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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큰 센세이션 일으킨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건 다뤄
《스노든》 제작 난항부터 미국 흥행 실패까지
폭로 후 스노든은 남미로 망명하려 했다. 그러나 미 당국의 ‘발 빠른’ 여권 말소로 경유지였던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발이 묶였다. 2015년 8월 러시아는 1년간 스노든의 임시망명을 허가했고, 2016년과 올해 1월 중순 두 차례 거주 기간을 연장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러시아에서 허가받은 망명 기간은 2020년 8월까지다. 은둔지는 기밀에 부쳐져 있다. 이번 NBC의 보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지난 1월 전 CIA 부국장 마이클 모렐의 발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모렐은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스노든을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도 스노든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익적 내부고발자인 그를 사면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동시에, 스노든은 미 당국의 배반자로 낙인찍혔다. 그는 미국 안보법상 국가기밀 폭로죄로 유죄 판결 시 최대 20년 징역형을 받을 처지다. 그리고 트럼프는 2013년 스노든의 내부고발을 가장 극단적으로 규탄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마 트럼프의 트위터에는 지금도 “스노든은 스파이이며 사형에 처해야만 한다”는 그의 강경한 멘션이 남아 있을 터다. 트럼프가 방송에서 반복한 이 발언이 육성으로 담긴 영화가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스노든》이다. 미국·러시아 등에선 지난해 9월 개봉했고, 이후 홍콩·영국·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선보이며 올해 2월9일 한국 관객을 만났다. 《스노든》은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다룬 《플래툰》(1988), 《7월4일생》(1990)과 금융자본을 비판한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 등 사회 비판적인 영화로 줄곧 비평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온 스톤 감독과 《배트맨》 《씬시티》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스타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이 함께한 작품이다. 그런 것치곤 미국에서부터 반응이 어째 잠잠하다. 미국에선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4위라는 미지근한 성적으로 출발해, 4주째 10위권 밖으로 소리 소문 없이 밀려났다. 어쩌면 이는 제작 초기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스노든에 대한 미국 내부의 ‘복잡한’ 입장이 영화 제작에 난항으로 작용한 것이다. 《스노든》은 변호사 쿠체레나가 스노든의 러시아 망명 당시 상황을 토대로 쓴 소설 《타임 오브 더 옥토퍼스》를 들고 스톤 감독을 찾아와 영화화를 제안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2014년 모스크바에서 스노든을 만나고 제작을 결심한 스톤 감독은 여기에 스노든이 홍콩에서 벌인 폭로 과정을 세세하게 담은 루크 하딩의 논픽션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를 더해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했다. 스노든도 신변이 위험한 와중에 스톤 감독을 비밀리에 아홉 번이나 만나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애초 그가 가디언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적인 폭로에 나선 것은 미국 정부의 민간 사찰이 가능한 한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렇게 보면 스노든이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줄 상업영화에 협조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당초 은둔 중인 스노든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했던 스톤 감독의 예상은 빗나갔다. 더 큰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할리우드가 오직 미국 찬양 영화만 만든다”
일단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 《스노든》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캐스팅도 녹록지 않았다. 군인 집안 출신으로, 미국 정부를 철석같이 믿었던 스노든이 차츰 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여자친구 린지 밀스다. 지금도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스노든의 곁을 지키고 있다. 영화에서도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이 역할에 무수한 여배우들이 번번이 출연을 고사하자 스톤 감독은 궁지에 몰렸다. 그런 그에게 쉐일린 우들리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스노든》의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 쉐일린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이야기를 영화화해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곧장 그에게 린지 역을 제안했고, 다행히 출연을 수락받았다.” 결국 《스포트라이트》 《나이트크롤러》 등 꾸준히 사회 비판적 영화를 다뤄온 오픈로드필름이 배급의 총대를 멨다. 간신히 영화를 완성한 스톤 감독은 “할리우드가 오직 미국 찬양 영화만 만든다”고 성토했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은 국내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21세기에 소환했다. 이는 청와대가 소위 말 안 듣는 문화·예술단체 3000여 개와 좌편향 인사 8000여 명을 ‘관리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음이 드러났다. 2014년 부산시의 압박에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감행한 뒤 정부 예산 삭감 등 진통을 겪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미 정보당국의 무차별 감시를 가능케 했던 ‘애국법(Patriot Act)’은 효력이 만료됐다. 그러나 감시 사회의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 NBC의 보도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가운데, 스노든의 변호사들은 이번 기사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지금 펼쳐지는 세상이라, 예측은 어렵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