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 前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상대방 안부를 묻고 말미에 강녕을 기원하는게 서한문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생략합니다. 인사가 아닌 욕으로 들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 호칭과 관련해서입니다. ‘전(前)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 기막힌 시점에서 그 말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는, 내 딴의 배려입니다. 그래서 ‘귀하’로 표기하니 양해 바랍니다. 지난 3월10일 귀하께서는 대통령에서 파면됐습니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 일치 평결이었습니다. 귀하가 직접 임명한 재판관을 포함한 몇 분이 이의를 제기했더라도 별 대수가 아니겠습니다만 한결같은 탄핵소추 인용은 시사하는 바 큽니다. 국민 절대 다수가 귀하를 대통령에 부적합하다고, 잘못이 크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넘어진 사람 밟는’ 격이 돼 주저스러우나 다음의 몇 마디는 꼭 들려주려고 합니다. 귀하는 3월10일부로 정식 파면됐습니다만 실은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된 3개월 전 이미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국민이 귀하를 버렸다는 의미에섭니다. 아니 그 이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실체가 드러나고 귀하가 이를 호도하려 할 때 다수 국민들 마음이 귀하를 떠났으니 더 거슬러 올라가도 될 듯합니다. 허위와 위선 그득한 귀하에겐 연민조차 사치였는지 모릅니다. 적확하게는 자괴 속 경멸이었습니다. 귀하를 대통령으로 뽑고 성원을 보냈던 지지자들마저 말입니다. 헌재 결정 전 대한문 등지를 가득 메운 ‘태극기’ 상당수도 귀하 개인의 비리를 옹호한 게 아니라 좌파 득세를 우려한 우국충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귀하는 반성과 참회는커녕 책임을 모면하려 발버둥쳤습니다. 속이 빤한 기망도 되풀이했습니다. 특검 수사에 응하겠다는 약속도 갖은 핑계로 피해 가는 비겁 등등…여염집 아낙네도 아닌,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의 그런 모습은 정말 추했습니다. 내키지 않음에도 잔인하게 과거사를 들추는 소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하의 자기 허물이나 과오를 결코 용인치 않는 괴이한 성정과 파탄지경의 국정 현실 때문입니다.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나 청와대 시절 귀하는 대단히 독했습니다. 시사저널이 ‘비선실세 정윤회’라는 타이틀로 국정 농단을 처음 보도했을 때 귀하는 정부 기관을 동원해 목을 죄는 등 압박을 가했습니다. 본인도 ‘문고리 3인방’ 기사화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런저런 고언을 새겨들었다면 오늘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탄식도 해 봅니다만, 아무튼 귀하의 황당하기까지 한 아집·독선으로 인해 이 나라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민생 경제는 물론 북한 핵·미사일과 사드 배치로 촉발된 안보 위기는 구한말의 혼란 그 이상입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이 엄포에 그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온 나라가 일치단결, 총력 대처해도 될까 말까 한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촛불’과 ‘태극기’로 찢겼습니다. 그 갈등과 대결 양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헌재 법정에서 귀하의 한 변호인은 내란 운운하며 ‘피로 물든 아스팔트’를 예고했을 정도입니다. 이제 진짜 귀하가 나설 차례입니다. 고통받는 첫 파면 대통령에게 해도 너무한다고 원망할지 모르겠으나 귀하만이 할 수 있는 국가적 과제가 있어서입니다. 우선 헌재의 결정에 진심으로 승복하겠다는 다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귀하 추종자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게 되고 극한 대치도 다소간 진정될 것입니다. 그게 귀하가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고 속죄하는 길입니다. 향후 이어질 특검의 비리 수사 대응만 고려해 딴 맘을 먹는다면 귀하는 또 다른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게 될 겁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여러분들이 귀하의 ‘극단적 선택’, 까놓고 말하면 자살을 우려하는데 그런 불상사는 물론 없으리라 믿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