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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 인정 어렵다”며 “대가관계와 부정청탁 소명정도에 비춰 구속필요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시민들은 이 두 사건을 비교하며 분노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실수로 빠뜨린 2400원은 횡령죄고 재벌의 430억 원은 뇌물죄가 아니라는 것은 유전무죄·무전유죄의 단상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씨에게 대한민국의 법은 너무나 냉정했다. “그날 삼례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중간 경유지에서 현금을 지불한 손님 4분을 태웠다. 한 사람당 요금은 1만1600원이다. 원래 큰돈은 입금시키고 잔돈은 추후에 정산한다.” 보통 1만1000원씩 어림잡아 4명분의 돈을 넣고 남은 2400원은 일보에 미수금으로 기록해야 했다. 하지만 이씨는 그날따라 잔돈 2400원을 일보에 미수금으로 기록하는 것을 잊었다. “그날은 유달리 정신없었던 날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운행을 하다보면 배차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그는 “오전 9시30분에 삼례 터미널에서 출발해 남부터미널로 갔다. 오후 1시30분에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맞춰야 했는데 그날따라 시간이 촉박해 정신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복막 투석 중이다. 하루에 4번 복막 투석을 하는데 그날은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촉박한 가운데서 30분을 투석하는데 쓰고 나서는 더욱 정신이 없었다. “서둘러 정리하다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가 2400원의 증발을 안 건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나서다. 회사에서는 ‘횡령’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는 미수금을 기록한줄 알았다. 모자란 돈을 입금하면 될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는 횡령이라며 사규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다.” 보통 해고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이후 절차에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까지 절차 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선례는 없었지만 이씨는 절차 없는 통보를 받았고 그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법원은 ‘해고는 과한 징계’라며 이씨의 손을 들어 복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어진 항소심은 뒤집혔다. 그는 “100원도 횡령은 횡령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하다. 명백한 실수였고 실수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회사 동료 중 이씨처럼 소액의 버스요금을 누락한 버스기사가 한 명 있다. 그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현재는 복귀해 운전대를 잡고 있다. 같은 잘못에 다른 회사의 처분. 이씨는 “평소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점을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0년 8월 즈음에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다. 노조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회사 일에 피해를 준적은 없다. 17년 동안 열심히 근무했다. 단지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을 뿐인데 안타깝다. 노조 활동이 약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현재 이씨는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변호사 비용 등으로 들어가는 돈이 부담이지만 명예를 되찾고 싶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묻기로 했다. 이씨의 사건은 때마침 터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맞물리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자칫 이런 관심이 부담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이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당당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나라는 유전무죄·무전유죄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 접고 떠나고 싶다.” 17년간 열심히 일한 버스기사와 우리나라 최고 기업 오너를 둘러싼 법원의 판단.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때다.