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 맞물리면서 끝없는 혼란…“포스트 탄핵 정국 걱정해야 할 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하는 3월13일 이전에 최종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탄핵 기각설’을 넘어 ‘박 대통령 자진 사퇴설’이 퍼져 나가고 있다. 이를 두고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보수층을 결집해 헌재에 압력을 행사하고,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친박(근혜) 세력의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 광장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이로 인한 혼란은 헌재 판결 이후에도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수층 결집하면서 ‘탄핵 기각설’ 확산
설 연휴가 끝난 2월초, 보수진영이 반격에 나섰다. 1월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특검의 활동이 위축됐고,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무더기 증인 신청 등으로 헌재의 2월말 탄핵심판 선고가 불가능해지면서 숨죽였던 보수층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태극기 집회를 통해 아스팔트 보수가 다시 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에서는 탄핵 반대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탄핵 기각설’이 불거져 나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2명이 탄핵심판 기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 두 명의 재판관이 탄핵심판 기각을 확실히 하기 위해 또 한 명의 재판관을 설득하고 있다”는 내용의 탄핵 기각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시작으로 태극기 집회에서 배포된 ‘가짜뉴스’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여기에는 재판관들의 실명이 등장하며, 이들 재판관의 보수적인 성향과 출신까지 거론하면서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다. 여기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르면 2월28일 이 권한대행 후임 재판관을 인선해 발표하겠다고 밝힌 점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탄핵 기각설에 힘입어 태극기 집회의 규모는 나날이 커졌고, 이에 대한 위기감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수도 다시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허무맹랑한 말 한마디에 한국 사회가 두 동강이 났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하게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탄핵 기각설이 이처럼 확산된 것은 국민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건으로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가운데, 국민은 헌재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진 사퇴’ 거대한 시나리오 진행되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올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번에는 박 대통령 자진 사퇴설이 제기됐다. 범(汎)보수진영이 총대를 멨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에서 이미 자진사퇴 문제에 대해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고,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도 “사법적으로 탄핵 인용·기각이냐로 풀 게 아니라 정치적 해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2월22일 열린 탄핵심판 16차 변론은 박 대통령 자진 사퇴설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날 박 대통령 변호인단은 헌법재판관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막말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는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국회 측 수석대변인’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퇴임에 맞춰 과속진행을 한다” 등 법정 모독에 가까운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국회소추위원 측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대리인단의 변론 내용은 헌재의 재판 절차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안하무인 격 태도였다. 이것이 우연인가. 거대한 시나리오의 시작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대통령 대리인단 시나리오의 클라이맥스는 탄핵심판 선고 하루 이틀 전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을 피하기 위해 ‘하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의 탄핵심판을 정치재판으로 몰고 가, 탄핵이 기각되지 않을 시에는 탄핵심판 자체에 불공정 프레임을 덧씌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 선고 전 자진 사퇴를 하게 되면 연금 및 유족연금, 기념사업 지원, 경호·경비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지원과 의전을 받을 수 있다. 자진 사퇴할 경우 헌재의 탄핵심판이 자동적으로 각하될 가능성도 크다. 자진 사퇴의 경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선례가 있지만 탄핵은 헌정 사상 최초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마지막 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검이 연장되지 않고 검찰로 사건이 넘어갈 경우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하게 되면 곧바로 대선 국면에 접어든다. 검찰이 이러한 민감한 시점에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를 대놓고 진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야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억울한 피의자 코스프레를 통해 동정표를 이끌어내 보수 결집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 “야권 후보도 보수층을 의식해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지금처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는 3·1절을 기해 ‘500만 태극기 집회’를 예고했다. 박사모 측은 “2017년 3·1절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뀐다”면서 “500만 명이 모인다면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박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은 2월25일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탄핵 선고 이후 정국을 수습해야 할 정치권은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모든 관심은 차기 대선에 맞춰져 있다. 국정혼란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여당은 ‘생존’에 혈안에 돼 있고, 야당 역시 정권교체에 골몰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이 선행돼야 하지만, 이제는 양분된 사회를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 대선일은 5월10일 예상”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 기일을 2월27일로 확정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2월22일 탄핵심판 16차 변론 기일에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해 재판부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면서 당초 2월24일이었던 최종변론 기일을 3일 연기했다. 최종변론 기일이 정해지면서 탄핵심판 선고일은 3월13일로 예상되고 있다. 최종변론 후 재판관 평의에 약 2주가 걸리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4월30일 최종변론이 열렸고 2주간 평의를 거친 후 5월14일 선고가 내려졌다. 3월13일은 이 권한대행의 퇴임일이기도 하다. 헌재 내부에서는 3월13일 오전에 선고를 내린 다음 오후에 이 권한대행의 퇴임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종변론 기일을 늦춰 달라는 박 대통령 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이 권한대행의 퇴임으로 야기될 수 있는 ‘재판관 7인 체제’를 피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이라면서 “헌재가 재판관 8인 체제에서 선고를 내리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이 권한대행 퇴임 이전에 반드시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금요일에 선고가 이뤄진 점을 고려해 3월10일도 유력시된다. 그러나 3월10일인 경우 대선 일정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야당 관계자는 “탄핵이 인용되면 선고로부터 60일 이내에 차기 대선이 치러져야 하는데, 3월10일에 선고가 내려지면 4월29~5월9일 사이에 대선일이 정해진다. 그런데 5월 첫째 주의 경우 노동절(1일), 석가탄신일(3일), 어린이날(5일) 등 연휴가 겹친다”면서 “이를 고려해 탄핵 선고는 5월12일까지 여유가 있는 3월13일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5월 둘째 주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수요일인 5월10일 대선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일정이 사실상 3월13일 이전으로 결정되면서 5월 조기대선 가능성 역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기도 전에 차기 대권에 대한 관심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 불똥을 맞았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를 상정한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 명단이 SNS 등을 통해 유포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내각-청와대’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명단에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청와대 비서실장과 각 부문 수석, 경제부총리와 각 부 장관, 국정원장, 금융위원장, 공정위원장 등이 포함돼 있다. 아무개 의원이 문 전 대표 측과 학연으로 맺어져 있어 입각할 가능성이 크며, 문 전 대표 측에서 중앙부처 주요 고위공무원들의 능력·평판·성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다.
문 전 대표 측은 즉각 반발했다. 김경수 경선캠프 대변인은 “명단 내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법적 조치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문 전 대표 측이 강력 대응에 나선 것은 당내 경선이나 본선 전에 캠프 내 불필요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마치 대통령이 다 된 듯 행동한다”는 비판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되고 있다. 현재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빌미에도 ‘오만방자하다’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
특히 섀도 캐비닛의 경우 문 전 대표가 먼저 거론하면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탄핵이나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는 인수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차기 정부 구성을 일찌감치 준비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본선이 시작된 후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다. 구체적인 명단을 작성한 적도 없다. (명단이 유출된 것은) 누군가의 악의적인 음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