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백악관 외교·안보 라인 혼돈

“상황이 정말 애매하다(Things are really vague).” 최근 미 백악관의 대북 정책 수립에 관해 한 외교 전문가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중심이 돼 향후 대북 정책 수립에 몰두하고 있지만,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매하다기보다는 아직 정책 방향이 정립되지 않고 좌충우돌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2월25일 낮(현지 시각 24일 밤)에 미 국무부 공보실에서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3월초(1~2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미국과 북한의 트랙 1.5(track 1.5) 반관반민(半官半民) 대화 질의에 관한 응답이었다. 보통 이메일로 답변을 받았는데, 상당히 의외였다. 답변의 핵심은 북한 외교관에 대한 비자 발급은 개인정보라 확인해 줄 수 없지만, 그것은 일종의 비공식적인 대화이고 미 국무부와 한국 정부 혹은 중국 정부 간에도 북한 문제에 관해 많은 공식적인 대화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는 외교정책 관계자의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대화는 열리지만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미 북·미 뉴욕 접촉이 거의 막바지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는 워싱턴 외교가의 정보를 알고 있던 기자는 당연히 ‘북·미 뉴욕 회담 성사 가능성 커져’로 기사를 송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류는 채 두세 시간도 가지 않았다. 곧바로 미국의 또 다른 매체는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무부가 북한 외교관에 대한 비자 발급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뉴욕타임스도 이 황당한 사건에 관해 “막판에 백악관에서 무슨 이유인지 국무부에 갑자기 비자 승인 불가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미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자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고 기자에게 답변한 꼴이 되고 만 셈이다.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트럼프가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 사건 등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유독 입을 다물고 있다. © EPA 연합·연합뉴스

美, 대북 청사진 수립 늦어지는 이유

 이렇듯 워싱턴 외교가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의 향방을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파다하다. 그 압권이 북한이 2월12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나서자, 이에 대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마침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 만찬회담을 하고 있던 트럼프는 회담장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을 100% 지지한다”는 10여 초의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당연히 있어야 할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트럼프가 유독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트럼프가 이렇게 조용하게 반응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새로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대북 정책을 명확하게 수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문제를 ‘매우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very very high priority)’로 다루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그의 말과는 달리 구체적인 방법론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라면서도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2월1일, 취임 후 처음 행한 의회 연설에서는 북한은 물론 한국이나 한반도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미국 국내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우선순위에서 밀렸거나, 아직 대북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취임 전 대선 기간에는 햄버거를 먹더라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하겠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노(NO)는 아니지만, 너무 늦었다(too late)”는 말로 태도 변화를 암시했다. 취임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한국 등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정책(MD)이 “쓸모없는(obsolete)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차츰 노련하게 길들여지는 모습이지만, 그의 입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혼돈의 순간이다.  

비둘기파와 매파의 치열한 내부 싸움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비록 민간 차원이 섞여 있었지만, 이번 북·미 첫 뉴욕 접촉이 향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의 향방을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단 몇 시간 만에 뒤바뀐 결과는 오히려 아직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수립되지 않은 채,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여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말았다. 또 이번 사건은 미 백악관이나 국무부 등 외교정책 집행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비둘기(대화)파’와 ‘매(강경)파’가 치열하게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도 손꼽힌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도 일단 북한과 대화에 나서보자는 ‘비둘기파’가 기선을 잡았지만, ‘김정남 피살’이라는 또 다른 악재에 결국 강경 노선의 매파가 승리해 북·미 대화를 막판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의 대북 정책 수립이 늦어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 혼란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트럼프 취임 후 첫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와의 내통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조기 낙마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플린은 트럼프 임기 개시 전후 국무부와 정보기관 등 핵심 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북 정책 청사진(blueprint) 작성에 주력했지만, 그 당사자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만 셈이다. 최근 허버트 맥마스터 육군 중장이 새로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했지만, 백악관 외교·안보 라인이 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맥마스터는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적인 교체와 쇄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둘기파와 매파가 더욱 자기 사람을 새로운 라인에 심으려는 권력 암투까지 진행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기까지는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대북 정책에 관해 이른바 ‘중국 역할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북한 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가가 중국이며,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아직 대북 정책이 명확하게 수립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8년 동안 북한 문제에 관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트럼프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대북 정책 방향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대화를 강조하는 ‘비둘기파’가 승리를 거둘지, 아니면 강경 정책을 선호하는 ‘매파’가 기선을 제압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