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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의 첫날 국내외에 충격을 던졌습니다. 대선 불출마 선언이 그것입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12월24일 “박연차가 반기문에 23만 달러 줬다”는 제목으로 반기문 전 총장의 금품 수수 의혹을 전 세계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반기문 검증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입니다. 이후 언론의 검증 공세가 봇물처럼 터졌고, 해외 언론까지 가세했습니다. 반 전 총장의 퇴장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반 전 총장급 거물이 이 정도 사안으로 대선 레이스에서 내려오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영수급 정치인들이 연루된 과거의 뇌물 스캔들은 단위가 다릅니다. 뒤에 동그라미가 몇 개는 더 붙었고 그런데도 무사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모 야당 지도자는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본인은 물론 지지자들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여당은 훨씬 많이 받아먹었다”는 논리로 방어막을 쳤고, 그게 먹혔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 국민성을 보면 의외로 최고책임자에게 너그러운 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예를 볼까요. 그렇게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분개해서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내려고 데모를 했던 우리 국민들이 막상 이 대통령이 하야(下野)를 선언하고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를 떠나자 연도(沿道)에 구름같이 몰려들어 눈물을 훌쩍거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이 박사(이승만)가 나빴나? 이기붕이 같은 밑에 놈들이 나빠서 그랬던 거지”라는 유(類)입니다. 리더에게는 지휘책임 내지 관리책임이라는 게 엄연히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이 대목에 관대했던 거죠. 지금 탄핵심판 대상으로 전락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동정적인 국민이 있는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그랬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조금 바뀔 모양입니다. 시사저널 기사에 나오는 23만 달러와 3만 달러, 합쳐서 26만 달러면 한화로 약 3억원입니다. 예전 같으면 문제가 안 될 금액일 수도 있는데, 이제는 문제가, 그것도 아주 많이 됩니다. 이 기사가 맞고 안 맞고를 떠나 구체적인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대해 반 전 총장이 설득력 있는 해명을 못한 것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그 후로도 친인척 비리, 무능 논란 등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됐고 핀치에 몰린 반 전 총장은 결국 뜻을 접었습니다. 이번 ‘반기문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국민들이 (예비)최고지도자의 잘못에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관행이 이제는 면죄부가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새 관행’이 정착되면 대한민국은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앞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수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가던 잘못도 이제는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자신은 사생활이 문란해도 정치인들의 사생활에는 엄격한 미국형으로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변화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정치의 변화는 민간의 변화로 연결돼 우리 사회가 탈(脫)권위주의로 나아가게 되겠죠.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넌더리가 나서 도덕성이 최고지도자의 최우선 덕목이 됐지만, 이것만 갖고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죠. 도덕성과 소통능력을 갖춘 유능한 최고지도자가 출현할 때 비로소 이 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가 쌓이면 언젠가 대한민국은 따뜻하면서 유능한 엘리트가 이끄는 멋진 나라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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