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분리된 소그룹들은 현재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상태”라며 “함께 사업을 검토하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에 구본상 전 부회장이, 그리고 올해 2월에는 구본엽 전 부사장이 각각 출소했다. 오너경영인 중 최초로 만기 복역한 사례가 된 것이다. 이들 형제는 자유의 몸이 됐지만, 경영 참여에 제한이 생겼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향후 5년 동안 LIG그룹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들이 물밑에서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구 전 부회장은 1월9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LIG넥스원 임직원 참배식’에 참석해 사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효구 LIG넥스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도 구 전 부회장의 복귀를 위한 사전포석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2007년부터 LIG넥스원 대표이사를 맡아온 장수 CEO(최고경영자)다. 총수 일가가 구속된 기간에도 경영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워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LIG그룹 관계자는 “구본엽 전 부사장은 물론, 구본상 전 부회장도 아직까지 직접적인 경영에 참여한 적은 없다”며 “이효구 부회장 역시 여전히 부회장 타이틀을 가지고 권희원 LIG넥스원 신임 대표를 지원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처럼 구본상-본엽 형제는 아직까진 본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과거의 LIG 영광을 재건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문제는 곱지 않은 세간의 시선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구씨 형제는 사기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만약 일반 공직자라면 만기 출소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업무에 복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출소 후 바로 경영에 참여하는 모양새는 자칫 기업 이미지에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 구씨 형제가 수감된 동안 전문경영인에 의해 무난하게 기업 운영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딱히 경영 참여의 명분을 찾기도 어렵다. 구씨 형제는 LIG그룹의 핵심인 LIG넥스원의 위기 상황을 경영 참여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듯하다. LIG넥스원은 방산 업계 2위의 우량사다. 1976년 설립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와 신궁·천궁(지대공 유도무기), 해성(함대함 유도무기) 등 각종 레이더와 센서를 개발하며 국내 1세대 방위산업 기업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2004년 LG이노텍 방산사업부에서 분사한 이후에도 유도무기를 중심으로 국내 방산 업계 강자의 입지를 지켜왔다. 그러나 문제는 구씨 형제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경쟁자인 한화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는 점이다. 한화는 삼성과의 빅딜, 두산SDT 인수·합병(M&A)을 통해 방산 부문을 크게 확대했다. LIG넥스원도 두산DST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자금조달력에서 한화에 밀렸다. 당연히 LIG넥스원의 입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LIG넥스원은 지난해 4월 한국형전투기(KF-X) 체계 개발사업의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시제품 사업자 선정에서 한화에 밀리면서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레이더는 LIG넥스원의 주력 분야였기 때문이다. 구 전 부회장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서야 한다. 전형적인 정부 주도형 산업인 국내 방산시장은 매년 1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사실상 사업 규모가 정해져 있어 해외진출 외에는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LIG넥스원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안팎에 불과하다. 동남아와 일본 등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낮은 수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다. LIG넥스원은 구 전 부회장이 해외 수출의 활로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구 전 부회장은 앞서 해외 판로를 개척한 경험이 있다. 2007년 LIG넥스원 CEO로 합류해 중남미·인도네시아에 함대함 유도무기와 휴대용 지대공무기 수출을 주도한 것이다. 이는 국내 최초로 중남미 시장을 개척한 사례로 꼽힌다. 무엇보다 구 전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남미통’으로 유명하다. 그는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지역에서 현지 고위직 등을 상대로 네트워크를 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LIG넥스원 외 계열사들 자생력도 높여야
여기에 LIG넥스원 외 비핵심 계열사들의 자생력을 높이는 것도 향후 숙제다. LIG그룹의 비핵심 계열사들은 내부거래 의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휴세코와 LIG시스템이다. 최근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각각 42.13%와 64.15%였다. 이들 회사는 일감몰아주기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LIG손보 매각으로 총자산규모가 줄어들면서 대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이런 내부거래율 추이가 크게 논란이 될 소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LIG손보를 지난해 6월 매각하기로 하면서 5년 동안 그룹의 비주력 계열사들이 기존 거래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데 있다. 계약유지 대상은 LIG시스템과 LIG엔설팅(LIG시스템 합병), 휴세코, 엘샵, 서빅 등 LIG손보에 소모품을 납품하거나 전산관리, 건물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해 오던 회사다. 이들 계열사가 LIG손보를 통해 올린 매출 규모는 매년 300억원에서 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만일 약속한 거래 기간이 끝나면 대규모 매출이 사라질 수 있다. 비주력 계열사들이 순식간에 부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LIG그룹 관계자는 “향후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업다각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시 관건은 출소한 지 불과 수개월도 안 된 오너 3세들의 경영 참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될 전망이다.LIG 가계도…딸들 통해 GS·두산家와 사돈
LIG그룹 1세대는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故) 구철회 LG 창업고문이다. 그는 부인 고(故) 안남이씨와 슬하에 4남4녀의 대가족을 뒀다. 이 가운데 아들은 모두 경영에 참여했다. 그룹의 지휘봉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장남인 구자원 명예회장에게 넘어갔다. 차남 고(故) 구자성 전 사장은 LG건설을, 4남 구자준 전 회장은 LIG손해보험을 각각 이끌었고, 3남인 구자훈 이사장은 LIG문화재단을 맡았다.
구자원 명예회장은 부인 유영희씨와의 사이에 2남2녀(지연·지정·본상·본엽)를 뒀다. 장남 구본상 전 부회장과 차남 구본엽 전 부사장은 LIG건설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지 LIG넥스원과 LIG건설을 각각 이끌었다. 최근 만기 출소한 이들은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재편된 그룹 재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차남 고(故) 구자성 전 사장은 이종구 전 산업은행 이사의 딸 이갑희씨와 결혼, 1남3녀를 뒀다. 아들 구본욱 LK그룹 대표는 LIG그룹 내 금융사를 운영 중이다. 3남인 구자훈 이사장은 중국 상하이 출신 외국인 임방인씨와 인연을 맺어 세 딸을, 4남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은 이영희씨와의 사이에 동범·동진 두 형제를 뒀다.
구철회 창업고문의 딸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신 내로라할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화려한 LIG 혼맥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장녀 구위숙씨는 고(故) 허만정 LG 공동창업주의 3남인 고(故) 허준구 LG건설 회장과 결혼해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 GS그룹을 이끌고 있는 5형제를 낳았다. 4녀 선희 씨는 고(故)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인 고(故) 박용훈 전 두산건설 부회장과 결혼했다. 이외에 차녀 구영희씨와 3녀 고(故) 구자애씨는 의료계 집안과 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